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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2. 2023

20. 1년 후 우리는

삼부자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아버지의 용기


후 띠우 집에서 나오려는데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종업원들과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카운터에 앉아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생김새로 보나 옷차림으로 보나 한국 사람이 틀림없었다.


"예.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는 아파트 월세가 얼마씩 해요?"

아버지가 주인에게 아주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모르는 사람한테 이런 질문을 먼저 한다고? 수줍은 많고 남에게 폐 끼치기 죽도록 싫어하는 아버지가? 아버지는 질문을 이어갔다.


"푸미흥에 몇 달 살고 싶은데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가지고요."

"아, 그러시군요. 아마 여기 서비스 아파트 같은 곳들은 월세로 50-60만 원 정도 할 거예요. 이게 컨디션마다 달라서 부동산에 가서 물어보시면 잘 알려 줄 겁니다."

"아 그럼 부동산이 어디에 있나요?"

"요 길 따라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5분쯤 걸어가면 OO 부동산이라고 있어요. 한 번 가서 물어보세요."
"예, 아이구, 감사합니다. 예, 안녕히 계십시오."


아버지가 가게 주인에게 건넨 말 중에 '푸미흥에 몇 달 살고 싶은데'가 귀에 꽂혔다. 아버지는 정말 베트남과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어 하는구나. '점진적 발전', '단계적 접근' 그런 말들이 생각났다. 1년 넘게 베트남 기초 연구를 하다 처음 베트남에 발을 들였으니, 이제 한 달살이 같은 것을 하면서 다음을 내다보려는 것일까. '지공 노인'의 도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부동산에 가보기 전에 일단 푸미흥을 둘러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실행하자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지도 안에서도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는데 지도에서 눈을 들어 실제 상점들을 보니 더 혼란스러웠다. 베트남어보다 한국말이 더 잘 보였다. 


"아빠, 저기 봐보세요. 부산최고 돼지국밥이에요. 반찬나라도 있어요. 가정식? 여기는 왜 한글이 있어요?"

아들은 즐비한 한글 간판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정식 Buffet'라 쓰인 식당을 '가정식'까지만 읽고 넘어가는 것이 귀여웠으나 굳이 '부페'로 읽으면 된다고 알려주진 않았다.

"여기는 베트남에서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라서 그래."

"한국 사람이 많다고요? 진짜요?"

"응. 한국 사람들은 돼지국밥도 먹고 싶겠지? 그리고 반찬도 먹고 싶을 거잖아. 매일 쌀국수만 먹으면 질리니까."

"크크, 맞네요. 그럼 돈가스 집도 있겠네요? 꼼장어 집도 있고."


아들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있는 꼼장어 집을 궁금해하길래 한 번 사줬더니 아들은 꼼장어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꽤 커다란 구역 전체에 한국 상점이 가득했다. 전설의 짬뽕, 열광식당, 강남비비큐... 심지어 노랑통닭과 파리바게트까지. 푸미흥은 '경기도 품이 신도시'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듯했다.


세 남자는 점점 뜨거워지는 해를 피해 딱 봐도 한국 사람이 주인일 것 같은 카페에 들어가 푹신한 소파 자리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음료를 마셨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었다. 메뉴판도 한글이었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을 느끼며 음료를 주문했다. 아버지는 베트남 커피 대신 따뜻한 라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들은 초코라떼를 시켰다. 한국에서 셋이 카페를 가면 아마 이렇게 주문할 것이다.     

한국식 카페, 한국식 우정 사진




푸미흥 부동산 탐방


"아버지, 우리 한국 들어간 다음에 베트남에 또 오시게요?"

"글쎄다. 자주 와봐야 더 느낄 수 있지 않겠니? 겨울에 베트남 날씨가 좋으니까 두세 달 정도 있다가 가면 얼마나 필요하려나 궁금하다."

"아, 두세 달을 혼자 지내실 수 있겠어요?"

"그렇지. 길면 혹시 아플 수도 있고 하니까 좀 그렇고, 두세 달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여기 푸미흥 옆에 똔득탕 대학교에 베트남어 어학 코스도 있더라. 얼마씩 하려나 모르겠네."


