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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늘한여름밤 Jun 28. 2018

네 기분이 풀리면 좋겠지만

내가 풀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오랜만에 아주 느긋하게 소파에 누워 멍 때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고무찰흙을 조물거리는 새로운 조합의 즐거움을 발견해 기분이 좋다. 네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떠올려본다. 현관문이 열리고 네가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에 뛰어나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는데, 너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정으로 서있다. 짜증과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샐쭉한 얼굴. 내가 도와줄 수도, 해결해줄 수도 없는 일들에 뒤덮여 있다. 너는 공허한 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온다. 내가 아주 싫어하는 눈으로 나를 본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는 눈이다. 나는 어떻게든 너의 기분을 풀어주려 무슨 일이냐고 다정스레 물어도 보고, 새로 꽃을 피운 화분도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뭘 해주면 좋겠냐고 안아줬다. 그래도 너는 여전히 반응이 없이 뚱한 얼굴이다. 내 노력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나도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오늘처럼 너의 기분을 풀어주지 못할 때 나는 깊은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다. 네가 고통에 푹 빠져서 내가 하는 말이 너에게 가 닿지 않고 허공에서 흩어질 때, 너의 뺨을 쳐서라도 나를 보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이 싸움의 레퍼토리는 흔히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1) 네가 어떤 일로 피로하고 지쳐서 집에 온다 

 2) 내가 너의 기분을 열심히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3) 네가 나의 노력에 전혀 호응하지 않는다. 

 4) 이제 내가 화가 난다.  

 5) 네가 그제야 나에게 관심을 가지며 네 사정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이 싸움의 승자는 없다. 너는 네 피로에 대해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이 서운해지고, 나는 ‘역시 너는 화를 내야 나에게 신경을 쓰는구나’ 싶어진다. 왜 나는 네 기분을 풀어주지 못할 때 화가 나는 걸까?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고, 아빠의 팔에 매달려 제발 싸우지 말라며 울고 있는 열 살의 내가 보인다. 내가 아무리 간절하게 매달려도 엄마 아빠는 멈출 생각이 없다.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 공간에 없는 사람인 것만 같다. 나는 괴롭고 무서운데 누구도 나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크게 울어도 아무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내가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진다. 가족 구성원이 기분이 나쁜 걸 보면 풀어줘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누군가 미친 듯 고함을 지르고, 욕설이 터지고, 물건이 깨질 것이다. 어린 날의 불안감은 오늘의 분노로 번진다. 내 노력에도 기분을 풀지 않는 너는 그 분노에 불을 댕긴다.  



 ‘네 기분이 풀렸으면 좋겠다’와 ‘네 기분을 풀어줘야 할 거 같다’는 비슷하지만 매우 다르다. 전자는 너를 위한 것이지만 후자는 나를 위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에 잠겨 있을 때 이를 기꺼워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왕이면 사랑하는 사람이 즐겁고 평안한 상태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괜히 애교도 피워보고, 아껴뒀던 초콜릿도 나눠주고, 우스운 이야기로 기분을 환기시켜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기분을 풀어줘야 할 거 같다’고 느끼면 네가 느끼는 고통이 나의 실패가 된다. 나를 실패자로 만든 네가 미워진다. 네가 또 기분이 나빠지면 내가 또 이런 좌절감을 느낄 거라는 생각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너는 너대로 힘들고 지쳤는데, 내 눈치까지 살펴야 하니 괴롭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칡덩굴처럼 꼬아가며 더 깊게 괴로워진다.   


 오늘은 너의 기분을 풀어주지 않기로 했다. 너의 기분은 내 책임이 아니다. 네가 오늘 저녁을 뚱한 얼굴로 짜증에 젖어 보낸다면,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러기로 했다면, 그것은 너의 선택인 것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내 저녁이나 망치지 말자는 생각에 다시 소파에 풀썩 누웠다. 부루퉁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너를 외면하고 나는 다시 팟캐스트 볼륨을 키운다. 내가 아무리 너에게 중요한 존재라도, 네 머리 속 신경전달물질이 아닌 이상 너의 기분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 어쩌면 너는 그냥 기분이 나쁜 채로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네가 기분 나쁜 채로 있으면 어쩔 건데? 결국 네 기분만 나쁜 것이다.  


 물론 나는 네 기분이 풀렸으면 좋겠다. 네가 벙글 웃으면 내 마음도 밝아진다. 그러나 아니라면? 나는 재밌는 팟캐스트 들으면서 나라도 웃고 싶다. 네가 진흙탕에서 뒹굴 때 거기서 그러지 말라고 말리다 나까지 진흙을 뒤집어 쓰고 기분이 나빠지고 싶지 않다. 그리고는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라고 너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대신 네가 진흙탕에서 구르는 걸 멈췄을 때 네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고 싶다. 깨끗한 물로 씻겨주고 따뜻한 차 한 잔 내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찰흙을 열심히 가지고 놀다가 네 얼굴을 흘끗 본다. 어느새 너도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지 피식피식 웃기 시작한다. 내 옆으로 오라고 손짓해 소파에 편히 눕힌다. 네 손에도 찰흙을 반 나눠 쥐어준다. 재미있는지 조물조물 거리는 네 표정이 조금씩 밝아진다. 내가 만든 즐거운 저녁 시간에 네가 들어온다. 거봐, 내 말 듣기를 잘했지 싶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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