나에게 김연수는 큰 숙제다. 13년 전에도 고민 끝에 친구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그와 문학동네가 펴내는 많은 책을 쌓아두었지만, 올해로 등단 30년이라는 그의 인생작을 아직 발견하진 못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보문고와 문학동네가 발간 중인 《디에센셜》에 그가 직접 선정한 대표작이 정리되어 있다. 세 번이나 도전했다가 결국 80%까지 읽고 더는 못 읽겠던 『굳빠이, 이상』을 포함해서 이제는 그를, 보다 정확히는 그의 소설을 제대로 알 수 있겠지...
이름이 비슷해 헛갈릴 수 있지만, 전혀 다른 극과 극에 존재하는 김언수 역시 큰 숙제다. 문학동네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라는 해외 26개국(2021년 기준) 판권 수출, 5년을 싸매서 이제서야(2021년 3월) 소설 안에 들어왔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인상 좋은 편집자와의 Zoom 미팅에서 “살아났다니까, 끝장났다니까”라고 장담했던 김언수의 『빅아이』는, 약속한 2021년 8월은 물론이고 2021년부터 매해 연말이나 1월 2일 문학 전문 기자의 예상을 양치기로 만들며 장장 10년을 끌고 있다. “2021년 8월에 빅아이를 낼 수 있으면, 1년 단위로 책을 한 권씩 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공언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태평양에서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타며 피부로 체험한 경험과 냄새가 닳아 없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민규, 그의 이름을 떠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한숨. 2018년 웹툰/웹소설 플랫폼 저스툰(現 코미코)에 연재하기 시작했던 그의 9년 만의 장편소설 『코끼리』는, 지금이 2024년이니 15년 (이상) 만의 장편소설이 되었다. 2021년에 연재가 모두 완결되었에도 단행본이 안 나온다. 그는 얼마나 더 그의 천재성을 숨기며, 나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희망 고문을 해야 직성이 풀릴까...
숙제처럼 느껴지는 김연수의 야들야들함과 장황한 스토리 전개와 늘어지는 문체, 양치기 소설가 김언수의 점잖지만 극도로 과장된 자만 혹은 허풍, 수염과 선글라스 뒤에 숨긴 비겁함과 표절이라는 시대의 범죄를 씻어내지 못하는 박민규의 좁음.
광복절이다.
우리나라 언어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 이야기를 쓰는 저 이름 높은 천재 작가들을 그만큼이나 애정하고 사랑한다. 얼마나 더 교보문고와 Yes24, 알라딘을 들락날락해야 김연수의 인생작이나 김언수와 박민규의 신작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목이 빠진다.
김훈, 황석영, 김영하, 장강명, 박상영, 김연수, 김언수, 박민규, 천명관, 윤대녕, 정세랑, 정유정, 황정은, 최은영, 김초엽, 장류진, 한강, 그리고 신경숙이나 양귀자, 박완서와 공지영, 은희경과 구병모가 없는 삶은 얼마나 싱거우려나. 내 평생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소설 읽기를 취미이자 인생의 숙제로 삼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