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핀 꽃을 공유하다

나팔꽃에게

by 무쌍



아침부터 나팔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보고 싶어 졌어.
여름 내내 중랑천에 야생화가 한창 피고 나니 산책로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구나. 벌써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아침이슬은 선명하게 보이는구나. 더위가 한풀 꺾인 공기는 가을을 부르고 있단다.
너도 칭칭 감아올린 덩굴손 사이로 꽃봉오리를 피워내고 있구나. 한송이 나팔꽃은 하루면 피었다가 지지만 습기가 많은 중랑천 근방은 꽃송이가 오래도록 피어있어 고맙기만 하단다. 네가 피기 시작하면 곧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더 부지런히 너의 모습을 찍으러 나선단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팔꽃 덩굴은 더 진해지고 꽃잎 색은 점점 연해지며 무늬가 생기지.



새벽에 찍은 나팔꽃


늦여름 파란 나팔꽃은 이제 꽃잎이 보라색과 흰색을 함께 섞여 활짝 웃는구나. 또 다른 파란 나팔꽃은 흰색과 분홍색 하늘색이 흩어져 꽃잎을 피우고 있어. 너의 꽃잎 색에 푹 빠져서 사진을 더 한참을 찍고 있었어. 오늘따라 새벽 산책은 어떤 날보다 평화롭고 고요하고 깨끗한 기분이야. 아이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겠지만 나는 이런 새벽 시간을 놓칠 수가 없어. 떠오르는 태양이 중랑천을 서서 비추고 있고, 너는 이름(나팔꽃 영문표기: Morning glory)처럼 아침을 찬란하게 기분을 맞춰주듯이 반짝이는구나.


나팔꽃을 해마다 피우는 화단


꽃 사진을 찍는 건 이른 아침 새벽녘 해가 떠오르기 전에 좋은 것 같아. 꽃들은 당당하게 한낮 태양을 보지만 나에겐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거든. 그늘진 곳에 핀 꽃들은 회색과 청색이 섞인 공기 속에서 꽃의 색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이 곱기만 하단다. 특히 습기가 많은 하수구 근처에 나팔꽃 덩굴은 더 생생하고 무성한 줄기를 가득 만들어 놓지. 꽃만큼이나 사랑을 받기도 하는 이유는 예쁜 하트 심장 모양의 나팔꽃 잎 때문이기도 한 것이니까. 이맘때는 나팔 모양의 통꽃들이 천사의 나팔, 분꽃, 유홍초, 애기 나팔꽃, 메꽃들이 피고 있단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길에도 온통 나팔부는 꽃들이 너무도 경쾌해지는 날이 구나.


올해도 부지런한 화단 주인은 씨가 다 여물기도 전에 나팔꽃을 돌돌 말아서 정리해버리기도 하지만 끈질기게 다음 해에도 너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한단다. 어린 시절 집 화단에 주황색 작은 나팔꽃(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팔꽃이 아니라 유홍초였습니다)이 하도 예뻐서 꽃이 필 때면 늘 그 앞에서 놀았단다. 꽃이 만발해졌는데 엄마가 덩굴째 뽑아 버려서 늘 야속했지만 난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어. 엄마의 기대처럼 너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해마다 다시 피었단다. 너의 담담하고 은근한 끈기가 대단하기도 했단다.

고맙게도 나에게 꽃을 쫒는 삶을 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단다. 늘 커다란 기대를 하고 일을 시작하다가 쉽게 좌절하고 포기해버리는 나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았어. 나는 기대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늘 결과가 걱정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풀이 죽어 있는 일이 대부분이거든.

날마다 뉴스엔 돈이 가장 달콤하고 멋진 꿈처럼 그려지고,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세상 사람들인 듯 금가루가 뿌려진 음식들을 먹고 있어. 그리고 여전히 노동에 지친 사람들은 고단하기만 하단다. 난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로 살기로 했었지. 그런데 온전히 모든 시간을 엄마로 살기에 다른 삶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때때로 나 자신을 작게 만들어서 참으로 딱하기만 하단다.

그래도 언제든지 밖으로 나서면 지금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꽃과 나무들이 있단다. 특히 꽃은 언제나 시간을 알려준 거든. 계절에 맞게 조금은 서둘러서 때로는 늦은 듯 꽃들은 얼굴을 보여주지. 이런 세상에도 이 순간에도 꽃이 피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단다. 어떤 사람들은 꽃을 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살고. 또 어떤 이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꽃들이 의미가 없다고 하거든. 또 어떤 사람들은 한량하게 꽃이나 보고 다닌다 조롱하기도 하기도 하지.




우연히 시작한 인스타에서 세계 곳곳에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났단다. 5년 가까이 서로 자신이 찍은 꽃과 자연을 공유하고 있어. 몇 개국인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미국,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브라질, 터키, 이집트,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한국에서도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단다. 물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사진을 공유하고 글을 서로 나누면서 그들도 나와 다른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단다.
시간이 많고, 여유가 생겨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꽃피운 자연을 찾아보고 사진으로 남기고 함께 공유하기 때문이야. 적어도 우리들은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흐름에 몸을 맡겨보고 싶은 것이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어진 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추구한단다.

꽃집에 잘려서 꽂힌 절화들이 아니라 길가나 화, 산, 중랑천을 둘러싼 나무며 야생화들은 시간의 아무리 흘러도 계속 이어질 거야. 나도 인생 시간의 흐름에 맡겨 보려고 한단다. 머리카락이 하나둘 하얗게 변하고 얼굴에도 조금씩 기미가 자라나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겠지.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팔꽃 너를 조금 더 만나러 가야겠어.


keyword
이전 02화태양 같은 너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