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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6. 2022

검사동일체란 공범의 다른 말

-무솔리니의 최후와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


봄비 오시는 날 우리 동네를 돌아보면서..?~



   서기 2022년 3월 6일 오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이틀 전에 찍어온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이틀 전.. 그러니까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이곳에는 꽤 많은 비가 오셨다. 비 님이 오셨다. 봄을 마구 떠미는 봄비.. 이런 날은 집에서 방콕 할 수 없는 강한 유혹에 빠져든다. 당장 카메라와 우산을 챙겨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올 생각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이미 동선이 짜여 있었다. 맨 먼저 집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한 건축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실리카 디 산 도미니코(Basilica di S. Domenico)에 속한 한 담벼락이었다. 이 교회의 역사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담벼락 곁을 지나면 박제된 시간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이다.



가톨릭의 나라 이탈리아 어느 곳을 가도 볼 수밖에 없는 두오모와 교회의 건축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발산한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이랄까.. 



비가 오시면, 봄비가 오시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었다. 박제된 시간이 봄비에 촛농처럼 녹아내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마른 담벼락을 적신 봄비가 희미하게 숨겨진 시간을 진하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때부터 주변을 어슬렁 어슬렁..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먼 나라 남의 땅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기억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해 내고 있었다. 그중에는 독재자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가 담벼락에 달라붙은 시간 저편에서 튀어나왔다. 우리가 학습한 바에 따르면 독재자 무솔리니의 죽음은 당신이 지은 죄에 합당한 정도 이상으로 비참했다. 그는 파시즘을 주도한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었다. 태어난 시기는 1883년 7월 29일이었으며 사망 날짜는 1945년 4월 28일(61세)이었다. 그의 사망을 기록한 위키백과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45년 4월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무솔리니는 연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그는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망명할 생각이었다. 4월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인 제52 가리발디 여단 정치부 소속 우르바노 라차노는 코모 호 인근의 마을 동고에서 무솔리니와 페타치를 체포하였다. [66] 체포 당시 무솔리니는 독일군으로 위장한 병사들과 함께 독일 장교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무솔리니와 페타치는 메체그라로 연행되어 데 마리아 가족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튿날 파르티잔은 무솔리니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그와 페타치를 총살하였다. 처형 기록에는 무솔리니의 총살을 지휘한 사람이 "발레리오 대령"이라 되어있다. 발레리오 대령의 실명은 왈테르 아우디시오이었으며 무솔리니를 처형한 후 이 사실을 《전국 민주 평의회》에 통지하였다. 처형 당일 아우디시오는 무솔리니가 구금되어 있는 집으로 가서 "나는 당신을 구하러 왔다. 무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나?"라고 말하며 무솔리니를 안심시킨 뒤 차에 태워 마을 교외로 데리고 나갔다.

아우디시오는 으슥한 곳에서 무솔리니에게 "내려"라고 명령했다. 무솔리니와 페타치는 서로를 끌어안고 공터에 서있었다. 아우디시오는 먼저 페타치를 쏘았다. 페타치가 쓰러지자 무솔리니는 재킷을 열고 "가슴에 쏴라"라고 말했으며 아우디시오는 무솔리니의 가슴을 관통시켰다. 무솔리니는 쓰러졌으나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아우디시오는 다가가 가슴에 다시 한 발을 쏘았다. 무솔리니는 몹시 고통스러워하였다. 아우디시오는 그의 운전병에게 "저 작자 좀 봐, 이제야 얼굴에 감정이란 게 나타나는군"이라고 말했다. 무솔리니와 함께 있었던 병사들은 그날 밤 총살되었다.



무솔리니의 죽음은 총살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독재를 하는 동안 수많은 민주인사를 처형한 밀라노(Piazzale Loreto)의 한 주유소 곁에서, 그의 주검은 거꾸로 매달린 채 성난 군중들에 의해 거의 해체될 수준으로 돌팔매질을 당했다. 다행인지 함께 죽음을 맞이한 그의 첩 클라라 페타치(Clara Petacci)의 주검은 상대적으로 깨끗했다. 

일설에 따르면 클라라 페타치는 시민들의 동정심을 샀는데.. 거꾸로 매달린 시신의 치마가 벗겨져 음부를 드러내자 시민들이 치마를 걷어 올려 가려주었다고 했다. 무솔리니에게 쏠린 이탈리아 국민들의 분노가 최고조에 아르렀다고나 할까.. 녀석이 이런 대우를 받게 된 것은 그가 꿈꾼 [경찰국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다시 위키백과를 인용한다.

