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핑계로 미루고 망설이던 나에게 브런치 작가 신청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결심이었어. 꿈꾸던 작가 신청이 되니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첫 번째, 날마다 쓰기 위해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
두 번째, 쓰지 않는 시간에도 생각하고 쓰고 고쳐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다음 글을 올리는 시간은 순식간에 온다는 것
중랑천에서 만났던 꽃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 겨울 내내 편지를 쓰고 봄이 오기 전에 보내고 싶었는데 이제 겨우 다섯 번째 편지란다. 중랑천에서 너를 두 번째로 만났던 해에 찍은 사진을 찾았단다. 텅 비었던 화단에 봄이 되면 숨어 있던 야생화들이 땅 위로 초록 잎을 먼저 보여주었지. 가느다란 잎사귀 사이로 꽃대 하나 솟아나면 날마다 찾아갔어. 지난해에 야생화 화단에 네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꽃잎들은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거든. 내년에는 꼭 피기 전에 와서 꽃이 피는 모습을 찍어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단다. 유난히도 파란색 꽃을 좋아하는 나를 불러 세웠지. 약속이라고 한 듯이 청보라색 꽃잎은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단다. 고흐가 그린 아이리스 그림처럼 촘촘히 핀 모습을 상상했지만 화단은 충분히 향기로웠어. 네가 지고 나면 중랑천 장미터널엔 장미향기를 뿜어낸단다. 그렇게 계절은 여름으로 넘어가겠지.
야생화 화단에 핀 아이리스(붓꽃) 2012년
한번 본 것도 잘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못 보는 사소함도 내 눈엔 잘 보인단다. 꼭 킁킁 거리며 수사관처럼 앞뒤 상황을 떠올리니 오지랖이 만평도 넘는단다. 나만 잘하면 모든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지. 여전히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면, 습관처럼 "내가 뭘 잘못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네"라고 먼저 떠오르 거든.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니 배운 것이 많아졌어.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장녀라서 스스로 만든 역할이 있었단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부모님과 동생들 사이를 넘나들며 해결사라고 자부하고 살았던 거지. 불편한 상황이 예견되는 것을 막아 본다고 날마다 애를 썼단다.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지.
화단에 만개한 아이리스(붓꽃)
그런데 말이야. 어느 날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어. 의사가 피검사 결과를 보더니 바로 회사 일을 그만두고 약을 먹으며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어.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날 병에서 구해주지는 못했어. 몸이 아프고 나니 마음이 아픈 것을 알게 된 거지. 피곤이 몰려오면 무조건 잠을 청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 그래도 글쓰기가 치유라는 것은 믿게 되었단다. 지금은 회양목이 심어진 공원이 되었지만 사진은 남아서 나를 그날도 데려가 준단다.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고 봄이 오는구나. 개학하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소란스럽지만 서둘러 남은 편지를 써야겠어. 그래도 나는 날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애쓰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