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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8. 2019

다시 가 보면 울어버릴 것 같아

-함께 바라봤던 그때 그 장면들

"거기 다시 가 보고 싶어..!"


세월 참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사진첩을 열어 기록을 살펴보면 엊그제 일 같은데 그게 어느덧 5년 10년 15년은 훌쩍 넘은 것들. 그 속에는 시간차에 따라 우리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노출된 공간에서야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짓 함부로 다 할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 기록 속을 들여다보면 발가벗긴 것들과 감추어진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건 일부러 감춘 것이라기보다 증명해 보일 수 없는 무형의 것들. 그들을 기록할 수 있는 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고백 외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대략 15년 전의 행복했던 기억을 쫓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감을 당했다. 1박 2일의 대권 항로를 따라 지그재그로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 대륙의 남반구 칠레의 산티아고 공항. 별로 바쁜 일도 없었는데 우리는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가까운 곳을 둘러보고 이내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저만치 도망가고 있는 파타고니아의 봄을 만나고 싶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산티아고에서부터 뿌에르또 몬뜨까지 밤새 달려간 직후 뿌에르또 몬뜨는 뽀얀 안개를 피우며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여행자를 맞이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환대했던 것. 파타고니아 여행의 시작은 마치 우주의 또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설렘 가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감자를 처음 먹을 때 느꼈던 호기심 어린 기분과 감자를 자주 먹었을 때 느꼈던 기분이랄까. 겉모습과 속은 물론 맛과 영양소까지 다 알고 나면 신비감은 저만치 저어만치 저 어어 만치 사라지는 것인지. 낯익은 모습이 일면 반가웠지만 첫 느낌과 전혀 달랐던 것이다. 이 같은 일은 계속 이어지며 우리를 허탈하게 만들곤 했다. 


밤새 달려와 도착한 뿌에르또 몬뜨에서 다시 찾은 쟌끼우에 호수도 우리의 추억을 일깨우는데 일조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또 우리를 기억해 주고 반가이 맞이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를 기억해 주었던 건 단 하나.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머리에 눈을 이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소르노 화산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맨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반갑게 맞이해 준 민박집 아주머니 조차 우리를 몰라보는 것.  뿌에르또 몬뜨에서 뿌에르또 옥타이로 빠르게 이동한 건 단지 아름다운 풍경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는 이곳의 풍광은 물론, 우리에게 잊지 못할 친절을 베푼 민박집 아주머니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민박집 겉모습과 주변 환경은 그대로였는데 아주머니의 기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저희들 기억하시죠? 헤헤.. 몇 년 전..^^"


아주머니는 저만치서 빨래를 널다가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러 일부러 우리 앞으로 다가왔지만 나의 물음에 딴청을 피웠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었다. 표정을 보니 우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아주머니는 당신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 오히려 무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한마디 내뱉었다.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무도 나를 혹은 우리를 기억해 주지 않는 여행지. 하지만 우리가 간직한 소중한 추억이 팥 앙금처럼 남아있는 곳. 우리는 그곳에서 꿈적 않고 버티고 서 있는 오소르노 화산을 함께 바라봤었지. 또 하루 종일 해가 질 때까지 우리 동네처럼 싸돌아다닌 곳. 저녁나절 마을 어귀를 돌아서면 저녁 짓는 연기를 뭉게뭉게 피우던 곳에 개들은 이방인들 때문에 또 얼마나 짖어댓는지, 참다못한 배나무가 하얀 배꽃 송이송이 뽀얀 속살을 드러내곤 했었지. 또 호수 저 너머 오소르노는 울다 지친 손자를 다독거리느라 머리가 하얗게 다 샛지. 또 숙소 앞 공터엔 풀꽃들이 대합창을 부르던 곳. 그곳을 다시 가 보고 싶어 하는 아내 때문에 내뱉고 싶은 말을 참고 또 참았다.


"그곳에 다시 가 보면 울어버릴 것 같아..!!"


Puerto Octay Lago Llanquihue
Nord Patagonia Los Lagos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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