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다 보면 종종 아쉽고 슬플 때가 있어. 예고도 없이 너처럼 다시는 보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 버린 꽃과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야. 아이들이 여름방학이 끝이 나고 가을이 시작되자 중랑천엔 메밀꽃과 코스모스가 꽃봉오리를 만들기 시작했어. 꽃봉오리들이 올라오고 다 핀 꽃이 질 때까지 수없이 오갔단다. 나는 또 꽃 사진을 찍느라 신이 났었지.
매일 같이 코스모스 꽃 사진은 넘쳐나고 저장할 공간이 없으니 노트북에 이미 저장된 사진들을 지우기 시작했단다. 사진을 많이 찍다 보면 늘 사진 정리가 잘 안되거든. 그러다 중랑천 수양버들이 있는 풍경사진을 '다시 찍으면 되지' 하고 삭제했지. 당연히 수양버들 넌 그 자리에 있을 거 믿었거든... 수양버들 너의 사진들을 좀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어. 그래서 줄기가 길게 늘어뜨리고 그늘이 되었던 풍경 사진 몇 장을 남기고는 삭제해버렸단다. 중랑천의 야생화들이 겨울잠을 자는 시간에도 너는 단단히 뿌리내린 자리에 버티고 있을 것이니까. 작년 폭우에도 너만은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잖아. 너는 늘 그 자리에서 있을 거라고 믿었단다. 이렇게 후회할 줄도 모르고 말이야.
여름 동안 길게 자란 수양버들 나무 그늘 안
코스모스 꽃은 날마다 더 만개하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단다. 코스모스 꽃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뒤엉켜 중랑천은 활기차기만 했단다. 늦가을 코스모스도 서서히 시들어 가고 남편과 얼마 남지 않는 꽃을 보러 나섰어. 꽃만 찾아서 사진을 찍는 나에게 장난처럼 남편이 묻더라.
"코스모스가 다 지면 꽃이 없어서 중랑천은 안 나오겠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
" 그럼 이젠 수양버들 나무 보러 와야지." "아참 그런데 나무가 사라졌어. 어디 갔니?"
길 양쪽으로 두 그루의 수양버들이 있었는데 중랑천 쪽에 있던 큰 수양버들이 보이지 않는 거야. 자전거도로에서 있는 너보다 작은 수양버들은 그대로 있는데, 감쪽같이 너는 사라져 버렸어. 한참 동안 내 눈을 의심했어. 넌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니? 코스모스가 일렁이기 훨씬 전에 너는 사라진 것을 이제야 눈치를 챘단다. 네가 있던 자리엔 코스모스가 빽빽하기만 한데 말이야.
수양버들 나무 자리에 핀 코스모스
또 하나를 배웠단다. 야생화가 뽑히거나 사라지는 것처럼 오래된 나무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나무만큼은 그 자리를 지킬 거라 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어. 부디 뿌리째 잘 뽑아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거라면 좋겠다. 이럴 땐 어디 가서 물어봐야 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너의 몸집은 아주 커서 나무 그늘 안으로 들어가면 포근한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한아름 너를 안고 싶어도 그 나무둘레가 어마어마해서 열 살 아이와 손을 잡고 둘렀지만 맞잡을 수 없었단다. 뜨거운 태양을 잠시 피하는 곳으로는 너 만한 피신처도 없었는데 말이야. 너도 잘 알겠지만 해마다 두 번 길게 늘어진 줄기를 잘라주던 손길도 있었는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코스모스는 길게 둔치를 뒤덮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렸어. 겨울이 온 중랑천엔 한그루 남은 수양버들만이 산책 나온 나에게 너의 안부를 묻는구나. 너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려달라고 말이야. 나의 사진 함에는 너의 시간이 사진으로 아직 남아 있단다.
산책길의 수양버들 2013
사진으로 남은 수양버들 2018
처음 중랑천 산책길에서 본 너는 작은 나무였어. 너는 해마다 잘 자라서 커다란 그늘을 만드는 나무가 되었지. 그동안 나도 꽃과 나무를 보며 글을 써보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어.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내 아이들에게도 나무처럼 든든한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