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한 아들 체력 따라잡기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감기 몸살을 일주일 정도 앓았다. 평소에는 늘 앉아, 그것도 기대어 눕듯이 앉는 것이 좋았고, 입에 단 간식을 주기적으로 간식 창고에 채워 넣었다.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서 스스로 밸런스에 맞게 건강을 챙기고 있다고 안위했다.
2년 전 육아휴직을 선언한 남편은, 본인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다. 외벌이 가족이 가계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가적인 지출을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달 정도 탐색하던 남편은 지역 문화센터의 탁구 수업을 신청했고, 주기적으로 집 근처 공원을 3km씩 5km씩 달렸다. 그의 건강한 활력은 가정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일으켰다.
주로 60대 할아버지들이 듣는 탁구 수업에 신청한 터라, 소위 젊은 청년으로 통했던 남편은 탁구 베테랑들의 노익장을 몸소 체험하며 탁구 실력 기르기에 의지를 불태웠다. 무엇보다 달리기는 남편의 체형 변화를 급하게 이끌었다. 그의 마지막 건강검진에서 경계에 있던 여러 위험 수치들로 걱정이 많았는데, 반년 만에 5kg를 감량하고 지방간을 비롯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그는 그렇게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던 이등병 시절로 돌아갔다.
그 시기에 마침 남편이 창업을 시작한 바람에, 남편을 보는 사람들은 창업이 그렇게 힘든 거냐며 안쓰러워했다. 그래도 남편은 지금의 건강루틴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식단에도 더 신경을 썼다.
그런 남편을 지켜본 지 어느새 2년이 되어간다. 건강해지는 남편 곁에서 나는 적지 않은 자극을 받았다. 특히 남편이 이등병 시절 몸무게를 찍자, 남편과 몸무게가 두 자릿수 이상은 차이가 날 수 있게 관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다. 겨우내 두툼한 외투에 피해 여기저기 군살을 키워온 과거의 나를 수시로 질책할 정도였다.
“자기야 나도 달려볼까?”
어느 날 저녁,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동안 골골대는 와이프를 보며 안쓰러웠으나 귓등으로 넘겨버리던 잔소리 같은 말이 이제야 효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겠다고 의기양양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담날 이른 아침부터 우리 부부는, 부지런히 달릴 준비를 했다. 달리기에 필요한 준비물은 간소했다.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으면 되는 것. 조금 더 신경을 쓰자면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었다. 러닝화를 갖고 있지 않아서, 우선 쿠션이 살아있는 낡은 에어맥스를 신었다.
우리의 목표는 3km를 30분 내에 달리는 것. 남편은 페이스 10분 정도로 여유로이 제자리 뛰기를 하듯이 완주해 보자고 했다. 그래도 어디서 들은 건 많아서 10분 대를 뛴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 나는, 7분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남편은, 처음부터 페이스에 욕심내지 말고 오래 잘 뛸 수 있게 차근차근 실력을 키우라고 타일렀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본인의 실력에 비해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나를 계속 기다려주고 호흡을 고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의 도움과 응원 덕분에 1km, 2km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집 근처 공원은 언덕처럼 굴곡진 루트여서 페이스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오르막에서는 하염없이 페이스가 떨어졌고, 내리막에서는 몸무게에 의지해 페이스가 높아졌다. 그런 내 패턴을 아는지 남편은 계속해서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렇게 제대로 된 3km 완주를 했다. 내 인생 처음인 것 같은 역사적인 날, 나는 남편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덕분에 해냈다. 나 혼자 잘난 줄 알고 이렇게 건강을 망쳤는데, 이젠 남편의 도움을 받아 해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 뒤 나는 2~3일 간격으로 아침마다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운동 패턴이 잡히자 몸이 근질거렸다. 비가 오는 날은 더 속도를 줄여서 우중 속 완주를 해낼 정도였다. 물론 무릎이 아프거나 근육통에 힘든 날은 자연스럽게 쉬었다. 그러다 보면, 몸은 마법처럼 인체의 신비를 보여주듯, 다시 달리고 싶은 엔진으로 회복했다.
내가 달리기를 한 지 100일이 지나고서야 조금씩 일상과 몸의 변화를 체감했다.
1.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봄의 끝자락부터 달리기 시작해, 뜨거운 여름과 축축한 장마를 지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가을에 닿았다. 같은 코스를 돌다 보니 자연의 변화를 매일 눈과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어서 즐겁다.
2. 안 맞는 옷이 들어가고, 딱 맞는 옷이 커지는 기적.
식단을 안 해서 몸무게의 변화는 크게 없지만, 들어가는 옷의 핏은 달라졌다. 팔이 슬림해지고, 허리와 뱃살이 들어갔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 몸무게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스타일링할 맛이 나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3. 활력이 생겼다.
기초 체력이 유지되니 업무상 지치는 시간이 늦어졌다. 점심 이후 3~4시가 되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었다. 이동이 많은 업무를 하게 되면 한두 시간도 되지 않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퇴근까지 걸어서 할 정도로 에너지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4. 아침에 일찍 일어날 루틴이 생겼다.
여름에 달리려면 선선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좋다. 기온이 급격하게 오르기 때문에 찬 공기를 뚫고 달려야 그나마 땀을 덜 흘릴 수 있다. 침대에서 튕겨져 일어난 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뜨거운 여름날의 러닝은 아침잠을 줄여주었다.
5. 내가 달리니까, 가족들을 위한 (남자아이들에게 필요한) 아웃도어 활동을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과 스포츠는 남편 담당이다. 축구나 야구가 하고 싶을 때면 아빠를 조르는 아이들, 엄마의 저질체력에 대한 경험치가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주말마다 등산을 제안하게 되었다.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아이들과 용마산과 아차산 등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달리기와 관련해 유튜브를 찾아보다 보니, 별별 달리는 콘텐츠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내 피드를 채운다. 우연히 80세 어르신이 새벽녘에 1시간을 달리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분은 여기저기 불편한 몸이 많음에도 수십 년째 달리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이왕 시작했으니, 100일 이상으로 1년, 3년은 해봐야지. 그렇게 나와 남편은 나의 러너 입문을 축하하며, 러닝화를 구입했다. 이제 비로소 장비를 갖춘 것이다. 새신을 신고 또 달리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