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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6. 2022

그 언덕에 서면 봄은 저만치

-우리 동네 바를레타에 찾아온 봄소식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풍경 속으로..?!


    서기 2022년 2월 15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구름 낀 날씨에 약간은 포근한 기온이었다. 조석으로 썰렁하던 날씨는 누군가 오븐에 살짝 데운 듯하고 사람들의 차림새는 점점 더 얇아지고 있다. 비록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우리는 조금 전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바닷가 산책로로부터 언덕까지 진출했다. 농막이 어렴풋이 보인다.


당신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광기를 어쩔 줄 모르는지.. 밤이 오시면 청춘들은 가끔씩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봄바람에 실려온 것인지.. 이탈리아 남부의 겨울 날씨는 아드리아 해서 불어온 비바람을 동반한 차가운 바람이 전부이다. 비바람의 빈도가 점차 약해지면서 봄빛이 점점 더 짙어지는 것이다. 우기의 겨울은 그래서 봄을 등에 업고 나타나는 게 훤히 보일 정도이다. 숨길 수 없는 이곳의 날씨.. 


하니가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고 있는 가운데 발견한 고목으로 변한 비에똘라(Bietola).. 기막힌 봄나물이다.


그 속에 우리의 모습도 오롯이 남아있었다.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던 하니는 두 해 겨울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바를레타로 돌아왔다. 그리고 세 번째 맞이하는 겨울은 이곳 바를레타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두 해 겨울을 이곳에서 나 홀로 지내게 됐다. 이런 걸 혈혈단신이라고 했던가.. 홀아비 신세가 이런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잠꼬대처럼 한 번 두 번 이어지고 있었다. 


아드리아해와 바를레타 평원(사구)의 아름다운 조합. 어떻게 잊을까.. 꿈같은 풍경이다.


나는 그때마다 "사람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을 하곤 했다. 누군가 곁에 머물면서 소통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럴 일이 없다면 한적한 바닷가에서 소리라도 질러봐야 할 것인가.. 겨울이 저만치 가시고 봄이 오시는 어느 날 밤 청춘들이 질러대는 괴성은 매우 동물적이었다. 마치 늑대가 달을 보고 슬픔을 토해내는 듯한 울부짖음..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바를레타(Barletta)와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Margherita di savoia) 경계점(집에서부터 5km 왕복 10km)에 이른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 홀로 두 해를 보내는 동안 겨울은 무척이나 길었다. 속으로 참아낸 답답함.. 해와 달의 운행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드리운 검고 기다란 천처럼 겨울은 쉽게 봄을 내주지 않았다. 봄이 보이지 않았다.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지천에 널려있었지만 그건 봄이 아니었다. 


바를레타 평원에서 자라던 작물들이 종자를 교체하고 있었다. 유채꽃이 피면 봄날은 저만치..


그런 어느 날 맞이한 봄날은 또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그게 두 해 겨울 동안 내게 일어난 세월의 흔적이었다. 그때마다 바닷가로 나가 그녀와 나눈 짧은 통화..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눈에 보여야 하고 곁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있을 때 잘해.." 하며 알듯 말듯한 소릴 내뱉는다. 


한 눈에 봐도 비옥한 토지..아드리아 해가 내어준 사구의 풍경이다. 낮에는 내륙풍이 아드리아해 쪽으로 불고 밤에는 밤에는 해륙풍이 아드리아 해로부터 불어온다. 따라서 산책로에는 부드러운 모래가 늘 쌓여있다.


누구 듣기 좋아라고 하는 소린지 아니면 언제라도 멀리 도망칠 생각인지.. 무슨 카피 하나 나오면 앵무새처럼 조잘조잘 따라쟁이.. 있을 때 잘해.. 맞는 말이긴 하다. 그 두 해동안 바닷가를 서성이거나 산책을 하면서도 후회될만한 일을 생각해 봤다. 당신이나 나나.. 그 누구든 부재중이라면 생각해 볼 일이었다. 


누구나 본의 아니게 별리의 아픔을 겪게 된다. 그게 물리적이라면 몰라도 운명적이라면 당신이 잘 못 한 일이 아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을 때 좀 더 잘해주었으면.. 좀 더 사랑했으면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서기 2022년 2월 15일 오후, 하니와 나는 시내 중심에서 아드리아해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통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녀로부터 "응, 우리 봄나물 캐던 데.."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볼 일이 있어서 사정상 그녀가 먼저 출발하고 뒤따라 그녀를 쫓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종려나무 가로수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빗방울이 후드득거렸다. 우산을 챙기지 못했으므로 낭패가 생기기 직전 다시 통화를 했다. 근처에 비를 피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다행히 그곳에는 바를레타 평원에 지어놓은 한 농막 근처였다. 그래서 일단 "그곳으로 몸을 피하라"라고 말하고 바쁜 걸음으로 농막에 도달했다. 

그때쯤 하늘은 빗방울을 멈추었다. 소나기라도 퍼부었으면 황순원 작가가 그린 아름다운 단편 <소나기>의 주인공이라도 될 뻔했을까.. 세상일은 늘 이 모양이다. 소설 소나기의 주인공은 소년과 소녀.. 바를레타 평원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년과 소녀의 마음이 소나기를 닮았다면, 우리는 그칠락 말락 한.. 한두 방울의 빗방울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있을라고..ㅜ



우리는 그 즉시 바를레타 평원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은 그녀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떠나기 전 함께 걸었던 곳이다. 아드리아해가 저만치 내려던 보이는 언덕에 서면 봄이 가슴 한가득 안기곤 했던 곳. 겨우내 비바람이 할퀴고 다닌 바를레타 사구의 평원은 봄볕이 이미 지나고 있었다. 

내 조국 한국은 여전히 영하권에 머물고 있는데 이곳은 봄이 등을 보이며 아드리아해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어때.. 내 곁에는 그녀가 함께 걷고 있고 무시로 "이것 봐..  저것 봐"라며 좋아라 말을 시킨다. 농부들이 땀 흘려 가꾼 작물 곁으로 봄나물이 지천에 널린 것이다. 



나는 조금 전, 그녀와 만나기 전 평소에 걷던 길을 조금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며 봄나물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바닷가 사구를 구간별로 나누고 각 구간에 자생하는 봄나물을 하나씩 써넣는 것이다. 요긴 냉이 요긴 비에똘라 요긴 씀바귀 요긴 달래 요긴 미나리 등으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놓으니.. 마치 내가 이곳에 농사를 짓고 있는 듯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를 접고 언덕 위에 서면 표지를 완성하겠지.. 그다음 표지에 <그 언덕에 서면 봄은 저만치>라고 쓰고 <하니와 함께>라고 읽는다. 히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녀와 함께 겨울을 보내는 동안 시간은 얼마나 바쁘게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지.. 그뿐인가. 엊그제 만난 봄 같은데 봄날이 저만치 가고 있는 것이다. <계속>



예고편_바를레타 평원에서 만난 양배추의 화려한 자태



Notizie di primavera arrivate nel sud d'italia_il Mare Adriatico
il 15 Febbr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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