1922년 이후 무솔리니는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하였다. 건축, 외교, 식민지, 기업, 방위 등 많은 부서의 장관을 겸직하여 많을 때에는 총리 업무를 포함하여 7개 부서의 장관을 겸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파시스트당의 영수이자 반대파를 탄압하기 위한 준군사조직인 검은 셔츠단의 지도자였다. 한편 무솔리니는 비밀경찰 조직인 반파쇼 분자 진압을 위한 조직(이탈리아어: Organizzazione per la Vigilanza e la Repressione dell'Antifascismo, OVRA)을 창설하였다. 무솔리니는 이러한 철권통치로 자신의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여 권력을 유지하였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무솔리니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거추장스러운 헌법 조항들을 폐기하고 이탈리아를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1925년 크리스마스이브에 통과된 법에 따라 무솔리니는 공식적으로 "행정 수반"이자 "국가 원수"가 되었다. 이로써 그는 더 이상 의회의 동의를 기다릴 필요 없이 국왕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 또한 이 법에 따라 지방자치는 폐지되었으며 이탈리아 상원 역시 해산되었다.

1928년에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 활동이 금지되었다. 같은 해 이탈리아 의회가 해산되고 파시즘 대의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파시즘 대의회는 이미 5년 전 조직되어 있었으나 헌법 기구로 격상되어 국가 주권을 대표하게 되었다. 법률상으로는 파시즘 대의회에 무솔리니의 업무를 정지시킬 권리가 있었고 이론적으로는 탄핵도 가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솔리니만이 파시즘 대의회를 소집하고 안건을 제출할 수 있었다. 무솔리니는 시칠리아와 같은 남부 지역의 통치를 위해 체사레 모리를 팔레르모의 지사로 임명하였으며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피아의 뿌리를 뽑으라고 명령하였다. 



전권을 부여받은 당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국가의 주권을 확립할 것. 다시 반복함. 시칠리아에 국가의 주권을 확고히 재 수립할 것. 법률상 제약이 있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음. 필요하다면 법을 새로 만들 것임.



이틀 전 봄비가 오시던 날의 단상은 내 조국 대한민국으로 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선이 코 앞에 와 있었는데 정치 검사 출신의 한 후보가 떠올랐다. 그는 이미 본부장 비리 등으로 께시민들에게 각인된 녀석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노파심이 발동하여 "만약 검사동일체를 외치는 집단이 권력을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과 정부를 무시하는 것은 기본 우롱하는 검사 나부랭이가 법을 내세워 정치가 아니라 통치를 하려 든다면 수많은 희생이 따를 건 불 보듯 했다. 국민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할 검찰공무원이 자기들 밥그릇 챙기느라 바빴던 모습들.. 그 장면을 <굿모닝 충청>을 통해 다시 한번 들여다볼까..



굿모닝 충청에 보도된 본부장 비리



탐사보도전문 유튜브 <열린 공감 TV>는 이른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리스크’를 안고 있는 윤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간추려 리스트업, 공개했다. 구체화된 비리 의혹 건수만 자그마치 최소 137건(본인 71건-부인 38건-장모 28건 등)을 훌쩍 넘을 만큼, 부지기수다. 매체는 이날 방송을 통해 “이 집안의 특징은 모든 거래를 불법과 비리의 루트를 타고 있다는 점”이라며 “보통 사람들이 하는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꼬집었다. 

윤 후보 본인의 경우 ▲1982년 8월 죽마고우인 이철우 교수(연대 법학전문대학원) 부친 이종찬 전 중앙정부 부장을 통해 군 면제(부동시) 의혹을 비롯, ▲2001년 부산지검에서 평검사로 근무할 당시 경남도청 7급 공무원 공채시험에서 시험관들의 성적 조작 무마 의혹 ▲논산지청장 시절 백제병원 리베이트 사건 항소 포기 주도 의혹 ▲2008년 BBK특검팀 소속 검사 시절 제기된 MB 면죄부 의혹 등을 들추었다. 

