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따라 걸으며 하루를 시작하니 네가 생각났단다. 장미 덩굴들이 초록 가지를 뻗어, 송이마다 꽃잎을 뽐내며 벌써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 중랑천에 장미 향기가 옅어지면 여름 기운이 몰려오겠지. 혹시 그때쯤 널 만날 수 있을까 난 기대한단다.
너를 처음 알게 된 날이 기억나는구나. 어느 주말이었어. 중랑천의 여름은 새벽에 일어나 산책하기 좋은 날이 많아. 해가 지고 난 후에 산책도 좋지만, 밤에 혼자 가기엔 내가 겁이 많단다. 그날도 아침 일곱 시 정각에 집을 나섰지. 물길 따라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고 갔단다. 꽃을 좋아하는 내 눈에 아침 이슬을 곱게 달고 있는 푸르스름한 꽃들이 보였어. 아직 해가 다 떠오르지 않아서 보랏빛 꽃잎은 푸른색으로 보였단다. 가느다란 줄기 위에 만개한 모습을 담고 싶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어. 몇 장을 더 찍고 나서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단다.
새벽이슬 머금은 벌개미취 -중랑천
너는 “꽤 괜찮은 날이야!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거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그때 너의 이름도 몰랐기에 불러주진 못했지.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너는 토종 야생초 더구나. 우리 땅에 잘 맞는 야생초면서, 넓은 들판에 피어난다고 벌이라고 붙은 벌개미취였지. 여러해살이풀이라 뿌리를 내린 자리에 계속해서 매년 꽃을 피우니 참 고마웠단다.
주말엔 어김없이 너를 만나러 갔었고, 여름이 끝날 때까지 너랑 보낼 수 있어 즐거웠단다. 가을이면 진한 국화 향기가 나는 구절초가 화단 이곳저곳에 하얗게 피어났었지. 도시에 살지만 늘 야생초들이 있는 중랑천은 집 앞마당처럼 익숙해졌단다.
올해도 축제 준비는 많은 사람 손에서 이루어졌단다. 산책로 벤치마다 손 그림이 그려지고, 중랑천 둔치에는 커다란 꽃 모양의 장미 아트 그늘막이 드리워졌어. 덕분에 많은 사람이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단다. 꽃향기가 바람 따라 날리니, 그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그윽함이 묻어난단다. 중랑천 일대는 누구나 찾아와 장미를 맘껏 즐길 수 있어. 날마다 산책을 나서는 나도 그 많은 장미 터널을 오가며 향에 취한단다. 그 틈에서 축제 풍경을 찬찬히 느껴보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중랑천은 어색하기만 하구나.
장미 터널을 지나서 중랑천 둔치로 내려와 보니 물가엔 반가운 꽃창포가 피었더구나. 함께 폈던 너를 못 본 지 참 오래됐어. 어느 날 네가 있던 자리에 장미들이 심어졌단다. 계절에 맞게 색이 들던 화단은 이제 초록 회양목과 장미들이 자리를 잡았단다. 매년 사람들은 장미꽃을 피우고, 다시 새 모종을 심으며 화단을 가꾸고 있단다.
사람들 손이 닿지 않은 중랑천의 야생초 덤불들도 늘 같은 모습은 아니야. 작년에는 자주괴불주머니가 서너 송이밖에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지난달엔 산책로 한쪽 길가를 꽉 채워 자주색으로 만발했단다. 야생초들의 정원도 새봄이 올 때마다 차례를 기다리는 꽃들이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얼마나 많은 야생초가 그 땅속에 숨어 있는지 알고 싶구나. 자연이 하는 일들은 알 수 없으니 사람들은 꽃을 보면 감동을 하는 것일지 몰라.
벌개미취야! 혹시라도 어딘가 아직 땅속에 흔적을 남겨두었다면 기회를 엿보고 얼른 피어나 주렴. 북적이던 장미향기 사라지고 나면 그곳에서 활짝 핀 너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구나.
중랑천 산책로를 돌아오다가 자전거도로에 핀 야생초들을 만났단다. 긴 도로를 따라서 샤스타데이지가 하얗게 무리를 지어 피었더구나. 가느다랗고 긴 줄기에 달린 꽃송이들이 바람에 작은 손을 흔들며 귀여운 웃음으로 반겨줬단다. 하지만 아쉬운 건 꽃들 사이에 밟힌 꽃들이란다. 활짝 핀 꽃 사이로 사람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진을 찍느라 밟히고 꺾여버린 가지들이었단다. 꽃밭에 마치 무늬라도 넣은 것처럼 말이야. 무성하게 피었던 꽃밭은 참혹하게도 듬성듬성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구멍들만 남아 있단다.
중랑천 자전거도로 - 훼손된 야생화
너희들에게도 장미처럼 가시가 있다면 어땠을까? 장미는 가시가 있어서 사진을 찍거나 향기를 맡아보는 사람들도 손을 조심스럽게 하단다. 야생초들이 장미처럼 가시라도 달고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밟혀 엉망이 되지는 않겠지. 우리가 만든 정원엔 매년 장미가 피어나 봄을 더없이 누리게 해 주지만, 오지랖이 넓은 날 눈살 찌푸리게 하는 풍경들이 아쉽기만 하구나. 그래서 벌개미취 네가 더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한적한 중랑천에 핀 야생화를 보면 손으로 하나 꺾어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욕심은 나도 종종 겪는단다.
장미 덩굴이 초록 가지를 뻗어내기 시작할 때부터 쓰기 시작한 편지를 장미 꽃잎이 떨어질 때까지 보내지 못하고 있구나. 얼마 전엔 물가에서 청둥오리의 가족을 만났단다. 작년엔 청둥오리 한 쌍뿐이었는데, 어느새 아기들을 낳아 가족이 되었더구나. 이곳에서 첫돌이었던 내 아이도 열 살이 되었단다. 해마다 달라지는 중랑천 풍경 속에서 소소한 발견을 하며 아이들과 난 잘 지내고 있단다.
참, 봉화산에 작은 공원들이 생겼어. 그 정원에 네가 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는 정말 반가웠단다. 벌개미취 이름과 개화시기도 적힌 팻말을 보며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말이야. 곧 너를 만날 수 있겠구나. 중랑천을 걸으며 자연에게 위로받던 나는 매년 너를 기다린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