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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24. 2019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잊어야 할까

-생애 단 한차례 볼까 말까 한 놀라운 파노라마

안타까움만 남는 너무 멀어진 풍경들..!


#외장하드 속에 숨겨진 달님의 비밀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후 외장하드를 얼마나 자주 열어봤는지 모른다. 그곳에는 그날 아침 풍경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과거로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었다. 다시 되돌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억지를 부려 다시 가 본다고 해도, 그때 그 감흥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여행 경험으로 터득했었지.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는 일..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지구 반대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오르노삐렌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날 북부 파타고니아는 우기를 끝내고 건기를 맞이하느라 여행자가 곁에 서 있는 줄도 모른 채 치마저고리를 훌러덩 벗고 있었다. 베일이 걷히자 여지없이 드러난 뽀얀 속살.. 그 장면들을 숨죽이고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의 쿵쾅거림이 너무 크다. 어쩌나.. 훔쳐보는 것도 아닌데..






#훔쳐보는 재미에 푹 빠진 달님


달님은 하루에 두 번씩 리오 네그로 오르노삐렌의 삼각주를 훔쳐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그때마다 느리게 매우 느리게 안데스 너머로 베일을 걷어올리며 아직 잠이 덜 깬 삼각주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 것. 그도 그럴만했다. 이곳 삼각주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곳. 바다의 갯벌이 잿빛 혹은 시꺼먼 뻘로만 여겼던 사람들 한테 연두색 혹은 녹색의 주단을 깐듯한 풍경이 펼쳐졌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리오 네그로 오르노삐렌 삼각주의 속살과 달님의 속셈


달님이 거두어간 바닷물 아래로 널따랗게 드러난 삼각주의 속살 곳곳은 연두색과 재색 갈색 등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안데스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한편,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현실적인 풍광을 만들곤 했다. 그리고 곳곳에 큼지막한 검은 자갈들이 박혀있는 것. 오래전 곁에 서 있는 오르노삐렌 화산이 토해낸 부산물이거나 천지개벽이 남긴 흔적들. 그리고 삼각주 넓게 드리워진 연두색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꾸만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갯가를 서성이며 조만간 삼각주를 가로지를 탐험의 날을 계수하고 있었던 것.





텅 빈 삼각주.. 텅 빈 바다.. 텅 빈 고깃배..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이른 새벽길을 나서면 어디론가 모두 숨어버렸는지, 바다 근처에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무수히 많은 작고 노란 풀꽃들이 소리를 질러대며 여행자를 반기던 곳. 달님의 속셈을 알 것도 같다.


달님은 하루에 두 번씩 리오 네그로 오르노삐렌의 삼각주를 훔쳐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그때마다 느리게 매우 느리게 안데스 너머로 베일을 걷어올리며 아직 잠이 덜 깬 삼각주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 것.



썰물 때 리오 네그로 오르노삐렌의 갯가 풍경은 생애 단 한번 볼까 말까 한 놀라운 파노라마를 여행자에게 선물했다. 남몰래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달님 덕분에 덩달아 끼어든 것이랄까. 이 같은 풍경 때문에 매일 아침 달님을 따라나서는 것. 덩달아 훔쳐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푹 빠졌었다.



#가까이 다가가 본 리오 네그로 오르노삐렌 갯가 풍경


바람도 없었다. 저만치서 가끔씩 갈매기들이 삐욱삐욱거리지 않았다면 진공상태처럼 여겨지는 곳. 그나마 호흡으로 느껴지는 촉촉한 공기가 없었다면 저들과 함께 졸고 자빠졌을 것. 강 하구 삼각주는 점점 더 짙은 연두 빛을 발산하며 무런 장비도 없는 여행자를 갯가로 끌어내렸다. 시선은 가까운 듯 먼 곳 안데스 자락..



달님은 여전히 훔쳐보는 재미에 빠졌는지 베일을 안데스 자락에 기다랗게 걸쳐놓고 리오 네그로 오르노삐렌 속살 전부를 탐하고 있는 것. 참 짓궂다. 참 황홀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살짝 엿보는 리오 네그로 오르노삐렌 마을 


생생한 기억 속의 오르노삐렌 마을의 아침 풍경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남반구의 우기가 시작되면 우리네 겨울과 전혀 다른 느낌의 추위를 경험하는 것. 이곳에서 가까운 뿌에르또 몬뜨에 살고 있는 지인의 하소연(?)에 따르면 이방인들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말도 말아요. 여긴 한국하고 달라요. 영하의 날씨가 아닌 것 같은데 뼛속까지 한기가 돌아요."



우리가 숙소를 나올 때만 해도 민박집주인 내외는 난로 곁에 만들어둔 작은 침상 위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파타고니아의 장작 난로는 뼛속까지 스며든 냉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빼낼 수 있을 정도로 화력이 대단하다. 그냥 펄펄 끓는 뜨거운 온도가 아니라 이곳의 냉기를 따라잡을 만큼 이상의 은근한 따뜻함이랄까. 


그 곁에 앉아있으면 마치 우리나라의 찜질방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 난로 속에는 큼직하게 팬 장작 한 두 덩어리가 밤새 집안을 데우고 있는 것. 따라서 아침만 되면 마을 곳곳에서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새 장작 몇개를 다시 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난로의 상판은 물을 데우는데 쓰이거나 음식을 만들거나 오븐에서는 빵과 고깃덩어리를 기막히게 구워낸다. 




#우리에게 낯선 까르레떼라 오스뜨랄(La Carretera Austral)


우리나라의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이곳은 칠레에서 악명을 떨친 군부 독재자 아우구스 피노체트(Augusto Pinochet_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 시절 만들어진 까르레떼라 오스뜨랄(La Carretera Austral (ufficialmente ruta CH-7))이 시작되는 지점이나 다름없는 곳. 까르레떼라 오스뜨랄의 시작점은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이지만 본래의 국도와 바닷길을 제외하면 사실상 시작점이 오르노삐렌인 것이다. 


이 길은 뿌에르또 몬뜨로부터 빌라 오이긴스(Villa O'higgins)까지 장장 1,240km로 길게 이어지며 파타고니아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한 독재자 시절 만들어진 길을 따라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을 달님과 동행했으니 말이다. 그 길을 다시 한번 더 가 보고 싶지만, 그땐 달님이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La Memoria del Hornopiren
Los lagos Patagonia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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