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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22. 2021

계속 걷고 싶었다

길을 걷는 이유

  언제나 집 밖으로 도망 나온다. 그리고  가장 먼길을 돌아서 다시 집으로 온다. 스팔트가 깔린 길을 따라서 걷다가 어느 순간 집에서 완전히 멀어진다. 다시 집 현관문이 보일 때까지  길을 따라 방랑을 한다. 아침저녁 세수하듯 매일 거르지 않고 싶지만, 몸살이 나면 건너 띄기도 한다. 세수도 할 수 없을 만큼 끙끙 누워있다가 하루만 지나도 찌뿌둥하고 찝찝한 기분 때문에 언른 세수를 하고 집 밖으로 나서고 싶어 진다.

 

여전히 계속 걷고 싶다 @songyiflower
나는 길을 사랑한다. 길은 느리게 살 수 있는 지혜와 작은 일에도 감탄할 줄 아는 지혜를 준다. 길은 걷고 있노라면 그동안 세월 속에 매몰되어 있던 소망과 자유에 대한 꿈들이 다시 솟아난다.
-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바람 부는 길에서> 중에서

 피에르 쌍소는 갑상선이 완전히 망가지고 나서 알게 된 작가다. 건강했고 일상의 속도가 시계처럼 돌아갈 때는 필요하지 않았던 '느림'에 대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가 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1,2권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2권을 좋아한다. '길'에 대한 백과사전처럼 여러 종류의 길 이야기가 쓰여 있다.

마치 길을 걸으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한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밑줄 그으며 책을 보다가 더 그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의 문장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개발로 변하고 훼손되는 시골길이 사라지는 걸 한탄하기도 하지만 도시의 길도 인정한다. 장 보러 가는 길을 신앙처럼 여긴다며 어린 시절 어머니와 먼길을 걸어 장을 보러 다닌 추억의 길도 소개했다. 길에 대한 애정을 취향이나 음식처럼 어느 순간 싫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글마무리된다. 마치 길 위에서 시시콜콜한 수다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길을 걷는 것이 글을 쓰는 것과 닮았다니 걷고 나면 글도 써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잘 듣지 않는  프랑스의 작가가 건네는 충고대로 걸어 보기로 했다.


 둘째를 낳고 나서는 뭔가 자신감을 얻었다. 갑상선도 견딜만했는지 가뿐해졌다. 모든 것이 실패의 연속이었던 육아가 두 번째가 되면 노련해지는 까? 일일이 나열하자면 또 자존감이 떨어질 듯하니 지금은 성공담만 남겨두고 싶다. 유모차에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태우고 걷기 시작했다. 장 보러 가는 길을 구불구불 동네 한 바퀴를 돌아갔다. 십 분이면 가는 마트를 삼십 분을 넘게 돌아갔다. 장을 보고 나오면 다시 또 삼십 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자. 중랑천 수변공원을 유모차를 끌며 한 시간걸었다. 동네 엄마가 내가 측은했는지 자전거 유모차를 하나 사라고 권했지만 웃어넘겼다. 나는 완전히 걷기에 빠져있었다. 덤으로 임신으로 늘었던 몸무게도 빠졌다.  


  걸을수록 더 걷고 싶었다. 집을 나서서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더 넉넉히 낼 수 있다면 쉬지 않고 걷고 싶었다. 내편인 아이 아빠를 설득해야 했다. 생일날 선물 하루 달라고 했다. 대신 아침과 그날 저녁 끼니는 내가 하는 걸로 점심만 아이들을 챙겨달라는 부탁이었다. 거절할까 봐 긴장했지만 의외로 간단했다.

 점심 정도는 배달음식이 해결해준다면서 고맙게 하루 휴가를 내주었다. 운동화를 신고 평소처럼 집 밖을 나섰다. 첫걸음을 떼자마자 멈추지 않았고, 멍해 무의식 적으로 걸었다. 다행히 길 위에 야생화들이 멈춤 버튼을 눌러주었다. 갑상선이 걱정이 돼서 종일 걷지는 않았지만 6시간을 넘게 걸다. 하루 동안 동네를 벗어나 처음 가는 길만 걸었고, 반복되는 일상에 붙잡힌 기분을 모두 다  잊어버렸다. 그리고 돌아올 때쯤 접어두었던 소망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 졌다. 또 하나의 생일 선물을 받은 것처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에르 쌍소의 충고가 또 하나의 생일 선물이었다. 


 가족들이 하루 동안 뭐했냐는 질문에 "걷다가 밥 먹고, 걷다가 커피 마셨어."라고 대답했다. 그해 여름과 가을 사이 내 생일날은 가장 많은 꽃 사진을 찍었다.


 아직은 상상 속의 길이다. 걸어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중이다. 한 번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할까? 그래도 매일 뚜벅뚜벅 걸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야 들판 위로 부는 바람 냄새도 맡고, 태양의 따사로운 온도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길을 걷는 이유는 목적지에 가기 위함이 아니라, 길 위를 걷는 일 자체가 내 목적일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길가에 작은 꽃을 들여다봐야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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