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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Aug 30. 2021

부모의 말에 힘이 실리는 순간


아이들과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코로나를 피해 어느 시골 마을로 피신하듯 떠나 2박 3일 자연과 찐하게 맞닿은 시간을 보냈다. 여름의 끝자락에 주중 일정으로 떠난 여행은 어딜 가든 우리 가족밖에 없는 전세 놓고 놀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도심에서 떠나 아이들에게 탁 트인 바닷바람을 쐐게 해 주고, 층간소음에서 벗어나 성장통 자극하듯 쿵쿵거리게 하고, 차 없는 길을 원 없이 달리도록 해줄 수 있어서 내 마음도 흡족했다.


무엇보다 이번 여정에서 나는 부모의 말에 힘이 실리는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1 썰매를 타지 않는 큰 아이


6살 큰 아이는 조심성이 참 많은 아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구를 타는 것에 언제나 경계모드다. 이번 여행에서 들린 사계절 썰매장에서 아이에게 튜브에 몸을 싣고 내려가는 도전과제가 주어졌다. “괜찮아. 이거 진짜 재밌어! 나중에 후회한다?! 한 번만 타봐, 엄마가 이따 아이스크림 사줄게!” 아무리 어르고 달래 봐도 아이의 경계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괜히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 돈을 날리는 상황이 될 것 같아 나는 애가 탔다.


아이의 무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실은… 나도 무서웠으니까. 보통 어른이 타기에도 높은 수준이라 미끄럼틀에 익숙한 아이에겐 충분히 도전적인 상황이었겠다고 느껴졌다. (반면 3살 꼬맹이는 어찌나 잘 타던지 혼자 썰매를 끌고 와 아빠 없이 타겠다고 해서, 사뭇 다른 형제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설득의 시간이 길어지자 옆에서 기다리던 안전요원 삼촌도 지쳤는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에게 다시 한번 설득을 시도했다. “동생도 아빠도 재밌게 타는데 뭐가 무서워~ 네가 좋아하는 파란 튜브를 타고 내려가면 되잖아~!” 이 말이 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나는 속으로 ‘이게 말이야, 방귀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인 나도 무서워서 사진 찍는 역할로 한 걸음 뒤에 있으면서 아이에게 강요하는 언행 불일치한 내 모습이 무척 낯부끄러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자, 엄마도 탈 거야! 우리 모두 한 레일씩 자리 잡고 내려가자!” 말이 튀어나왔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게, 서둘러 주황색 튜브를 끌고 와 레일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아이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혼자 내려가긴 무서우니, 아빠랑 자기가, 엄마랑 동생이 둘씩 한 팀이 되어 내려가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동시에 썰매를 타게 되었다. 나도 무서웠지만, 덤덤한 3살 배기 아들에게 기대어 썰매를 타고 내려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뭐 이리 호들갑이냐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에겐 놀이공원에서 신밧드의 모험도 무서워 못 타는 기구 공포증이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 번 타고 내려온 아이는 당차게 “더 탈래!”를 외칠 만큼 도장을 깨고 나온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린 몇 번 더 오르내리며 썰매를 즐겼다. 나도 세 번 정도 타고나니, 탁 트인 하늘을 만끽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거봐, 엄마가 재밌다고 했잖아! 우리 같이 이거 타니까 너무 좋다!” 더 이상 나도 부끄럽지 않게 아이에게 말할 수 있어 좋았다.



#2 갯벌에 기겁하는 작은 아이


구름 낀 해변에 도착한 우리 가족. 신이 나서 달려간 엄마, 아빠, 형아와는 달리 걸어가면서도 크록스에 들어간 모래 빼 달라고 징징거리는 아이 때문에 몇 번씩 김이 샜다. “괜찮아, 원래 해수욕장에선 이러고 노는 거야~”라고 말해보지만 찡찡거림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문제는 서해의 묘미인 갯벌. 갯벌에서 볼 수 있는 송사리, 꽃게, 소라게 등등 아이들에게 종이컵 하나씩 쥐어주고 잡기 놀이를 제안해보았다. 첫째는 제법 꽃게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엄마 이게 더 크다! 생각보다 옆으로 안 가고 앞으로 잘 가는데?” 라며 자연을 관찰하며 즐거워했다. 반면, 작은 아이는 질퍽거리는 갯벌에 들어오자, 온몸의 세포가 긴장을 했는지 무릎에 튄 작은 갯벌에도 빨리 닦아달라며 울상이 되었다.


해변에서 놀았던 경험이 많지 않은 3살 아이에겐 갯벌이 “꽤 찐득한 지지”처럼 보였나 보다. 아무리 갯벌이 부드럽고 재미있는 거라고 알려줘도 손으로 만질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이 빠졌다. 그러다가 나도 많이 묻힐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먼저 신발을 벗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갯벌은 손과 발에 듬뿍 바르면서 노는 거야!”라고 보여줬다. 그리곤 손에 갯벌을 범벅해 “이거 봐! 엄마 헐크 손이야! 엄마랑 악수할 사람?!”이라고 물어보자, 두 아이 모두 서로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렇게 차례대로 갯벌과 악수했다. 둘째는 물에 바로 담가 손을 씻어냈지만, 엄마와의 장난이 재미있는지 “또또!”를 외쳤다. 그러더니 갯벌의 촉감이 익숙해지자 적극적으로 갯벌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엄마 아빠 발을 갯벌에 파묻는 놀이를 제안했다. 서로 갯벌을 퍼와서 발이 꼼짝하지 못할 만큼 단단하게 쌓아갔다. 엄마 아빠가 힘겹게 빼자, 까르르 웃음이 터지면서 갯벌놀이의 포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팔과 다리에 보드라운 갯벌을 묻히고, 신발을 헐크 신발로 만들면서 갯벌 삼매경에 빠졌다. 하이라이트는 갯벌 눈싸움. 흐트러지듯 날아가는 갯벌 덩이에 아이들은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먼저 갯벌에 빠진 부모의 모습에 아이들은 경계를 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부모가 하는 말 중에 허공에서 맴도는 말이 있고, 아이의 마음에 닿아 행동하게 하는 말이 있다. 말에 힘이 실리는 순간은 결국 부모가 먼저 말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가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때론 엄마로서 먼저 무모한 용기를 내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인생에서 한계를 긋고 쳐다보지 않던 것들을 아이 덕분에 하나씩 도전할 때면, 아이는 새삼 고마운 존재가 된다. 우리는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접하는 사교육으로 부모와 아이의 갈등이 깊어진다는 걸 접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어떤 본을 보여야 하나 고민이 많아졌다. ‘문제집 이 정도는 풀어야지, 학원 4개가 뭐가 많아! 그게 뭐가 힘들어!’ 등 아이와의 골이 깊어지는 대화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 테니까. 본격적인 교육의 과제가 다가오기 전에 ‘본질’을 놓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되뇌며 다짐하듯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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