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치 육아
잠자리에 든 줄 알았던 아이가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거실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나는 T에요?”
아이의 뜬금없는 표현에 풉 하고 웃음이 터졌지만, 아이는 사뭇 진지했다. 친구들은 본인들의 성격을 각자만의 알파벳으로 갖고 있다고 들었단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떤 알파벳인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음, 아마도 아이들이 MBTI를 해본 건 아닐까? 싶었는데, 어린 나이에 단정 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외부의 자극과 자라나면서 환경의 변화로 분명히 다른 성격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다듬어지기도 할 텐데, 벌써부터 하나로 정의해 버리는 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엄마, 나도 그거 해보고 싶어요~”
아이의 간절한 눈빛과 어조에 나는 아이패드를 켰다. MBTI 간단 테스트를 검색해보니 내가 예전에 해봤던 테스트 페이지가 떴다. 나는 아이에게 여기 질문지를 읽고 네가 맞는 부분에 답을 체크하면 어떤 성격인지 답이 나올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아이는 난관에 부딪혔다. 아이들이 스스로 읽기엔 질문의 내용이 난해한 것이다. 하나하나 아이는 엄마 찬스를 썼다. 수십개의 질문이 있는데 각 질문마다 의미하는 상황을 곁들어서 아이에게 설명해주다보니 나도 슬슬 지쳤다. 그럼에도 아이는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듯했다.
아이는 조금씩 문장을 읽고 답을 하는데 익숙해지더니, 중반부터는 스스로 자신에게 맞춘 답을 체크해 나갔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떨리는 마음과 함께 의외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조금씩 다른 것을 느꼈다.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규칙을 편해하는 FM처럼 보였는데, 전혀~ 자신은 자유로운 상황을 즐기는 게 좋다고 체크했다. 또, 하나에 집중적으로 몰입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는 여러 가지를 골고루 탐구하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고 말했다. 엄마의 당황한 표정에 아이는 예를 들으면서까지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저는 책을 다양하게 읽으니까요”
제법,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테스트를 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으니 나 역시 만감이 교차했다. 나랑 비슷하게 닮은 구석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단호박 같은 면이 있기도 한 것에 흥미로웠다. 내 배에서 나와도 나와 전혀 다른 면을 가진 아이.
그렇게 아이의 테스트 결과가 화면에 떴다.
ENTP!
변론가형
나는 ENFP 성향이라 아이와 부딪침을 생각하면 나와 극 반대일 ISTJ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가 보이는 성격은 나와 많이 닮아있기도 했다. 동질감이 더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스트레스받는 상황, 내가 의미를 느끼는 포인트, 이런 부분들이 아이에게도 먹힐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아이를 이끄는 과정에서 수월할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다.
그렇게 아이는 한참의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알아간 것에 뿌듯함을 느꼈고, 그렇게 단잠에 들러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의 가벼운 발걸음을 보며, 같이 흐뭇해졌다. 그리고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꼬맹아!
성격은 바뀔 수도 있어~ 너무 단정 짓지는 말아야 해~~
(그리고 말하진 않았지만,) 매일의 너를 새롭게 배우며 성장하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