이어 2009~2010년 대검 범죄 담당관 시절에는 수사관들을 동원, 정치·기업·언론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며 사실상 사찰활동을 주도했고, 2010년 대검 중수 2 과장일 때 C&그룹을 대상으로 한 기획표적 수사 의혹과, 2011년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부실대출의 씨앗이 된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합동수사단) 부실수사 의혹에 이어, 2012년 윤우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사건 개입 의혹 등 해마다 의혹의 중심에 있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해서는 △실제 재수생이면서 단국대 천안캠퍼스 서양화과(91학번)에 입학했다고 거짓말한 것을 비롯, △2001년 가락동 대련 아파트를 모친에게서 양도받으면서 양도세를 내지 않았고, △2004년 3월부터 서일대 ‘시간강사’를 ‘겸임교수 재직 중’이라고 거짓 진술했으며, △2004년 (주)에이치 컬처 테크놀로지 기획이사 겸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정부지원금을 유용했고, △2007년 제목에서 ‘유지’를 ‘Yuji’로 신박하게 영역한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 도용 의혹과 △2010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 등을 거론했다. 

장모는 어떨까?(오늘 유튜브 뉴스 추가: 굿모닝 충청 아님) 홍사훈 KBS 기자는 2020년 4월 25일 〈시사기획 창〉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 씨에겐 일정한 사업패턴이 있었다. 일단 물건(부동산)에 빠삭한(?) 정보를 갖고 있는 이른바 '꾼'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이익이 실현되면 동업자를 민사가 아닌 형사사건으로 고소해 대개 감옥에 들어가게 만든다. 물론 이익금은 최 씨가 독차지하는 수법이었다.” 

매체는 최 씨가 1993년 남양주 화도읍 소재 러브모텔사업을 하면서 농지법 및 불법 증개축 등 건축법 위반 등으로 의정부 지검의 대대적인 단속에 걸려 구속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홍만표 의정부 지검 검사로부터 벌금 100만 원을 주고 유일하게 구속을 면한 의혹을 제기했다.

또 1990년부터 2013년까지 미시령 휴게소를 운영하면서 각종 세금을 탈루한 의혹과,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을 비롯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 등 재벌과 유착해 이권 개입 의혹이 있고, 2001년 5월 충남 아산시 배방면 장재리 601번지 등 모두 10필지의 공장부지 경매를 통해 취득해 135억 원의 보상금을 챙겼던 LH 땅 투기 의혹도 까발렸다. 

그리고 요양병원을 개설해 20억 원대의 요양급여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부정하게 가로챈 사실이 인정돼 지난 7월 1일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전과도 포함시켰다. 출처 : 굿모닝 충청(http://www.goodmorningcc.com)



대한민국의 검사들은 이른바 '제 식구 감싸기'의 달인들이었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드러내 놓고 범죄를 감추거나 축소하는 등의 수법으로 금원을 편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검사동일체란 말일까.. 그래서 검사동일체라 쓰고 공범이라 읽으면 딱 들어맞는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랄 리도 없지만, 만에 하나 이런 집단들이 권력의 맛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왼쪽에서부터 니콜라 봄바치, 무솔리니, 클라라 페타치, 파볼리니, 스트라체, 1945


한 녀석은 일찌감치 국민을 볼모로 정치보복 운운하고 자빠졌다. 그만 큼 해 처먹었으면 됐지 무엇을 또 바라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무솔리니는 물론 독재자의 말로가 어떤지 잠시 봄비에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첨부한 사진은 처형된 무솔리니와 그의 첩 그리고 일당들이 밀라노의 한 주유소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이미 처형된 주검이 시민들 앞에 거꾸로 매달린 채 돌팔매질을 당한 녀석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그에 비해 녀석의 첩이었던 클라라의 주검은 깨끗했다.



 우리나라의 헌정사를 돌아보면 국민 위에 군림했거니 하려 했던 독재자 내지 친일행적이 뚜렷한 녀석들의 말로도 비참했다, 이승만을 필두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등이 그러하다. 박근혜는 왜 뺏느냐고? 최근에 밝혀진 그녀의 감방살이는 촛불 혁명에 편승한 정치 검사들이 엮은 파해자로 드러났다. 


그녀는 그저 당신의 애비로부터 배운 대로 사람들만 보면 손을 흔든 죄밖에(?) 없었다. 우리가 역사를 학습하는 이유는 이런 게 아닌가.. 국민들이 빤히 보는 앞에서 강도질을 일삼았던 녀석들이 권력을 잡으면 무솔리니가 저지른 참상보다 더할 게 불 보듯 뻔하다. 5년 만에 딱 한 번 주어지는 투표.. 정말 잘해야 한다. 행복의 지름길이다.


La prima neve è arrivata nel nostro quartiere_BARLETTA
il 06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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