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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08. 2019

아내의 꽃신

#3 피렌체서 만나는 이탈리아 패션 

아내는 무사히 잘 돌아올 수 있을까..? 


최근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 날씨는 너무 더웠다. 어떤 때는 수은주가 섭씨 40도를 가리키는 한편, 보통 36도씨를 웃도는 온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같은 더위는 피렌체 중심가를 달구어 놔 체감온도는 50도씨 이상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외출이라도 할 요량이면 뜨거운 장작 난로를 등에 업은 듯했다. 인터넷을 열어 한국 날씨를 살피니 36도씨로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고 썼다. 


아마도 피렌체 날씨를 한국에 옮겨다 놓으면 뉴스에서는 살인적 폭염이라고 썼거나 말했을지 모른다.  평생을 통틀어 이 같은 날씨는 처음 겪어보는 것으로, 살인적 폭염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었다고나 할까. 따라서 우리는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인지 피렌체의 살인적 더위는 밤이 되면 점차 사그라드는 것. 


피렌체는 한국에서 흔히 느끼던 열대야 현상은 없었다. 고맙게도 해가 서쪽으로 떨어진 직후부터 어디서 불어오는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사방이 뻥 뚫린 광장에서 도드라졌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땅거미가 점점 물러서는 오후 9시 이후부터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그곳에는 원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더위를 피해 대략 두어 시간 동안 바람을 쐬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피렌체서 더위를 피하는 기막힌 방법 


우리도 그랬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우리도 진화를 거듭해, 처음에는 맨 몸으로 나서던 광장행을 언제부터인가 아예 돗자리(대신 얇은 이불)를 챙기는 한편 시원한 물과 베개까지 챙겼다. 어느 순간부터  기다란 장의자가 비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때다 싶어 두 다리를 길게 뻗고 그냥 드러눕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같은 행동이 조금은 민망했으나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드러눕자 우리도 따라 누운 것. 이 같은 풍경은 거의 한 달 동안 계속됐다.


해가 떨어지면 집에서 가까운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Piazza di Santa Maria Novella)으로 향했는데 어떤 때는 시내를 한 바퀴 돌아다니며 땅거미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광장으로 향하곤 했다. 그동안 우리는 피렌체 곳곳에 널려있는 볼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내는 주로 패션 상품에 눈독(?)을 들이는 한편, 나는 재밌는 볼거리를 찾아 셔터를 누르곤 했다. 


살인적 더위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를 찾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이야깃거리가 천지 빼까리로 널려있는 곳. 관광객들이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도 지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 같았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했던 바) 아내 또한 언제부터인가 저녁 늦게까지 혼자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패션 상품 때문이었다.  



아내의 남다른 패션 상품을 보는 안목 


아내가 바라보는 패션 상품들은 꽤나 고급질 뿐만 아니라 눈높이가 남달랐다. (하하 자랑질이 아니다.^^) 옷 한 가지 혹은 신발 한 켤레를 사 신어도 남들의 시선을 끄는 것. 브랜드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주목을 받았다. 아내의 이 같은 성향을 몰랐을 때는 '여성들의 그저 그런 취향' 정도로 평가절하했지만, 세월이 흐를스록 아내의 취향이 웬만한 디자이너 못지않다는 사실에 즈윽이 놀라곤 했다. 


아내가 외출에 나서 피렌체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동안 아내의 눈은 매의 눈처럼 번득였다. 세계적 브랜드가 넘쳐나는 피렌체의 명품거리에서부터 오래된 골목 속에 감추어진 고급 브랜드를 찾아내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내는 진열장에 비치된 상품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찾아낸 상품들은 서울에서도 같은 이유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어떤 매장에서 구입한 상품을 몸에 걸치거나 발에 신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건 물론 어디서 구매했는지 등에 대해 문의해 오는 것이었다. 또 아내가 사 입은 옷이나 신발은 구입 당시 꽤 비싼 비용을 지불했지만 그만한 값을 했다. 어떤 옷은 최소한 20년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할 뿐만 아니라 유행을 타지 않는 것. 오히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고급져 보이는 패션상품들이었다. 주로 신발이 그랬으며 쟈킷이나 치마 등이 그랬다.




매장에 동행한 나의 중요한 쓰임새 


희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가 구입한 패션상품들 다수는 이탈리아에서 수입된 제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패션의 본고장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아내의 묻지 마 가출(?)은 일찌감치 예상됐던 것. 우리가 더위를 피해 집을 나섰을 때 아내는 당신이 봐 둔 상품을 함께 가 보고자 했다. 패션 상품에 대해 문외한인 나의 쓰임새가 유일하게 돋보일 찬스가 다가온 것이다. 


