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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Jan 21. 2022

첫니를 뽑는 완벽한 타이밍은 언제?




겁이 많은 첫째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높은 병원 문턱을 겨우 넘겨도 막상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치료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들 때문에 진이 빠지기 십상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영유아 검진, 예방 접종 외에는 병원을 갈 일이 거의 없다. 아이 스스로 마스크도 철저하게 쓰고, 외출 후 손을 씻는 등 위생 규칙을 잘 실천해서 별다른 잔병치레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에게 별안간 아랫니가 살짝 흔들리는 증상이 생겼다. 해가 바뀌고 일곱 살이 되니 슬슬 유치가 빠지기 시작하는 것인가? 나는 아이에게 이빨은 치과에 가서 빼자고 일찌감치 구슬렸다. 예상대로 아이는 질색하며 일곱 밤, 열 밤 자고 가자는 둥 병원 가기를 미뤘다.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이가 충분히 흔들릴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마침 나도 일이 몰려 신경 쓸 일이 많기도 했던 터라, 아이의 상태를 매일 체크하지 못한 채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치를 하는데 칫솔이 앞니를 지나자 푹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앗!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호한 말투로 아이에게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가야 한다고 일렀다. 의사 선생님이 5초 만에 뽑아주실 테니 안 아플 거라고.


“엄마 그냥 집에서 뽑으면 안 돼요?”


고양이 눈망울을 하고 엄마에게 애원하는 아이를 보니 완고했던 내 마음이 한 풀 꺾였지만, 집에서 덧나게 뽑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나는 치과를 포기할 수 없었다.


“집에서 뽑는 게 더 아프대, 안 아프게 병원 가자!”


아이는 시무룩해져서 계속 안 가고 싶다고 계속 중얼거렸지만, 나는 그 모습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이 들고 다음 날 아침, 잠결에 아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보통 느지막이 잠든 아이들 덕분에 아침도 늦게 시작하게 되는데, 그날은 아이가 부산스럽게 등원 준비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엄마! 혼자 다 준비했어요~ 오늘은 아빠랑 어린이집 갈래요~”


일찍 출근하는 아빠와 호흡이 맞아서 함께 등원을 하겠다고 아직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에게 통보를 하는 아들. 아이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이의 부지런한 모습이 낯선 나는 왜 오늘 이렇게 서둘렀을까? 비몽사몽 간에 정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렸다. 아, 맞다! 치과! 아이에게 오늘 아침 등원 전에 발치를 하러 병원을 가자고 했는데, 아이는 그 말을 가볍게 어길 수 있는 빠른 등원을 선택했던 것이다. 으이그… 등원을 마치고 출근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린이집 잘 데려다줬어요?”

“응, 오랜만에 아빠랑 가고 싶었나 봐요! 엄청 신나서 가던데요?”

“아마… 치과 안 가려고 한 걸 거예요. 오늘 엄마랑 발치하러 가자고 말했거든요.”

“앗! 뭐야~ 그런 거였어?”


마냥 행복해하던 남편에게 아이의 숨은 의도를 일러주니 ‘어쩐지…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아이의 발치는 조금 더 미루게 되었다.


하원한 아이의 치아 상태를 체크해보니, 이제 이가 거의 누웠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치아를 단단하게 명주실로 묶고 잡아당기면 쉽게 빠진다는 글을 발견했다. 본격적으로 아이를 소파에 눕게 하고 치아에 실을 꽁꽁 감쌌다. 생각보다 치아가 힘이 없어서 실을 싸맬 때마다 조금씩 피가 나왔다. 실이 미끄러지지 않게 두세 번 묶고 이제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데…


“엄마, 제발… 아빠 퇴근하고 아빠한테 해달라고 할래요!”

“이제 쑥 당기기만 하면 된대!”


아빠에게 하고 싶다고 한사코 거부하는 아이를 완강하게 잡을 수도 없어서 내버려 두었는데… 거울 앞에서 자신의 이빨을 관찰하던 아이가 잠시 후,


“엄마! 이가 빠졌어요!”


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뺀 거야~ 물었더니 아이가 실을 살짝 당겼는데 힘없이 이빨이 쑥 빠졌다는 것. 그렇게 우리 아이의 첫니는 허무하게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이때가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었을까?


엄마로서 매번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도장깨기를 하는 느낌이다. 오늘은 [첫 유치 뽑기]라는 도장을 깨는 것이었지. 엄마인 나에게 정답과 노하우가 없어서 매번 핸드폰 검색으로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아이와의 실랑이가 무색하게 자기 손으로 유치를 쑥 뽑아낸 아이를 보니, 허무하면서도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아이는 아이의 페이스대로 한 걸음씩 씩씩하게 내딛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엄마의 조급함에 아이를 생채기 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아이가 자랑스럽게 이빨을 들고 찍은 사진을 다시 찾아본다. 벌써 다음 이빨이 흔들리는데, 이것도 기다리면 되겠지? 자문하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시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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