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자 베트남아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해가 밝았다. 우리의 마지막 아침은 정해져 있었다. 그동안 베트남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을 한 번 더 먹기로. 우리는 마지막까지 일찍 일어났다. 마지막 아침은 전날 저녁으로 맛있게 먹은 쌀국수였다. 베트남에서 가장 맛있는 쌀국수라며 극찬하던 손주가 제안하고, 쌀국수 마니아 할아버지가 승인했다. 나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첫 번째로 꼽은 음식이라면 나의 첫 번째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식사는 뜨끈하고 진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맛을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맛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곧 베트남에 다시 오리라.
"한국에 가서 동생한테 선물로 줄 거예요. 나는 어제도 사탕 받았잖아요."
아들은 쌀국수 집에서 '키즈 세트'를 시키고 받은 사탕을 아이언맨 가방에 넣었다. 베트남에 와서 한 번도 챙기지 않던 동생을 챙기는 것 보니, 이제 곧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체감된 모양이었다.
조식으로 뜨끈한 쌀국수를 먹고 마지막으로 응웬훼 광장을 걸었다. 광장과 가까운 숙소를 잡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우리는 날마다 응웬훼 광장을 앞마당처럼 거닐 수 있었다. 오늘의 응웬훼 광장에는 흰색의 베트남 전통복장을 하고 화관을 여자들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예비 신부들인지 모델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삼부자에게 잘 가라고 인사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많은 해외여행을 다녔지만 떠나는 날 이런 감정이 든 적은 없었다. 아쉽다는 말보단 '섭섭하다'는 말이 적절했다. 나는 왜 섭섭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과 집에서 떠나는 느낌이 공존했다. 그래봤자 일주일 동안 잠시 머문 베트남이 집처럼 느껴진 것은 왜일까.
"아빠, 할아버지. 제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어요. 자, 이렇게 하는 거예요. 우리 세 사람 중에 두 명이 같고, 한 명만 다른 걸 찾는 거예요. 알겠죠? 제가 먼저 해볼게요. 나랑 할아버지는 운동화를 신었는데, 아빠는 샌들을 신었다. 알겠죠? 해보세요."
"오 알겠어, 재미있겠다. 아빠랑 할아버지는 안경을 썼는데, 아들은 안경을 쓰지 않았다."
"잘하는데요? 이제 할아버지 차례예요."
"할아버지랑 너는 모자를 썼는데, 아빠는 쓰지 않았다."
"맞았어요. 이렇게 돌아가다가 못 찾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에요. 자 또 할게요."
72살 할아버지와 40살 아빠, 8살 아들은 숙소를 떠나 그랩을 타고 공항에 갈 때까지 계속 공통점 찾기 놀이를 했다. 우리는 서로를 아주 자세히 관찰했다. 당신과 내가 무엇이 같은지, 무엇이 다른지 생각했다. 아버지는 머리카락이 하얗지만, 아들과 나는 검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은 다르니까. 아버지와 나는 어른이지만 아들은 어린이다. 아들에게는 어린이만큼의 내일이 있다.
둘의 공통점을 다 찾고 나서 놀이는 셋 모두 똑같은 것 찾기로 바뀌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도 많다. 우리는 모두 검은색 가방을 메었다. 아버지와 나, 아들은 모두 사랑하는 남동생이 있는 형아다. 우리는 모두 쌀국수를 좋아한다.
"우리는 모두 반바지를 입었다. 맞죠? 이제 아빠 하세요."
"아빠 할게. 우리는 모두 서로를 사랑한다."
"그게 뭐예요. 다시 하세요. 확실한 걸로 해야죠."
"확실한데 왜."
"하긴 그러네. 할아버지 차롑니다."
"우린 모두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왔다."
베트남이 집처럼 느껴진 이유는 두 남자 때문이었다. 앞으로 베트남을 무대로 펼쳐질 인생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삼부자의 상상이 현실이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나와 같은 것이 100가지도 넘는 남자들과 함께 한 베트남 여행은 그 자체로 인생의 한 조각이었다. 인생의 한 조각을 보낸 곳이 집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인의 유난한 베트남 사랑에서 시작된 삼부자 베트남 모험의 막이 내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모든 짐을 가지고 나왔다. 그랩을 타고 떤선녓 국제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셔틀버스를 타고 Vietjet 비행기로 갔다. 비행기는 메콩델타를 지나고 남중국해를 지났다. 아들은 베트남에 올 때와는 달리 비행기가 뜨자마자 잠이 들었다. 우리는 호치민에 도착해서 경험한 것을 역순으로 다시 경험하며 서울에 도착했다.
남자만 셋. 여자들은 한국에 두고 떠나 온 베트남에서의 일주일이 우리 가족을 어디까지 인도할지 아직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닮은 것이 수도 없이 많은 세 남자가 함께 사이공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밤 9시가 돼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전히 손을 잡고 있었고 여전히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 문을 연 식당이 없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었지만, 할아버지는 그마저도 손주를 주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되어 먼저 인사를 하고 떠나자 아들은 할아버지가 줄을 서 있는 버스 뒤편으로 몰래 다가갔다.
아버지는 노년의 삶의 일부를 보낼 곳으로 정말 베트남을 선택하게 될까.
불혹이 아닌 '40춘기'를 보내고 있는 나는 도전의 무대로 베트남을 선택할 수도 있을까.
막 학교라는 사회에 들어간 아들은 어린이가 더 많은 베트남과 인연을 맺게될까.
삶은 퍼즐이다. 퍼즐에는 조각이 수백개지만 유독 존재감이 큰 퍼즐이 있다. 그런 퍼즐 조각은 다음 퍼즐의 힌트가 된다. 퍼즐을 맞추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기대하게 한다. 우리는 사이공에서 서로의 삶에 중요한 퍼즐 조각을 찾아준 것이 아닐까.
그 답은 미래에 알 수 있다. 그것이 퍼즐의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