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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n 26. 2021

나무에게 미안했다

자연이 주는 기회

 큰 나무는 죽어도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잘린 나무는 그루터기로 스스로 무덤이 된 듯 적막했다. 무슨 나무였을까? 언제 떠난 건지 이름도 없는 무연고 무덤이 되었다. 무덤은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만 엄마들은 정말 무덤인 듯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유난히 검은 그루터기가 신경이 쓰였다.


 뜨거운 태양이 땅속 씨앗들을 모조리 불러 내는 듯 초록이 솟아나는 여름이 되었다. 루터기   루드베키아 꽃이 피니 주변이 환해졌다.  

 어느 날 좁은 화단을 지키던 나무는 잘렸지만,  세월 동안 땅속으로 파 들어간 뿌리까지 뽑아내는 일은 하지 못했나 보다. 잘 자란 나무 재가 되어 자기 몫을 하기 위해  실려갔, 늙어 버린 뿌리는 무덤이 되. 

  덩그러니 그루터기 남은 나무는 자신의 인생을 비석처럼 세워두었다. 그리고 무덤가에 핀 야생초처럼 루드베키아가 애처롭게 지키는 듯 보였다.


그루터기에 솟아난 작은 잎(백합나무)

 루터기를 찍은 사진을 보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땅 위 라온 뿌리 주변엔 많은 야생초가 자라고 었다. 그런데 사진 속 그루터기 사이로 나온 듯한 작은 잎이 보였다.

글을 쓰다 말고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루터기 뒤쪽에 가보니 들이  크게 자라며 여러 군데 돋아나고 있었다. 

 죽은 나무라 믿었는데 나무가 멀쩡이 살아있었다.   나무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안심도 되었다. 앞으론 우울한 생각 대신에 돋아난 잎이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볼 수 있으니 말이다.


백합나무(튤립나무)의 노랗게 물든 잎

  돌아오는 길 처음 보는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방금 전 그루터기에서 봤던 모양의 잎이었다. 개를 들어 보니 가지치기된 앙상한 가지 끝 손바닥만 한 잎들 록빛을 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 나무는 백합나무 혹은 튤립나무라고 불. 가을 잎이 노랗게 드는, 특이한 잎 모양 때문에  금방 기억되었다. 꽃은 봄에 피는데 튤립 닮았다고 해서 튤립나무라고 불다고 한다. 알아볼 수 있는 나무가 또 생겨서 똑똑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새 친구를 만난 듯 설레었다.

 

  봄은 이미 지났고, 나무를 몰라봤으니  피었는지 눈치채지도 못다.  혹시 늦게 핀 꽃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내년 오월엔 꽃이 피는 걸 지켜봐야 하는 친구와 약속이 생다. 

 그런데 어진 노란 잎을 보니 가을도 오기 전에 벌써 단풍사진 욕심이 난다. 뜨거운 여름 보내면  잊지 말고 만나러 가야겠다.


 자연은 늘 기회를 주는 듯하다. 자라고 느껴질 때마다 친구를 만들어 준다. 가을도 오기 전 떨어 낙엽 덕분에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았다. 나무가 많은 곳으로 와서 나무 친구가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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