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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n 20. 2021

야생은 끝까지 힘을 낸다

야생의 위로

 중랑천엔 온갖 꽃들이 피어난다. 밭을 만들려고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은 꽃들도 있지만, 언제부터 땅속에서 준비를 했는지 모르는 야생의 식물들 섞여 있다.

 다가 수변공원 산책로는 탁 트인 자연을 찾아온 람들로 활기다. 혼자 나온 사람들도 있지만 동행자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없이 물가의 풍경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속이 상한일을 전화기 너머 터놓느라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자전거 도로엔 힘겹게 페달을 밟는 사람도 있지만 두발로만 달리는 사람도 있다. 크게 음악을 틀거나, 여럿이 깔깔대며 시끌벅적 소리를 내며 지나기도 했다.  

  먹다만 음료수병이 기차처럼 늘어져있거나, 빈 맥주캔봉지에 담긴 채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예민한 내 눈 자꾸 보이는 것들이 신경이 쓰여 매번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선 오직 꽃을 보며 집중해야 한다. 말마다 중랑천을 찾지만 늘 이런 풍경 감수해야 한다. 래도 가족들이 늦잠을 자는 주말 새벽 산책 포기할 수 없다. 두어 시간 걷는 동안  만나는 초록 식물과 야생화, 중랑천 습기를 머금은 바람도 매일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만큼 중요한 약이 되었다.

새로 메밀꽃밭이 생겼다 @songyiflower인스타그램

 메밀꽃밭이 새로 생겼는데  아직 빨간 꽃양귀비 밭에 시선이 더 간다. 꽃은 한철을 보냈지만 여전히 힘을 쓰고 있었다. 꽃양귀비 꽃송이는 예전보다 더 작고 색이 옅어졌지만 뒷심 있게 지치지 않아 보였다. 달력이 반만 남았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은데, 반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다. 나도 지치지 않고 싶었다. 들판에 새로 핀 꽃 보면 다시 기운을 얻어 보려 했지만 오히려 끝까지 꽃송이를 피우는 꽃들이 위로가 되었다.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라는 아름다운 책이 있다. 작가 항우울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깊은 병을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괴롭히는 우울함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야생으로 달려. 그곳에 초목들과 꽃,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자신의 우울증을 다독이듯 지내고 있었다.  물학자인 그녀는 자신의 정원과 숲, 바닷가에서 모은 수집품을 찍은 사진과 함께 글로 쓴다. 마치 소꿉놀이하듯 모아 온 자연의 일부를 사진으로 찍데,  돌, 조개껍질, 꽃송이 , 새의 깃털 , 씨방,  나뭇가지, 새알 껍질 모두가 그녀 책에서 새로 태어났다.

 처음 책을 봤을 땐 꽃과 자연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사진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우울증을 매일 경계하기 위해 야생에서 견디며 고단한 날을 살아가는 투병의 기록이었다.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며 약을 먹지만 우울증은 여전히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책을 내고 SNS에도 자신의 수집품을 사진으로 올렸었다. 작년 이맘때는 팬데믹으로 모두가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사는 지역도 완전히 봉쇄되었고, 그녀가 몇 개의 동영상을 올렸다. 자신도 바이러스로 꼼짝 못 하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 작은 식물을 보며 견딜 수 있다는 걸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며 우리를 격려했었다. 책을 보니 다시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SNS엔 내가 봤던 영상이 마지막이었고 더 이상 게시글을 올라오지 않았다. 최근 소식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야생의 위로를 받으며 다음 책을 구상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우울한 날에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위로가 된다."

  

<야생의 위로>엔 위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런 그녀의 경험은 나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완치가 안 되는 병은 컨디션이 좋을 땐 모르다가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해지기 마련이다. 그녀도 병을 이겨낼 수 없지만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터득했다. 처방된 약이 효과가 없을 땐 항우울제를 추가로 먹듯 야생을 찾았다.

 야생에서 그냥 쏟아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론 꽃을 찾은 기쁨에 어쩔 줄 모를 때도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찾은 '야생의 위로'라는 치료법은 자연의 일부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을까?


새롭게 피는 양귀비꽃@songyiflower인스타그램

 야생의 꽃밭은 찾을 때마다 알 수 없는 힘이 느껴다. 수변공원 절벽 층층이 쌓인 돌 틈에 코스모스와 꽃양귀비, 수레국화가 방금 핀 듯 힘이 넘쳤. 꽃양귀비 밭에 핀 강아지 풀은 원래 꽃밭 주인공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게 했다. 꽃은 일부러 꺽지 않는다면 끝까지 힘을 내 씨앗을 만든다. 여름의 태양은 이른 아침을 금방 뜨겁게 했지만 좀 더 걸었다. 결국 꽃을 피운 건 끝까지 견딘 것들이었다. 비록 상처 난 꽃잎 찢지고, 완전히 물들지 않은 색이어도 상처에 새살이 오르듯 자신의 자리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야생은 온 힘을 다해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걸렸고, 인생의 나락에 가까이 갔을 때 확실해졌다. 나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이었다. 야생의 꽃들이 끝을 향해 힘을 다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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