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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Oct 31. 2024

#91. 나는 맥심 모카골드를 사먹어 본 적이 없다

101번 글쓰기

간판교체

최근 믹스커피 시장의 판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동서식품의 맥심모카골드는 오랜 모델 이나영을 내려놓고 박보영을 내세웠고, 원빈이 얼굴이었던 TOP는 이제 젊은 일반인 모델들로 교체됐다. 무엇보다 TOP는 브랜드 메시지 자체를 완전히 바꾸었다. 전에는 ‘RTD’(Ready to Drink) 카테고리 내에서 품질 우위를 강조하던 그들이 이제 ‘가장 가까운 휴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휴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대인들의 잠깐의 여유, 순간의 힐링을 위한 한 잔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맥심모카골드가 한층 젊어진 모델로 박보영을 기용한 데에는 소비자 연령층의 변화를 반영한 선택일 것이다. 데이터를 분석해 봐야겠지만, 믹스커피는 중장년층에 주로 소비되면서 연령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 경우에도 그 여름, 안유진이 광고하는 맥심 슈프림골드를 사서 마신 게 유일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더 달콤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아인슈페너나 크림라떼처럼 달달한 커피를 즐긴다. 믹스커피도 물론 달지만, 그 단맛은 내 취향과는 좀 다르다. 결과적으로 슈프림골드는 딱 한 번의 구매로 끝났다.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또래 중에 집에 믹스커피를 사두고 마시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보다 어린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1등 브랜드가 겪는 아이러니한 위기는 어쩌면 오랜 기간 정상을 유지해 온 데서 비롯되는 듯하다. 소비자와 함께 나이를 먹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브랜드를 젊고 신선하게 보이게 할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모델 교체다. 상징적인 모델이 바뀌면 짧은 시간 안에 브랜드가 새 이미지를 입는 효과가 크다. 특히 믹스커피처럼 구매가 가벼운 제품의 경우 모델 교체만으로도 충분히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맥심모카골드의 본격적인 변화는 2018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1천억 원 아래로 떨어진 해이기도 하다. 동서식품의 시장 점유율이 그때나 지금이나 90%에 달하는 압도적 수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은 분명하다. 주 소비층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해, 맥심은 이태원에 ‘맥심플랜트’를 열고 여러 브랜드 콜라보를 시도하며 리프레쉬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믹스커피를 내 돈 주고 사지 않는다.


틈새공략

요즘은 믹스커피의 새로운 소비 문화를 만드는 시도도 눈에 띈다. ‘뉴믹스 커피’가 그 예다. 우아한형제들 출신 김봉진 의장이 만든 이 브랜드는 “커피는 원래 타먹는 거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특이한 점은 이 커피를 집에서 타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카페에서 판매한다는 것이다. 믹스커피가 젊은 층과 멀어진 이유를 ‘공간의 제약’이라고 본 듯하다. 믹스커피는 주로 집에서 즐기는 용도로 여겨지지만, 젊은 세대는 집이 아니라 카페라는 외부 공간을 통해 타인과 시간을 공유한다. 그래서 카페에서 마시는 믹스커피는 새로운 소비 형태가 된다. 만약 맥심플랜트에서 믹스커피를 팔았다면, 뉴믹스 커피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 역시 가끔 믹스커피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오마카세 커피가 나오고, 일반 카페에서도 두세 가지 원두를 고를 수 있는 시대다. 믹스커피조차도 개인화된 취향을 맞춰야 하는 시대에 진입한 셈이다.


결국, 믹스커피를 고집하는 팬덤이 그것을 점차 사라지게 하는 팬텀(fantom)이 되는 건 아닐까? 방향이 변해야 할 때, 속도만을 조절하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건 아닐지. 어쩌면 맥심이 조만간 더 젊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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