아버지는 내 생각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그는 가장 날씨가 좋은 겨울에, 두세 달쯤, 어학 코스를 하며 베트남 생활을 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생각이 바로 실행에 옮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삼부자 여행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망설일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베트남행 비행기표를 보며 몇 달 동안 망설이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나에게 '아버지를 데리고 베트남에 가달라'고 부탁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면 푸미흥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지 명확했다. 아버지의 계획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계획에, 내 실행력이면 이거 완전히 살아있는데?'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최사장님 인맥에 내 실력이면 이거 완전히 살아있는데"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


후 띠우 집 사장님이 알려 준 부동산 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구글 지도를 켜고 검색을 했다. '부동산'이라고 치니 한국도 아닌데 부동산이 여러 개 나왔다. 그중에 한국 사람들이 좋은 리뷰를 남겨 준 부동산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네 OO부동산입니다."

한 여성분이 한국말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에서 여행 왔다가 베트남을 좀 더 알아보고 있는데요. 혹시 몇 달 정도 머물 월세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러세요? 월 단위로 계약할 수 있는 서비스 아파트들은 있어요. 저희는 그쪽 물건보다는 분양이나 장기렌트 물건을 많이 하긴 하는데요. 얼마든지 구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저는 OOO실장이고요. 제가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요. 푸미흥에 계신 거면 30분 후에 저희 부동산에 잠깐 오실 수 있으세요? 제가 서비스 아파트도 그렇고 베트남 부동산 정보를 많이 좀 드려볼게요."


신뢰감을 주는 당찬 목소리의 여성 실장은 거침이 없었다. 나는 우리의 포지셔닝을 한국에서 온 베트남 이주 관심자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부동산에서도 단기 거주자가 아닌 잠재 고객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단계적 접근이라면 언젠가 베트남에 집을 마련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나 그랩을 타고 5분 거리의 부동산으로 이동했다. 부동산은 규모가 꽤 있는 곳이었다. 베트남 현지 직원들은 모두 한국어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벽면엔 큰 사이즈의 푸미흥 지역 지도와 호치민 시 전도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보던 부동산의 벽면과 비슷했다. 지도에는 주거지, 상업지, 녹지 등을 구분해 색이 칠해져 있고 아파트 단지의 이름들도 볼 수 있었다. 


"실장님 곧 오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물 좀 갖다 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친절한 직원이 물을 세 잔 가져다주었다. 


"아버지, 다 물어봅시다. 궁금한 것 있으면 다 물어보세요. 완전히 다 해결하고 갑시다."

"그러세."


아버지는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40년을 넘게 봐온 아버지다. 아버지의 긴장은 겉으로 표시가 난다. 말소리도 작아지고 제스처도 조심스러워진다. 아버지는 마치 입사 면접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는 청년 같았다. 베트남 비자 발급 인터뷰를 하러 온 베트남 이민 준비자 같기도 했다. 이에 비해 아들은 '지금 내가 어디에 온 건가'라는 표정을 지으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부동산은 시원해서 아들이 숙소로 돌아가자고 할 일은 없었다. 


그때 부동산 문을 열고 통화했던 실장이 들어왔다. 목소리만큼이나 자신감 있고 당당한 사업가 스타일의 여성이었다. 


"아우, 많이 기다리셨죠. 제가 옆 아파트 소유주하고 잠깐 볼 일이 있어서 갔다 왔어요. 호치민에는 처음 오셨나 봐요. 숙소는 어디에 잡으셨어요?"

우리가 어떤 손님인지 빠르게 견적을 내려는 질문이었는데 화법이 자연스럽고 부담이 없었다. 첫마디부터 베테랑이구나 싶었다. 


"네, 숙소는 1군에 있어요. 처음 오긴 했는데요. 저희 아버지가 베트남에 관심이 많긴 한데요. 여행 와보니까 관심이 계속 생겨서요. 단기거주를 좀 하면서 호치민은 살기가 어떤지 좀 볼까 하고 계시거든요."

"네, 그러시군요. 단기 거주는 서비스 아파트 형태가 많이 있어요. 그런 곳들은 월세로 보통 하는데 얼마든지 저희가 저렴하게 구해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앞으로도 이쪽에 관심이 계속 있으시면 실제로 여기 사시는 한국분들 거주를 좀 체험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 푸미흥 지역 하고, 호치민 시를 좀 간단하게 브리핑을 해드릴게요."


