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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리치 Apr 24. 2024

따듯한 불빛의 인터라켄 호텔 앞에서

사진에세이 #10. < 성냥팔이 소녀 >

< 성냥팔이 소녀>, Interlaken, Swiss, 2019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할 때였는데, 최고급 호텔을 지나던 길에 추운 바깥에서 따듯해 보이는 창문 안쪽을 찍었습니다. 


30대 초반이 되어서 떠난 여행이었는데도 그 따듯한 불빛을 보면서 저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문득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버린 것입니다. 따듯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다른 가정의 창을 보면서 멀뚱멀뚱 외로이 말없이 바라보고 부러워했던 10살의 어린 소녀가 그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 말할 곳조차 없었던, 그냥 삶을 살아가야 했던 가장 작고, 가장 큰 소녀가 인터라켄의 호텔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제 안의 소녀를 위로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11살, 여름 불교 학교를 보내면서 깨닫게 된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부처님을 찾아가 자신의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마을의 가정집을 모두 다녀보아서 사정이 없이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있다면 너의 아이를 살려주리라" 아이를 잃은 엄마는 온 마을을 다녔지만 사정없는 가정은 없었고, 아이를 되살리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스멀스멀 저며드는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따듯한 색상의 호텔 불빛을 보며, 소환되는 것은 내 안에 10살짜리 작은 소녀이지만, 그 소녀를 달래 주는 이는 오직 불교 학교에 있는 11살의 소녀였습니다. 


어떤 크기의, 어떤 깊이의 아픔이 던지간에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서 생긴 결핍은 극복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운명이 다하는 동안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것이 내 안에 있다 그렇지만 잘 살아가리라' 라고요. 


이 사진을 보면 그때 떠올렸던 내 안의 10살, 11살 소녀들에게 30살의 나보다 더 씩씩하고 용감했다고 말을 건네고 또 나아갈,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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