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무는 죽어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잘린 나무는 그루터기로 스스로 무덤이 된 듯 적막했다. 무슨 나무였을까? 언제 떠난 건지 이름도 없는 무연고 무덤이 되었다. 무덤은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만 엄마들은 정말 무덤인 듯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유난히 검은 그루터기가 신경이 쓰였다.
뜨거운 태양이 땅속 씨앗들을 모조리 불러 내는 듯 초록이 솟아나는 여름이 되었다. 그루터기 옆에 노란 루드베키아 꽃이 피니 주변이 환해졌다.
어느 날 좁은 화단을 지키던 나무는 잘렸지만, 긴 세월 동안 땅속으로 파 들어간 뿌리까지 뽑아내는 일은 하지 못했나 보다. 잘 자란 나무는 목재가 되어 자기 몫을 하기 위해 실려갔겠지만, 늙어 버린 뿌리는 무덤이 되었다.
덩그러니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는 자신의 인생을 비석처럼 세워두었다. 그리고 무덤가에 핀 야생초처럼 루드베키아가 애처롭게 지키는 듯 보였다.
그루터기를 찍은 사진을 보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땅 위로 올라온 뿌리 주변엔 많은 야생초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엔 그루터기 틈 사이로 나온 듯한 작은 잎이 보였다.
글을 쓰다 말고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루터기 뒤쪽에 가보니 잎들이 더 크게 자라며 여러 군데 돋아나고 있었다.
죽은 나무라 믿었는데 나무가 멀쩡이 살아있었다. 나무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안심도 되었다. 앞으론 우울한 생각 대신에 돋아난 잎이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처음 보는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방금 전 그루터기에서 봤던 같은 모양의 잎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지치기된 앙상한 가지 끝에 손바닥만 한 잎들이 초록빛을 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 나무는 백합나무 혹은 튤립나무라고 불린다. 가을에 잎이 노랗게 물드는데, 특이한 잎 모양 때문에 금방 기억되었다. 꽃은 늦봄에 피는데 튤립과 닮았다고 해서 튤립나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알아볼 수 있는 나무가 또 생겨서 똑똑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새 친구를 만난 듯 설레었다.
봄은 이미 지났고, 나무를 몰라봤으니 꽃이 피었는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혹시 늦게 핀 꽃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내년 오월엔 꽃이 피는 걸 지켜봐야 하는 친구와 약속이 생겼다.
그런데 떨어진 노란 잎을 보니 가을도 오기 전에 벌써 단풍사진 욕심이 난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면 잊지 말고 만나러 가야겠다.
자연은 늘 기회를 주는 듯하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마다 친구를 만들어 준다. 가을도 오기 전 떨어진 낙엽 덕분에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았다. 나무가 많은 곳으로 와서 나무 친구가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