실장은 우리가 잠재 고객이라고 판단했는지, 호치민 시 전체 지도를 가리키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가 있는 곳, 여기가 푸미흥이에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이 지역이 묵고 계시는 1군 관광지역에 비하면 굉장히 잘 관리가 되고 있지요. 그럴 수 있는 것이 이 지역은 대만의 개발사가 50년 동안 이 지역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개발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느끼셨겠지만 도로나 공원도 한국만큼 잘 되어 있고요. 그래서 한국 분들이 만족하고 거주를 많이 하고 계세요. 푸미흥은 고급 아파트 단지들이 많은데 수요가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게 국제학교들이 많아요. 한국,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 다 있어요."


실장은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1학년 아들을 슬쩍 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 교육에 굉장히 좋은 투자니 베트남에 온다면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다른 부동산들이 어떻게 좋지 않은 입지의 매물들을 파는지 설명을 하며 상대적 신뢰를 획득하는 것은 덤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들었다. 필요한 정보는 내가 다 잘 물어보고 있다며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호치민 부동산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푸미흥 말고도 2군 지역이 떠오르고 있다는 정보, 그중에서도 도로와 지하철 역을 주목해서 봐야 한다는 정보, 새로 분양하는 고급 단지의 정보,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시세 정보까지 우리는 부동산 1회 방문으로 많은 것을을 얻었다.


"베트남 너무 좋지요. 저도 중국에서 오래 부동산을 하다가 10년 전에 베트남으로 넘어왔는데요. 투자로도 그렇고 나이 있으신 분들 날씨가 따뜻하니까 거주하기도 그렇고 참 좋아요. 겨울에 단기거주 계획 세워지시면 꼭 연락 주세요. 제가 잘 구해드릴게요."


우리는 부동산 실장의 명함을 받아 부동산에서 나왔다. 이 정도면 아버지의 다음 계획을 세우는 데 크게 문제는 없을 듯했다. 똔득탕 대학교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어학과정 비용만 알아보면 세 달 동안 베트남에서 보내는 대략의 비용은 예상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알겠다. 얼마나 들지 알겠다. 월세가 싼 곳은 50-60만 원이면 되고, 밥은 비싸지 않으니까 잘해 먹고 하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면 될지도 모르겠다."

"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맨날 2,000원짜리 쌀국수만 먹고 그러시면 안 되고요."

"에이, 얼마 안 들어. 아부지도 옛날에 크면서 다 그렇게 먹고살았고, 베트남 사람들 다 먹고사는데 뭘. 관광객들 먹는 비싼 거 안 먹어도 암시랑 않다."


한국에 돌아가 아버지가 이 계획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직도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 어머니에게 미안해하며 계획을 철회할지 모른다. 혹시 몸이 아플까 걱정이 되어 망설일 수도 있다. 안 될만한 이런저런 이유들이 비행기 표를 찾는 아버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 수도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나라 베트남. 베트남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도시 호치민. 호치민에서 가장 큰 한인타운 푸미흥의 부동산에서 나오며 1년 뒤의 미래를 상상했다.


72세 우리 아버지는 이 부동산에서 서비스 아파트를 계약해 3개월간 머무르겠지. 그리고 똔득탕 대학교든 주변의 어학원이든 등록해 베트남어를 배울 거야. 3개월 만에 많이 배울 순 없겠지만 식당에서 주문하고, 길을 찾아가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나와 아들은 아마 아버지가 출국한 지 두 달쯤 뒤에 호치민행 비행기를 타겠지. 이번에는 호텔이나 에어비앤비가 아닌 아버지의 집으로 갈 수 있겠네. 어쩌면 삼부자 말고 여성 동지들과 함께 갈 수도 있을 거야. 그 사이에 아버지는 호치민 시내 웬만한 구석구석은 다 돌아다닌 전문가가 되어 우리를 가이드해줄 것 같아. 아버지의 멋진 안내에 우리는 감탄하며 베트남을 더 사랑하게 될 거야. 아들은 이제 식당에서 화장실이 어디인지 알려주면 '땡큐' 대신 '깜 언'이라고 하겠네. 어쩌면 다음 여행 때는 베트남 친구들을 사귀게 될 수도 있겠다. 음, 회사에 베트남에 보내달라고 하면 어떨까. 내가 베트남 시장을 개척해 오겠다고. 아니면 글쎄, 베트남 시장을 놓고 창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토바이들 보니까 거치대도 제대로 없는 사람 많던데 오토바이 액세서리 사업도 괜찮겠다. 아니면 전기 오토바이를 보급해 볼까. 호치민 공기가 달라질 텐데. 


삼부자의 베트남 모험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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