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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Nov 20. 2024

이사 준비 중 놓치고 싶지 않았던 한 가지

아이들이 삶의 어떤 순간에도 보물을 발견하는 눈을 갖길 바라며


6년 간 살던 집에서 마침표를 찍기 이틀 전이다. 전셋집을 내놓고 한동안 나가는 것이 더디어서 속앓이를 했는데, 어느새 이사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니. 시간의 속도는 정말 주관적이다.  


다음 세입자가 구해져 본격적인 이사 날짜가 정해지면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우선 굵직하게 이삿짐 업체와 입주청소업체 계약을 하는 것부터 서둘렀다. 견적비교의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가격대비 어느 곳이 더 깔끔하게 잘해줄 것인가, 꼼꼼히 사용자들의 리뷰도 따져봐야 한다.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에 일정의 압박은 있었지만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곳들을 컨택해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이삿짐 업체는 4곳의 견적을 비교했다. 포장이사 3곳과 반포장이사 1곳, 스콥이 같아도 가격은 140만 원에서 210만 원까지 다양했고, 도움을 조금 받으면 당연히 내 에너지가 더 들어갈 테니 가격이 저렴했다. 이사로 몸살 나지 않으려면 포장이사로 하는 게 좋을 테니 그 사이에서도 고민하며 계약금을 입금했다.


이사 견적은 지금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산정했지만, 해묵은 짐들을 그대로 새집으로 옮겨가고 싶지 않았다. 부엌이면 부엌, 아이들 옷장이면 옷장, 하루에 한 곳씩 뒤집어가며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과정을 거쳤다. 크게는 가구와 가전 중에 가지고 갈 것과 아닌 것을 고르고, 잔잔바리로 옷가지와 책들, 생필품들을 보면서 정리해 나갔다. 이번 정리 과정에서 우리는 '당근'과 '굿윌스토어'를 적극 이용했다. 소파와 식탁을 무료 나눔 하거나 헐값에 판매하여 정리할 수 있었고, 기부할 의류와 생활용품들을 새벽 수거하는 서비스를 통해 집 앞에 내놓아 기부영수증을 받기도 했다.


한 달 동안 매일 작은 이사 수준의 짐정리 작업이 계속되다 보니 신경 쓸 부분이 많았지만, 나름 물건에 얽힌 시간과 내 생각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 행사에 이 선물 받았었구나...', '나는 생각보다 이런 패턴이 있는 옷을 잘 안 입게 되는구나', '아이들이 쪼꼬미 시절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웠구나, 그때 더 많이 누리고 알아줬으면 좋았을 텐데'는 등...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깨닫는 생각들이 참 많았다. 미리 알았다면 덜 후회했고, 덜 소비했고,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이 집에서의 시한부 시간 동안 아이들이 매듭지어줬으면 하는 꼭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그동안 좋았던 추억, 행복했던 기억, 감사한 일들을 마구마구 떠올렸으면. 이 공간에서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았는지, 우리가 잘 기억하고 새 공간으로 가서 그 좋은 기억에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잘 살아가자는 다짐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사는,

이 집에 이사 온 6년 전, 만삭의 몸으로 이사를 하느라 고생했지만 건강하게 2주 만에 둘째를 출산했던 기억이었다. 출산의 그날은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새벽 5시 강렬한 가진통에 잠이 깨, 거실 소파에서 시간을 보며 진통 주기를 체크했던 기억이 났다. 왠지 심상치 않은 진통 세기에 시무식을 해야 하던 남편에게 출근하지 말고 곁을 지켜달라고 했다. 다행히 가진통이 진진통이 되어 그날 오후 순산할 수 있었다. 둘째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첫째의 설렘과는 달리 유경험자의 넉넉한 여유로움으로 마냥 사랑스러운 존재를 누릴 수 있었다. 이 집에서 처음으로 걸음마를 뗐던 순간, 사과를 네 조각이나 움켜쥐고 혼자 먹겠다고 도망가던 순간, 말을 하기 전에 형아의 장난에 웃음으로 교감하던 순간까지 찬란하게 사랑스러운 그 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이다.


남편 역시 떠오르는 감사는 나와 비슷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 집에서의 가장 큰 추억은 공간의 변화로 다채로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

그에게는 이 집의 구조가 정 사각형으로 난 방과 거실의 쾌적한 편이라 자주 원하는 집의 형태로 바꿀 수 있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처음엔 TV와 소파를 놓는 쉼의 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널찍한 식탁으로 대화의 장을 만들었던 것, 책장과 피아노를 배치하여 취미와 성장을 독려하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들까지... 우리에게 그때마다 니즈에 맞춰 공간은 계속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아이들에게 떠오르는 감사는 이웃집과 아랫집과의 소통이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유명 기타리스트 아저씨와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계절마다 과일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아랫집 아주머니와의 관계도 잊지 못했다. 무엇보다 옆집 아저씨는 아이들 어린이날 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서프라이즈로 챙겨주셨다. 아이들에게는 실질적인 산타, 키다리아저씨와 같은 존재가 늘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아이들이 직접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전병과 견과류 선물세트를 준비했다. 이사를 떠나는 차에 작별인사 겸 감사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런 이웃들을 또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기대해 보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이삿날을 맞이했다. 아무리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왠지 나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물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6년이란 한정된 시간의 양이 모래사장에서 손 한가득 움켜쥔 모래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쏜살같이 새어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거니까.  


이제 마지막 날 저녁은, 감사 축제의 날로 제대로 마침표를 찍으며 새로운 곳에서 다음 챕터를 써 내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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