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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Sep 03. 2021

아이가 북한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이 방 한쪽에 우리나라 전도를 붙여놓았다. 거실에 걸어놓은 세계지도는 우리나라가 작아 국내 도시들이 제대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문구점에서 아이와 국내 지도를 산 날, 아이는 보물지도인 것처럼 가슴에 고이 품어가지고 왔다. 처음 지도를 펼쳤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생각보다 크기가 크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북한도 있다는 것. 위엄 있는 한반도를 아이 방 한편에 붙이고 나니 내 마음도 뿌듯했다. 수시로 아이와 OO도시 찾기! 퀴즈 놀이를 했고, 지도는 점점 아이에게 탐색할 대상이 되어갔다.


하루는 아이들과 이제까지 다녀온 국내 여행지를 형광펜으로 표시해 보았다.

그물망 있는 2층 집은 어디였지?
___ 바로 여기, 가평이었어!
그리고 H형아네랑 같이 갔던 바닷가 집은 어디였지?
____ 거긴 양양이었어!
음, 삼촌이랑 갔던 텐트 침대가 있던 집은?
________ 잘 기억하네, 춘천!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오두막집이 있는 곳은?
_____ 그렇지, 충주!


아이에게 여행지에서의 추억 하나하나 되살려주고, 그곳의 지명까지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최근 여행지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까지 칠하고 나니, 핑크색으로 표시된 여행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와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너무 많다. 이제 우리가 다음에 갈 여행지를 골라보자!”


새로 여행할 곳을 아이에게 스스로 골라보라고 제안했다. 아이가 지도에서 눈에 띄는 도시를 고르면 그곳으로 숙소를 잡아 여행코스를 짜 볼 계획이었다. 직접 여행지를 선택한 만큼 아이가 여행지에 깊이 몰입할 수 있고, 주도적인 성격에 맞게 더 애정을 담는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고심하더니,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한 도시를 손으로 가리켰다.


“엄마 여기, 평강

앗! 안돼, 거긴 북한에 있는 곳이야"

“왜?”

음, 우린 지금 전쟁 중이라서 여기 보이는 빨간 38선을 기준으로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서 살고 있어. 여길 넘어갈 수가 없어!”

“왜 우리나란데 갈라져서 살아야 돼?”


아이의 질문은 끈질겼다. 한눈에도 우리나라 전도의 절반이나 차지한 땅을 갈 수 없다고만 하니 아이의 세계관에서 이해할 수 없을 테지. 갸우뚱하는 아이의 표정에 나는 적절한 비유가 없을지 빠르게 뇌를 굴렸다. 미끄럼틀 계단에 자리 잡은 아이 둘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전도를 배경으로 설명을 시작하려니, 사탐 강사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 입에선 6살 아이 수준에 맞춘 쉬운 예시가 흘러나왔다.


“자,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몇 명이지?”

“1명”

“그래, 원장 선생님이 1명이니까 선생님들 어린이들이 원장 선생님 의견에 따라 같이 잘 생활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 그중 한 선생님이 자기가 원장 선생님 할 거라고 고집을 피우면 어떻게 될까? 원장 선생님 2명이 어린이집 하나를 운영할 수 있을까?”

“아니, 안되는데”

“그래! 그래서 어린이집을 둘로 나눈 거야. 원장 선생님 한 명이 어린이집 1,2층을, 새로운 원장 선생님이 어린이집 3,4층을 담당하기로 한 거지. 그리고 중간인 2층과 3층 사이를 막은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인 거야”


엄마의 열변이 아이에게 닿았는지 아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입을 떼고 한마디 던졌다.


“그럼 새로운 원장 선생님은 어린이집을 잘 모를 수 있으니까, 1, 2층을 쓰라고 하고, 원래 원장 선생님이 3, 4층을 쓰면 어때?”

“으응,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뜻밖의 대답에 당황했지만, 아이는 그 속에서도 아이만의 생각을 담아내려고 했다. 정확한 통일 지식을 배운 건 아니더라도 왜 남한과 북한이 빨간 선으로 나뉘었는지의 상황을 짐짓 이해해 나갔다.


“그래도 가보고 싶은데..."

“그러면 좋은데, 3,4층을 올라오지 마세요!라고 원장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주면 갈 수가 없듯이 우리도  그런 상황이야!”

서로 잘 이야기해서 허락해주면 되는데, 왜 못해줘요?

“그러게, 지금은 그게 어려운가 봐!” 


아쉬운 아이의 눈빛에 마지막으로 나는 통상적으로 배웠던 표현을 던졌다.


“그래도 우리가 통일이 되면 갈 수 있어! 그때 엄마 아빠랑 제일 먼저 놀러 가자!”

“통일이 뭔데?”


아이의 질문은 예리했고, 나는 머리로 알고 있던 지식을 총동원해 답변을 이어갔다.


“남한이랑 북한이 다시 하나가 되자고 약속하는 거야. 여기 전체가 우리나라 땅이 되는 거지! 통’ 일’에 숫자 1이 들어간 것처럼 말이야”

“좋아! 빨리 통일이 되면 좋겠네”


북한으로 여행을 못 가서 아쉬워하던 아이의 표정은 통일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한바탕의 설전을 마치고, 우리는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놀이를 이어갔다. 아이는 빨간 선 가까이 있는 동두천과 포천을 골랐다. 하아, 그곳에서도 통일에 관한 질문은 이어지겠구나 싶어, 여행 전 미리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시대나 정치의 흐름에 큰 관심이 없는 엄마로서 요즘 가장 큰 고충은, 질문 폭격기가 된 6살 아이다. 길을 걷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은 꼭 “왜”라고 질문을 던진다. 짧고 굵은 그 한마디만큼 엄마의 대답도 간결하고 임팩트 있어야 한다. 아이의 머릿속에 쏙 들어갈 크기의 답변 수준이어야 아이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엄마의 답변 수준이 어렵고 심오하다면, 아이는 금세 관심을 끄고 다른 놀이로 전환해버린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그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반면, 질문에 대한 답이 정확하게 이해된 경우엔 아이에게도 지적 충족이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한걸음 나아가 다른 어른이나 친구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이해한 답을 알려주며 박사님 인양 지식 놀이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어미새가 모이를 입으로 부셔 아기새에게 먹여주듯이, 부모가 바른 사고관과 지식 정보를 알고 있어야만 아이에게 잘 알려줄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내가 통일을 원하는지? 정말 통일이 필요한 건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통일을 부모가 간절히 원해야 아이에게도 삶에서 생생하게, 더 중요하게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땅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처럼 북한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통일의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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