아내의 주문에 따라 각종 치수는 물론 이것저것 종류마다 다 캐묻고 또 입어보고 신어보는 등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통역을 하는 임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서면 보다 중요한 나의 임무가 있다. 값을 (후려쳐) 깎을 수 있는 데까지 깎아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같은 일이 익숙(?) 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요구 등에 따라 한 번 두 번 겪어보니 가격을 깎는 일은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상이었다. 그러니까 가격표에 매겨진 번호(?)를 곧이곧대로 믿다간 바가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독자들께서 피렌체에 들러 고급진 수제 가죽 신발을 찾게 되면 알아야 할 게 있다. 보통 신발 한 두 켤레가 전시된 매장이라면 가격이 월등히 비싼 곳이자 수제품만 취급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신발 종류가 다양하게 또 많이 진열되었다면 그곳은 거의 중저가의 싼 티 나는(?) 곳. 피렌체에 들르시걸랑 가능하면 고급진 수제 구두를 눈여겨보는 한편, 반드시 가격을 할인해 달라고 주문하시기 바란다. 


처음엔 더 이상 못 깎는 가격이라며 10% 정도 깎아주겠다고 한다. 그러면 당장 등을 돌리고 나서는 척하며 당신이 지불하고 싶은 가격을 말하라. 예컨대 300유로짜리 수제 구두가 마음에 든다면 얼토당토않게 200유로를 부르시라. 그리고 녀석들의 표정을 보면 "도대체 이 사람이 우리를 뭘로 보는 거야" 싶은 듯. 그러나 이들은 결코 당신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장사가 그런 거라면 곧 망하게 될 게 아닌가. 따라서 그들은 당장 역 제안된 가격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A: 좋아요. 270유로로 해 드릴 게요. 

B: 220 유로면 딱인데..!

A: 잠깐만요.(카드가 아니고) 현금이면 260까지 생각해 볼게요.

B: 가진 게 전부 다 230유로 밖에 없어요. 다음에 올게요.(등을 돌리는 척)

A: 혹시 (관광객이 아니고) 피렌체 거주하세요?

B: (망설이지 말고)네, 시내 중심에요.(민박집 주소를 말하라)

A: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현금으로 240유로에 해 드릴게요. 비밀이에요.

B: 헤헤 당근이죠.


물론 이 같은 상황은 글쓴이가 겪은 경험담을 담은 설정이다. 나는 이 같은 경우의 수를 아내로부터 배웠다. 요구한 금액이 너무 다르면 그냥 등을 돌리고 나오는 것. 다음에 다시 들르면 그만이다. 매장의 고수 언니(?)들 보다 한 수 위라고나 할까. 지난봄에 구입한 수제 구두의 가격은 320유로 짜리였는데 흥정에 흥정을 거듭하여 결국 250유로에 구입했다. 매장에 가시 거들랑 제안에 역제안 혹은 절충과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버티면,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1인분(대략 65유로부터 70유로까지)은 거뜬히 건질 수 있다는 거.ㅋ 아내의 명언이 있다.


"1유로?.. 흥! 땅을 제 아무리 깊이 파 봐봐 1유로가 나오나..!!"






사흘 전 한국으로 떠난 아내와 새로 산 꽃신 한 켤레 


사흘 전(5일), 아내를 배웅하기 위해 피렌체 공항(Aeroporto Amerigo Vespucci)에서 로마 공항(Aeroporto internazionale Leonardo da Vinci)까지 동행했다.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동행이지만 작년에 구입한 왕복표의 쓰임새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에게 중요한 볼 일을 앞두고 출국을 할 수 없었으므로 아내 혼자만 한국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아내의 건강 상태를 쳌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는데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이탈리아로 올 때까지 치료는 물론 몸보신(?)을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보다 더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차일피일 현지의 일 때문에 귀국이 늦어진 것이다. 그동안 피렌체의 살인적 무더위가 아내를 더욱 힘들게 했다. 따라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무시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에서 더위를 식히는 한편, 아내가 출국하기 전날 한 매장에서 눈여겨봐 두었다가 구입한 수제 가죽신 한 켤레를 장의자 위에 올려놓고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아내가 신은 신발은 참 예뻤다. 마치 부드러운 가죽장갑을 발에 낀 듯한 모양이랄까. 피렌체에서 로마까지 이동하는 동안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동안 예쁜 신발도 동행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따로 있었다. 아내가 신은 신발이 꽃신으로 변하여 건강하게 다시 이탈리아 땅을 밟게 되는 것. 그렇게 돼야 당신이 평생 꿈꾸어 왔던 일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아내가 나홀로 한국으로 떠난 뒤 당신이 디뎠던 피렌체 곳곳의 모습을 떠올리며 멍한 상태로 사흘을 보냈다. 너무 허전했다. 천지신명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귀환을 기다린다. 아내는 무사히 건강하게 잘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Scarpe di Nuova della Mia moglie
05 Luglio Via dei Cimatori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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