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28. 2019

하늘나라에 부친 구두 한 켤레

#2 피렌체서 만나는 이탈리아 패션 

누구한테 제일 잘 어울릴까..?


며칠 전의 일이다. 저녁나절, 더위를 피해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 중심가의 명품거리를 서성거렸다. 아직은 한낮의 열기가 바짓가랑이 속으로 스며들 때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사람들은 그늘만 찾아 돌아다닐까. 물론 관광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더위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인다. 얼마나 싱싱해(?) 보이는지 물 만난 고기들 같다. 해가 저물자 명품거리도 아르노 강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살랑거렸다. 또 눈에 아른거리는 풍경들도 이때쯤 보이기 시작하는 것. 주지하다시피 피렌체 구시가는 언제 어느 때 어디를 돌아다녀도 심심할 여가가 없는 곳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유적들은 물론 현대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인들이 매일같이 몰려드는 곳이므로 새로운 패션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곳. 의상으로부터 신발, 가죽공예 등등등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눈요기거리가 널린 곳이다. 골목골목 어디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랄까. 도시 전체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소품처럼 자리 잡은 곳에 유명 브랜드들이 얼굴을 내밀고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어 놓는 것이다. 이곳에 둥지를 튼 후 수도 없이 봐 왔건만 다시금 눈길을 끄는 진열장 속의 근사한 패션 상품들. 이날 나는 명품거리에 위치한 까사데이(CASADEI) 앞에서 서성거린 것이다. 그곳에서 마치 신데렐라가 신었을 법한 예쁘고 우아하며 귀티 나는 화려한 신발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이 구두가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 게..?


하늘나라에 부친 구두 한 켤레 



진열장 속의 구두를  보자마자 이 구두의 주인이 누구일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 신발을 신는단 말인가. 누구에게 가장 잘 마침맞게 어울릴까 싶은 것. 얼마 전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살바또래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본점에 영화배우 이 모 씨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톱스타들이 신어야 어울릴까. 아니면 가족이나 친척들 중에 누군가.. 등등 여러 얼굴들을 떠 올려봤지만, 하나같이 이 신발의 주인공은 아닌 듯싶었다. 그때 머리를 번득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이 떠올랐다.


"맞아, 이 신발의 주인공은 어머니였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께선 꽤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계신 어머니..(어머니 잘 계시죠?ㅜ) 그렇다면 어머니께 이 신발을 어떻게 신겨드린단 말인가. 그래서 어머니께 이렇듯 예쁘고 고운 신발을 신겨 드리기 위해 별의별 상상력을 다 동원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온통 연분홍 꽃신을 신은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것. 



어머니께선 생전에 치마저고리를 자주 입으셨는데 그중에 내 기억 속에 가장 뚜렷이 남은 치마저고리는 흑과 백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사진 한 장이었다. 까마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계신 작은 흑백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또래의 친구 두 명과 함께 유관순 누나처럼 포즈를 취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 사진 속의 어머니는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주로 상반신을 촬영한 사진이었으므로 어머니와 친구들의 하반신의 모습은 생략된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그 사진 속의 어머니께 신발을 신겨 드렸다. 까맣고 하얀 치마저고리와 연분홍 꽃신.. 파격적인 패션이었다. 아마도 어머니 생전에 그런 신발이 있었다면, 그런 신발을 사 드릴 수 있었다면, 그 신발이 어머니 발에 마침맞게 어울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가 사시던 시대는 참으로 가난한 세상이었다. 우리 칠 남매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는지 아직도 내 기억에 어머니께서 편히 쉬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이부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종일 어머니의 손길이 분주하지 않으면 새끼들(?)은 또 얼마나 찌질대는지.. 그중에 글쓴이도 포함됐었지.. 


그나마 끼니를 제 때 때울 수 있었다는 게 위안이 될 정도였으므로, 당시를 살았던 이 땅의 어머니들의 수고로움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던 것. 그야말로 위대함의 대명사는 늘 어머니 몫이라야 옳은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어머니 생전에 이런 구두는 잘 어울리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존재 조차 찾기 힘들었으므로, 신데렐라 정도라야 겨우 어울릴 듯한 표현인 것이다. 



당시 우리 어머니들께서는 코가 오뚝 솟은 하얀 고무신에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려 넣은 신발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도 어쩌다 잔칫날이나 명절 때 등 드물게 신을 수 있었을까. 언제 신데렐라용(?)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단 말인가. 거기에 비하면 우리 세대 혹은 현대를 사는 세대들은 거의 황제 이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 호의호식이 특정인의 전유물로부터 벗어난 지 꽤 오래된 세상이다. 따라서 이 신발의 주인공은 당연히 어머니의 몫이 아닐까 싶었던 것. 


그런데.. 신발의 주인공을 어머니의 것이라고 설정을 해 놓고 보니, 어머니께서 까만 치마를 살짝 걷어올리시며 무릎 아래로 드러난 신발을 보시며 너무 흡족해하시는 표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생전에 이런 꽃신을 어머니께 선물해 드리지 못한 게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SCARPE DONNA_CASADEI 
Via de' Tomabuoni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이전 12화 어느 주부가 남긴 최고의 작품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