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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7. 2024

노인이 어린이가 되는 법

후 띠우 한 그릇의 교훈

배려엔 역배려를


아버지는 베트남 여행에서 미래를 보기 원했다. 아들 손주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한인이 가장 많다는 호치민, 그중에서도 꽤 큰 한인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7군 지역의 푸미흥이었다.  


푸미흥은 사실 일반적인 관광객들이 잘 가는 곳이 아니다. 호치민의 한인촌이자 한인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다. 1군 중심지에서 그랩을 타면 30분 정도를 이동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아버지, 이제 우리 여행도 얼마 안 남았는데 푸미흥에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좋지. 그런데 구찌터널 투어 같은 것 해도 좋지 않겠니?"


아버지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구찌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몸집이 작은 북베트남군이 미군을 상대로 기습공격을 하기 위해 만든 지하땅굴이다. 아버지는 과거가 있는 구찌터널보다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는 푸미흥에 가길 원했지만, 아들과 손주가 원치 않을까 봐 특유의 배려화법을 쓴 것이다. 


"푸미흥 가봅시다.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여기 푸미흥에 보니까 맛집이 있네요. 처음으로 한 번 음식점 찾아서 가봐요. 찐로컬로만 먹으니까 찾아서도 가고 싶네요."

나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푸미흥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배려엔 역배려다. 


우리는 푸미흥에서 한 유튜버가 추천한 후 띠우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푸미흥까지는 8.4km였다. 푸미흥으로 가기 위해 그랩 최초로 100,000 VND 동의 호출을 했다. 삼부자가 탄 그랩은 호치민의 한인타운 푸미흥으로 향했다. 




노인이 어린이가 되는 법


삼부자는 푸미흥의 후 띠우 집에 도착했다. 푸미흥 지역으로 넘어오자 계획도시의 느낌이 났다. 1군에서 볼 수 없었던 대로가 있었고,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잘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주상복합 아파트와 비슷한 느낌의 새 건물들도 많이 보였다. 한국 사람들이 살아서 이런 느낌이 나는 걸까, 아니면 이런 느낌이 나서 한국 사람들이 정착한 것일까. 


한인을 위한 베트남 정보를 올리는 유튜버 알탕형


우리는 국물 후 띠우 하나와 비빔 후 띠우 두 개를 주문했다. 유튜버가 감탄을 하며 소개해 준 집답게 한국 사람들이면 모두가 좋아할 맛이었다. 위생에 자신이 있는지 오픈 주방 형태였고, 가격도 한 그릇에 4,000원 정도로 비싸지 않았다. 


간장 베이스의 진한 고기 국물에 각종 돼지 부속 고기를 넣고, 얇은 후 띠우 면에 말아 준 요리였다. 돼지비계를 잘게 썰어 튀긴 뒤 야채와 함께 고명으로 올렸다. 국물은 깊었고, 후 띠우 면발은 쫄깃했다. 안에 들어간 고기와 새우도 육질이 신선하고 식감이 살아 있었다.  


"상당히 맛있다. 이것이 후 띠윤가 후- 띠우. 많이 먹어라."


기분 좋은 리듬으로 '후 띠우'를 말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도 새로운 맛의 쌀국수에 만족한 듯 했다. 아들은 그랩 안에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짜증을 부리다 아빠에게 한 소리를 듣고 토라져 있었으나, 후 띠우 국물을 맛보더니 기분을 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음식은 무조건 찐 로컬만 먹어야지'라 했는데, 그 말을 완전히 철회하고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사람은 생각을 고정하는 순간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즐길 수 없다. 평범한 진리다. 어제까지 굳게 믿었던 것이 오늘 달라질 수도 있다. 


40세 아들과 1학년 손주를 베트남에 데려온 노년의 미스터 사이공은 아직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제까지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꾼다. 그래서 이 노인은 아직도 새로운 세상을 어린이처럼 즐기고 있다.


후 띠우 한 그릇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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