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집 밖으로 도망 나온다. 그리고 가장 먼길을 돌아서 다시 집으로온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을 따라서 걷다가 어느 순간 집에서 완전히 멀어진다. 다시 집 현관문이 보일 때까지 길을 따라 방랑을 한다. 아침저녁 세수하듯 매일 거르지 않고 싶지만, 몸살이 나면 건너 띄기도 한다. 세수도 할 수 없을 만큼 끙끙 누워있다가 하루만 지나도 찌뿌둥하고 찝찝한 기분 때문에 언른 세수를 하고 집 밖으로 나서고 싶어 진다.
여전히 계속 걷고 싶다 @songyiflower
나는 길을 사랑한다. 길은 느리게 살 수 있는 지혜와 작은 일에도 감탄할 줄 아는 지혜를 준다. 길은 걷고 있노라면 그동안 세월 속에 매몰되어 있던 소망과 자유에 대한 꿈들이 다시 솟아난다. -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바람 부는 길에서> 중에서
피에르 쌍소는 갑상선이 완전히 망가지고 나서 알게 된 작가다. 건강했고 일상의 속도가 시계처럼 돌아갈 때는 필요하지 않았던 '느림'에 대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그가 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1,2권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2권을 좋아한다. '길'에 대한 백과사전처럼 여러 종류의 길 이야기가 쓰여 있다.
마치 길을 걸으며 글을 쓴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한 걸음걸이가 느껴졌다.밑줄 그으며 책을 보다가 더 그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의 문장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 개발로 변하고 훼손되는 시골길이사라지는 걸 한탄하기도 하지만 도시의 길도 인정한다.장 보러 가는 길을 신앙처럼 여긴다며 어린 시절 어머니와 먼길을 걸어 장을 보러 다닌 추억의 길도소개했다. 길에 대한 애정을 취향이나 음식처럼 어느 순간 싫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글은 마무리된다. 마치 길 위에서 시시콜콜한 수다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길을 걷는 것이 글을 쓰는 것과 닮았다니 걷고 나면 글도 써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충고를 잘 듣지 않는 난프랑스의 작가가 건네는 충고대로걸어 보기로 했다.
둘째를 낳고 나서는 뭔가 자신감을 얻었다. 갑상선도 견딜만했는지 가뿐해졌다. 모든 것이 실패의 연속이었던 육아가 두 번째가 되면 노련해지는 걸까? 일일이 나열하자면 또 자존감이 떨어질 듯하니 지금은 성공담만 남겨두고 싶다. 유모차에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태우고 걷기 시작했다. 장 보러 가는 길을 구불구불 동네 한 바퀴를 돌아서 갔다. 십 분이면 가는 마트를 삼십 분을 넘게 빙 돌아갔다. 장을 보고 나오면 다시 또 삼십 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자. 중랑천 수변공원을 유모차를 끌며 한 시간씩 걸었다. 동네 엄마가 내가 측은했는지 자전거 유모차를 하나 사라고 권했지만 웃어넘겼다. 나는 완전히 걷기에 빠져있었다. 덤으로 임신으로 늘었던 몸무게도 빠졌다.
걸을수록더 걷고 싶었다. 집을 나서서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더 넉넉히 낼 수 있다면 쉬지 않고 걷고 싶었다. 내편인 아이 아빠를 설득해야 했다. 생일날 선물로 하루 달라고 했다. 대신 아침과 그날 저녁 끼니는 내가 하는 걸로 점심만 아이들을 챙겨달라는 부탁이었다. 거절할까 봐 긴장했지만 의외로 간단했다.
점심 정도는 배달음식이 해결해준다면서 고맙게 하루 휴가를 내주었다. 운동화를 신고 평소처럼 집 밖을 나섰다. 첫걸음을 떼자마자 멈추지 않았고, 곧 멍해지며 무의식 적으로 걸었다. 다행히 길 위에 야생화들이 멈춤 버튼을 눌러주었다. 갑상선이 걱정이 돼서 종일 걷지는 않았지만 6시간을 넘게 걸었다. 하루 동안 동네를 벗어나 처음 가는 길만 걸었고, 반복되는 일상에 붙잡힌 기분을 모두 다 잊어버렸다. 그리고돌아올 때쯤 접어두었던 소망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 졌다. 또 하나의 생일 선물을 받은 것처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피에르 쌍소의 충고가 또 하나의 생일 선물이었다.
가족들이 하루 동안 뭐했냐는 질문에 "걷다가 밥 먹고, 걷다가 커피 마셨어."라고 대답했다. 그해 여름과 가을 사이 내 생일날은 가장 많은 꽃 사진을 찍었다.
아직은 상상 속의 길이다. 걸어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중이다. 한 번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할까? 그래도 매일 뚜벅뚜벅 걸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야 들판 위로 부는 바람 냄새도 맡고, 태양의 따사로운 온도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길을 걷는 이유는 목적지에 가기 위함이 아니라, 길 위를 걷는 일 자체가 내 목적일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길가에 작은 꽃을 들여다봐야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