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꿈이 넘치던 그 시절, 그리고 전광용과 김승옥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만약 그때 당시 문과생에게 유망했던 외고에 진학해 이후 대학에서 영문학이나 국문학을 전공했다면? 황동규, 김윤식, 권영민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학자를 만나 공부를 이어 나갔다면? 소설을 읽고 쓰고 평론하고 즐거워하고 시를 습작했다면?
그랬다면, 나는 혹시 내가 원했던 문학평론가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짧게 말할 수 없는 여러 이유로 경제학부에 진학했다. 1학년 1학기, 수강편람을 잘 볼 줄 몰라서 신청을 놓쳐 버린 권영민 교수님의 《한국현대문학의 이해》 수업을 꽤 오랜 시간 청강했다. 정작 정식 수강 신청으로는 다른 강사의 같은 과목을 신청해, 같은 교과서로 한 학기 동안 두 번의 수업을 들었다.
권영민 교수님은 1948년생으로, 내가 1학년이던 2000년 당시 52세였다. 이미 문학평론계의 거목으로 자리 잡은 분이 풀어내는 한국 현대 문학과 소설 강의.
청강생이었던 나는 매 수업에서 내주시는 숙제를 제대로 해가지 못했다. 주로 다음 시간에 배울 소설을 미리 읽어오는 것이었는데, 나는 주로 왼쪽 끝줄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자... 수업 시작합시다. 지난 주 내 준 숙제 다 해 왔지요?
저기 저 줄 첫 번째 학생?
안 읽어 왔어요?
음... 두 번째 학생도?
세 번째 학생은? 음... 곤란한데, 학생은 몇 학번 무슨 과에요?”
(왜 갑자기 제게만...)
저는, 음... 사랑과 꿈이 넘치는 경제학부 C반 00학번입니다.
푸핫. 사랑과 꿈이 넘친다고?
허허, 좋구먼. 다음 수업 시간에는 꼭 읽어와요!
유쾌했고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철없지만 어설픈 용기는 남아있던 시절.
“저는 지금 중국에 가 있습니다. 여전히 저는 현장에 있습니다. 제 직업은 대학교수가 아니고, 한국 문학 연구자입니다.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어느 국문학자의 보물 찾기: 권영민 문고 설치 기념전〉 인사 말씀에서 밝히셨지만,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교수이자 강사였다.
소설가 김승옥과의 일화부터 (“권군! 같이 교회 가자. 회개하고 구원받아야지!”), 그의 지도교수이자 『꺼삐딴 리』의 저자 백사 전광용 선생의 엄격함을 포함하여 문학 비평의 자세까지, 교양 강의임에도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으며 75분 수업을 꽉 채워 현대문학의 아름다움을 전해주셨다.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순간이었고, 아름다운 가르침이었다. 그런 그 분께서 평생을 꿈꿔왔던 마지막 대작으로 1천쪽 짜리 연구서를 내놓으셨다. 정가는 88,000원. 쉽지 않은 두께와 가격이다.
과연 내가 몇 페이지를 읽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손이 역시 빠르다. 주문은 이뤄졌고, 배송은 내일이구나.
아름다운 문학의 세계.
‘이상 연구’(2019)를 마친 다음에 마지막 작업으로 비평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상 연구’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이 책도 덩달아 늦어지게 되었네요. ‘한국현대문학사 1, 2’(개정판 2020)와 ‘이상 연구’, 그리고 이 책을 저의 3대 주저(主著)로 꼽고 싶어요. 비평사 관련 자료를 모으던 1970년대 대학원 시절부터 꿈꿔 왔던 통합 문학사 저술 작업이 이것으로 마무리된 셈입니다. 이제 제가 앞으로 또 무슨 책을 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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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승옥] 서울의 달빛 0장 완결짓겠다
조선일보 입력 1997.04.23. 17:09
소설가 김승옥씨가 오랜 절필 끝에 창작 재개를 선언했다. 『다시 소설을 쓰고 있다. 지난 77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단편 「서울의 달빛 0장」은 원래 장편으로 구상했던 소설의 프롤로그였다. 지난해부터 그 뒷부분을 쓰기 시작해서 현재 2백자 원고지 5백장의 초고를 끝내놓은 상태다. 8백장 분량의 장편으로 완성해서 올 여름이나 가을에 발표하고 싶다. 』 「서울의 달빛 0장」 이후 지난 20년 동안 신작을 내놓지 않았던 김승옥. 그래서 그의 반짝이는 글을 아끼는 수많은 독자들을, 그의 또 다른 걸작을 기다리는 한국 현대문학사를 안타깝게 했던 김승옥의 창작 재개 선언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김씨의 절필 이유는 단순했다.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70년대 말에는 무력감에 빠진 채 술만 입에 댔다. 그러던 작가는 지난 81년 『한밤중에 하나님의 하얀 손을 봤다』면서 기독교에 본격적으로 귀의했다. 그는 펜을 놓고 교회에서 신앙 간증과 전도에 전념해 왔다. 한국문학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던 작가의 대표작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은 문학 청년들 사이에 아득한 신화로 남아 있다.
그는 그 신화의 세계에서 좀처럼 문학의 현실로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돌아왔다. 『문학이란 게 원래 신성한 것이다. 작가가 비윤리적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글 자체는 윤리성과 논리를 요구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언어가 요구하는 절대적 초월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의 달빛 0장」을 쓰던 시절 나는 무신론자였지만 글 자체의 요구에 따라 구원의 과정이 종교적이었다.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는 이제는 에피소드 하나에도 자기 의식을 갖고 액센트를 주면서 내면적 구원의 의미를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
문학의 신성성(신성성)을 자각한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의 창작 재개를 가능케 했다. 「서울의 달빛 0장」은 70년대 한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이기주의의 추악한 모습을 배면에 깔고 있는 작품. 작가는 『현재 쓰고 있는 작품은 그 소설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시대 배경도 90년대로 바꾸었고, 칙칙했던 문체도 경쾌한 쪽으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작품 제목도 새로 지으려고 하지만, 「서울」이란 글자는 빼지 않겠다는 것.
『서울은 작가들에게 이야기의 황금어장이다. 나는 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서울의 작가」라는 말을 듣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사람들이 보는 세상을 그리려고 했다. 』
작가는 90년대의 한국 사회야 말로 「신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불신 시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새 소설에서 그같은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인간의 행동양식을 탐구하려고 한다. 신뢰가 없는 사회일수록 인간의 약함과 혼돈, 인간들끼리의 갈등으로 인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
작가는 현재 서울을 떠나 경기도 일산의 문촌마을에 살고 있다. 종교 서적이 빼곡이 들어찬 마루를 집필실로 삼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그는 『소설 창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주제를 살리기 위한 에피소드를 만들고 거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이번 소설을 통해서는 과거의 작품에 비해 더 강렬한 색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사진=이병훈기자 · 글=박해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