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9. 201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친구들

이 포스트를 내 친구 툴리오와 마리아에게 바친다.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 툴리오(Tulio)와 마리아(Maria)가 없었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코자이께(Coyhaique) 곳곳을 여행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파타고니아의 낯선 도시를 찾은 이방인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당신이 살고 있던 도시를 짬짬이 소개했다. 툴리오를 알기 전 먼저 만났던 사람은 툴리오와 한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던 아르헨티나 출신 마리아였다. 그녀는 우리가 코자이께에 도착한 직후 민박집을 찾아 나선 나를 처음 만난 이후 이곳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만났다. 따라서 그녀의 남자 툴리오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 툴리오는 이 도시에서 토목공사 감리를 맡고 있었는데 웬만한 영화배우보다 더 잘생긴 미남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태생이었으며 툴리오는 이민자 2세였다. 왕래가 잦았던 우리는 함께 장을 봐 요리를 나누어 먹는 등 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 매우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툴리오의 제안으로 자기 도시를 이방인에게 처음 소개했던 곳으로, 작은 도시 중심을 벗어나자마자 눈 앞에 나타난 광경들이다. 자동차 운전은 툴리오의 몫이었으며 나는 조수석에 앉아 시선에 포착되는 장면이 나타날 때마다 셔터를 누르곤 했다. 이미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당시 나는 몸을 거의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아팠다. 하지만 이날은 툴리오와 마리아의 배려 때문에 통증을 무릅쓰며 드라이브에 나선 것. 내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첫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누가 그랬던가. 좋은 일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동행하는 법(好事多魔)이라고.. 행운이었다. 파타고니아 투어가 시작된 이래 북부 파타고니아 곳곳에는 생전 듣보잡이었던 아름다운 풍광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특히 처음 발을 디딘 오르노삐렌의 봄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준 곳이었다. 또 우리가 마치 다른 행성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던 오르노삐렌에서 바쁘게 남하를 시작한 것은 봄이 가져다주었던 특별한 영감 같은 것이랄까.


생전 느끼지 못했던 첫 느낌 혹은 오래전 대여섯 살짜리 눈에 비친 호기심 어린 낯선 풍경들이 자꾸만 우리를 재촉했던 것. 황급히(?) 보따리를 챙겨 코자이께로 여행지를 이동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낯선 도시에 도착한 직후 행운과 불행이 동행하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관련 포스트 전혀 새로운 만남에서 불행의 시작을 이렇게 끼적거렸었다.




차이텐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렇게 불렀다) 코자이께(Coyhaique)에서 대략 한 달간 머물렀다. 이유가 있었다. 파타고니아 투어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내게 큰 문제가 생긴 것. 오르노삐렌을 떠나던 날 보따리를 챙기면서 허리가 삐끗한 느낌이 들었는데 코자이께에 도착한 직후부터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 통증은 생전 처음 겪는 것으로 누군가 골수 깊은 곳에 뾰족한 바늘로 마구 쑤셔대는 것 같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낀 통증이므로, 숙소를 구하기 위해 대략 200m를 이동했을 때는 거의 초주검에 이르렀다. 초주검이 됐다. 천우신조였을까. 나의 걸음이 끝나는 곳에서 두 여인을 만나게 됐다. 저녁나절 마실을 나온 이들은 나의 물음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디에, 너네 집에 방 하나 남는 거 없어?"





코자이께에 도착한 이후부터 거의 매일 숙소에 갇혀있었다. 누가 가두어 둔 것도 아니었지만 숙소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숙소에서부터 툴리오의 집까지 거리는 불과 500미터 남짓했지만 걸어서 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지경에 처했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불행이 닥칠 것이란 건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천지신명의 도우심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아내와 왕래하며 가깝게 지내던 마리아가 남편 툴리오를 소개하며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나누었었다. 그의 집은 리오 심프슨(Rio simpson)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근거리에 위치한 인디오 바위(Pietra del Indio)에 서면 오래전 이 도시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오들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장소였다. 따라서 툴리오네에 들르면 자연스럽게 찾아 나서는 게 인디오 바위였다. 툴리오와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툴리오와 마리아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내 카메라에 담겨있던 코자이께의 풍경들은 발효(?)를 거듭하고 있었다. 짬짬이 열어본 사진첩 속에서 추억되고 있었을 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풍경들이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냥 듣기 좋아라고 하는 표현이 아니라 브런치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스펙터클 한 장면들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여행을 하게 만드는 것.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또 누군가 나의 브런치를 열어봤을 때 당신이 알고 있던 세상의 풍경들과 어떤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될 것 같다. 대략 인구 5만여 명이 모여사는 작은 도시를 품은 자연은 언제 어디를 떠나도 편안함과 넉넉함을 더해주는 곳이었다. 세상은 아이러니할 때가 적지 않다. 내가 온전한 몸으로 여행하고 있었다면 툴리오 가족과 함께 이 도시를 돌아보기란 쉽지 않았을 것.



어느 날 마리아가 숙소에 들러 드라이브를 하자고 제안했던 이유는 내 몸이 성치 않았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참 고마웠던 친구들.. 당신들 때문에 우리는 전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에 눈뜨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창 밖으로 바람이 술렁이고 있었다. 포장이 안 된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자갈자갈 소리가 났다. 볕은 따사롭고 멀리 하얗게 눈을 머리에 인 산들은 또 어떻고..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 갈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번갈아 눈 앞에 나타나곤 했다. 



이런 풍경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툴리오는 자기의 일(토목공사 감리) 때문에 코자이께는 물론 코자이께가 속한 아이센 주(Regione di Aysén) 대부분의 지역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꽤고 있었다.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곳도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만나게 된 건 행운이라는 표현 외에 그 어떤 표현을 쓰게 될까..



서두에 이 포스트를 툴리오와 마리아에게 바친다라고 써 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날 이후 짬만 생기면 마리아가 쪼르르 달려와 소풍을 떠나자며 제안하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툴리오 가족과 함께 소풍을 따라나섰던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기록된 장면 전부를 브런치 기족들과 함께 공유하기로 한다.)



"내 친구 툴리오.. 너무 고마웠어요."


Coyhaique_Regione di Aysén
Nord Patagonia in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이전 08화 생애 마지막 버킷리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