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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Jul 27. 2023

아이 마음 밭에 좋은 말씨를 심는 텃밭러 엄마

작은 체구의 아이는 엄마아빠에게 자신의 의사를 단전부터 끌어오는 뱃심을 이용해 목청껏 표현한다. 한 번에 재깍재깍 알아들으면 좋으련만, 바쁜 일상에서 수많은 체크 리스트에 정신이 팔려 빠르게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 한두 번 타이밍이 어긋날 때마다 아이는 목에 핏대가 솟아 엄마를 부르기도 하고 더 큰 몸짓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아이를 보면 매번 미안하다. 


하루는 이동 중, 차 안에서 손바닥만 한 자석그림판에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아이는 아빠에게 그림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보여주고 싶었다. 세 번이나 아빠를 부르며 여기를 봐달라고 했지만, 과속방지턱을 넘는 통에 보여주기도 전에 사라진 그림에 속이 상했던 것이다. 


결국, 폭발한 아이는 순식간에 닭똥 같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설움을 쏟아냈다. 


"도대체 아빠는 몇 살인데, 그러는 거예요!"


우는 아이가 안타까우면서도 아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문장에 나와 남편은 뜨끔했다. 이 말은 한 살 한 살 아이가 자라면서 실수를 할 때마다 내가 하던 말이었다. 이제 네 살이니까, 이제 다섯 살이니까, 이 정도는 잘할 나이잖아~ 나름 논리적인 훈육의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입에서 마흔 살인 아빠를 향해 그런 말이 나오니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게... 사십 살인데,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말이야..."


쭈글이처럼 나잇값도 못하는 아빠가 된 남편은 스스로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달랬다. 참, 이 상황을 통해서 나는 서른 살이고 마흔 살이고 우리는 아직도 자라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에 끝이 없다는 어느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감히 완벽의 경지를 쉽게 다다를 수 없듯이 부모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수투성이에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내가 일상으로 입에 달고 다니는 말(특히나 좋지 않은 말)이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올까 봐 긴장이 된다. 24시간 CCTV를 작동하듯 엄마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는 아이들,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배려가 넘치는 언어를, 사랑 표현이 많은 언어를, 모든 것에 감사의 언어를 표현하는 아이라면, 평소에 그런 언어를 쓰는 부모(주양육자)가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주말농장으로 텃밭을 기르면서 나는 땅이 참 정직하다는 것을 배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옛말이 참 명쾌하다. 초보농부라서 간혹 시금치 고랑에서 씨앗이 섞였던지 뜬금없이 아욱이 얼굴을 내밀 때면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상추와 깻잎을 수확하며, 아이의 마음에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좋은 말의 씨앗을 의도적으로 심어 보기로 했다. 많은 단어를 아는 것보다도 배려와 사랑과 감사와 같은 본질적인 감정을 더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일상의 순간들이 바쁘게 스쳐지나 간 듯 보이지만, 성실하게 쌓인 부모의 말들이 어느 순간 아이 입에서 나온다고 한 남편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 아이의 마음 한편에 씨앗으로 심긴 부모의 말들은 어느 순간 입술의 열매가 되어 툭 튀어나오니까, 우리 가정의 온기가 따뜻해지기 위해선 그런 말들을 더 자주 해야겠다. 


밤마다 잠 기운에 눈을 가물가물하는 아이에게 뽀뽀와 함께 귓속말로 “엄마는 널 무척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들”이라고 말해줬다. 하루의 마지막, 가장 사랑을 듬뿍 담은 말로 아이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남았을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을 잠재울 주문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가장 행복한 미소를 띠며 잠이 든다. 그러다 어느 날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기진맥진해 침대에 드러누운 엄마에게 아이가 쪼르르 옆에 누우며 귓속말을 해줬다.


"엄마 사랑해, 좋아해, 축복해!"


가히 엄마를 슈퍼우먼으로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비타민 500알을 먹은 듯 힘이 막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로서 다시 우리 엄마 딸이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아이를 자라게 하는 말처럼 아이가 엄마를 엄마로 자라게 해주는 말을 해줄 때면, 비로소 육아의 과정을 한 단계 더 넘어선 것 같다. 조그만 체구에서 나오는 아이의 말 한마디는 세상 그 어떤 것들에서도 느낄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있다. 순수한 아이의 사랑고백에 엄마로 사는 삶의 행복한 이유를 발견한다. 그렇게 오늘도 나를 위한 말을 아이의 마음에 심어 본다.


부모가 하는 말 중에 허공에서 맴도는 말이 있고, 아이의 마음에 닿아 행동하게 하는 말이 있다. 말에 힘이 실리는 순간은 결국 부모가 먼저 말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가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때론 엄마로서 먼저 무모한 용기를 내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인생에서 한계를 긋고 쳐다보지 않던 것들을 아이 덕분에 하나씩 도전할 때면, 아이는 새삼 고마운 존재가 된다. 우리는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접하는 사교육으로 부모와 아이의 갈등이 깊어진다는 걸 접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어떤 본을 보여야 하나 고민이 많아졌다. ‘문제집 이 정도는 풀어야지, 그게 뭐가 힘들어!’ 등 아이와의 골이 깊어지는 대화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 테니까. 본격적인 교육의 과제가 다가오기 전에 ‘본질’을 놓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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