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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봄 Aug 08. 2016

사랑의 무게

약해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지난 주말, 발작하는 젠을 혼자 두고 집에 가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다. 우리 강아지는 심장 질환으로 이따금씩 발작을 한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도 없다. 아마 처음 발작하는 광경을 보고 엉엉 울던 게 고등학생 때니까, 벌써 6년도 더 되었다.


지난 주말은 남동생이 경주로 이사 가는 날이었다. 당연히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지만, 막상 집을 나서는 시각이 다가오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젠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 전날 밤 오랜만에 발작을 해서 더 신경이 쓰였다. 내가 집을 지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엄마는 그래도 이왕 가기로 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제야 생각이 닿았는데 우리 젠은 집에서 다음날 저녁까지 밥도 굶어야 했다. 너무 마음이 쓰였지만, 남동생도 지금 내려가면 여름까지 못 올라온다고 하고, 여름이면 나도 이 집에 있을지 떠날지 불분명한 상황이라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엄마가 정해준 대로 했다.


일요일 저녁, 올라올 때가 다 되어서 언니와 연락을 했다. 마침 언니네 부부도 주말을 이용해 속초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유명한 만석 닭강정을  사 왔다고 두고 간다길래 마침 잘 되었다, 젠 밥도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언니의 소리, 젠 완전 정신 나간 것 같아, 잘 오지도 않고 계속 허공만 보고...


이미 너무 늦었지만,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같이 결정한 건데 괜스레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는 똑같이 마음이 아프면서 괜히 속상해서 화를 냈다. 어쩔 수 없다고, 우리 젠은 이제 앞으로 점점 더 그럴 거라고, 그러면 개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만 붙어있을 거냐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처리(=안락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나랑 동규는 엄마가 스스로도 무서우면서 이 단어를 이따금씩 쉽게 얘기하는 게 몹시도 못마땅하다.) 그러더니 동규 양복의 행방을 묻기 위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냉큼 젠은 어디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본래 약했던 것을 사랑하기란 쉽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고, 작아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꽤나 어렵다. 약해지고 작아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버겁다. 그 과정은 절대로 점진적이지 않다. 어느 순간 갑자기 성큼 다가와있다. 지나간 시간이 야속하고 그 시간 속의 망설이는 내가 원망스럽다. 지하철 앞에서 귀여운 강아지 옷을 봤을 때 왜 선뜻 사지 않고 꼭 없어도 된다며 망설였을까.  목욕시켜줄게, 하고 뒹굴며 시간을 죽이다가 왜 차일피일 미뤘을까, 무엇보다도 - 산책하고 간식을 먹을 수 있을 때 왜 원 없이 그 쉬운 것 하나 해주지 못했을까. 지난 시간 속의 내가 밉다.


주말 사이 발작을 너무 많이 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오늘 목욕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젠이 자꾸 잘 서지를 못하고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고 순간 겁이 났다. 젠의 가슴팍 털이 다 젖으니 그 고장 난 심장이, 평소에는 요동치는 그 심장이 움직이는 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털을 말려주면서 젠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그리고 젠을 내보내고 샤워를 하면서 어젯밤처럼 또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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