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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2. 2023

약속은 지켜야죠

그래 아들 말이 맞다

약속은 지켜야죠


한국에서는 아침잠이 그렇게 많은데 여행에서는 아침 6시만 되면 눈이 떠지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에어비앤비의 침대는 어린이가 자기에는 높은 침대였다.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나 별일 없겠지 싶어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두 시나 되었을까. 옆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이 굴러 떨어졌나 화들짝 놀라 일어났는데, 아들은 바닥에 반무릎을 꿇고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굴러 떨어졌지만 잠에 취해 미처 침대 위로 올라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대로 잠든 아들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나는 일어나 바닥에 이불을 깔고 아들을 눕혀 주었다.


곧 아버지도 잠에서 깨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스스로의 기억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다시 한번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이다. 아버지는 나와 반반씩 나누어 보관하기로 했던 현금을 꺼내 세어보고 있었다.


"아버지, 돈 잘 있죠?"

당연히 잘 있을 것을 알면서 괜히 물었다. 나까지 같이 확인을 해야 아버지의 마음이 편한 것을 알았다. 

"응 그래. 잘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돈도 잘 있는지 한 번 봐라."

"잘 있겠죠. 안 뺐으니까요."

기왕이면 나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아버지가 더 안심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귀찮았다. 아직 효자가 되려면 멀었다. 


바닥에서 자던 아들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외쳤다.


"맥도날드. 맥도날드 가기로 했잖아요."

"응. 그런데 혹시 다른 거 먹고 싶지는 않아? 맥도날드보다 맛있는 거 많지 않을까?"


아들은 맥도날드를 꼭 한 끼는 먹자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약속은 소중하다.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신뢰를 잃는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은 자꾸 약속을 어길 이유를 생각하고 합리화를 한다. 


"약속했잖아요. 약속은 지켜야죠."

아들이 맞는 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심은 말이었다. 아들에게 심은 말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맞는 말을 심으면 맞는 말이 돌아오고, 사랑의 말을 심으면 사랑의 말이 돌아온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심은 것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내가 가르친 것이므로 나는 나의 수제자나 다름없는 아들과 함께 맥도날드로 갈 채비를 했다. 할아버지는 손주와 약속을 한 적이 없으나, 아들과 손주가 선약이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맥도날드로 함께 향했다. 선약이 그렇게 중요하다.


우리는 응웬훼 광장에 있던 맥도날드에 가서 맥모닝 세트로 아침을 먹었다. 베트남 맥도날드라고 특별할 건 없었다. 아메리카노 대신 카페 쓰어다라는 베트남식 연유 커피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 정도였다. 우리는 DELICIOUS BURGER라고 쓰인 벽 앞에서 유일한 손님이 되어 맥모닝 세트를 즐겼다. 질깃한 머핀빵과 뜨끈한 해쉬브라운이 빈 뱃속을 채워주었다.

 

호치민 응웬훼 광장의 맥도날드 전세가 10,000원



오토바이 경적에 담긴 사회적 약속


우리는 맥도날드를 나와 응웬훼 광장을 한 바퀴 걸었다. 그쯤 되니 응웬훼 광장은 집 앞에 있는 공원 같이 익숙했다. 광장에서 무엇인가 수련을 하는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을 지나쳐 숙소 쪽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빠아아아앙"

오토바이 한 대가 큰 경적을 울리며 아버지 앞을 쌩 하고 지나갔다. 


"아버지! 괜찮아요? 조심해서 건너셔야죠. 그냥 그렇게 막 건너면 어떡해요."

"깜짝 놀랐다. 너희는 괜찮니. 베트남에서는 오는 차를 안 보고 건너야 한다더라. 보고 갑자기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사고가 많이 난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갔다. 호치민에는 오토바이가 사람보다 더 많다. 자동차, 오토바이, 사람이 한 데 뒤섞여 서로 갈 길을 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신기한 건 무질서 안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오토바이가 달려오면 화들짝 놀라 옆으로 피할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멀리서부터 사람과 오토바이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서로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자동차 운전자와 오토바이 운전자 사이는 50cm가 될까 말까 한 거리밖에 없다. 운전자 모두에게 이런 말풍선이 모두에게 떠다니는 것 같다.


'나는 이 정도 속도니까 당신도 멀리서부터 잘 체크해. 아마 내가 오토바이 당신보다 더 빨리 이 길을 건널 것 같으니까 속도를 살짝 줄이면서 서로 안전하게 잘 건너 보자고.'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한 대가 넘어지면 모두가 도미노처럼 붕괴될 것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베트남에 며칠 있다 보니 나도 무언의 말풍선을 날리는 방법을 어느 정도 깨우치게 되었다. 


우선 다가오는 오토바이들과 최대한 눈을 마주친다. 나의 걸음 속도를 유지하되 언제든 조금씩 가감속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절대 급발진, 급정거는 안 된다. 모두가 놀라 자빠질지 모른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베트남에서 조금씩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방식은 달랐다. 아버지가 이해한 방식은 이런 것이었다. 차들은 알아서 사람들을 잘 피해 가니 보행자는 차의 흐름과 관계없이 자기 갈 길을 천천히 가면 된다는 것.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안전하게 걷기 위해서는 차를 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 된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아버지, 그래도 그냥 막 건너시면 어떻게 해요. 저기 오는 차랑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건너야죠."

"그러냐. 나는 지금까지 차를 안 보고 건너야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완전히 틀린 건 아닌데요. 그래도 이제부터는 차를 보고 건넙시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 사람들 안에 내재된 약속이 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베트남의 교통질서가 엉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는 빵빵대는 경적은 기본이니까. 하지만 베트남에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 오랫동안 체화된 암묵적인 룰이 있다. 베트남에 온 사람들은 그 룰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룰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놀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차가 오지 않아도 길을 건널 수 없는 신세


다만 우리 아버지는 이 사건 이후 혹시나 사고가 날까 봐 먼저 길을 건너지 못했다. 베트남의 룰이 노인의 몸에 익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겠지.


약속은 지켜야한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만의 약속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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