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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n 17. 2021

12시가 되면 신데렐라가 된다

두 아이 엄마

  벼르던 산행을 나섰다. 동안 산에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는데 산이 자꾸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매끈하게 생긴 큰 바위 봉오리는 멀리서 바라만 봐도 가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날마다 저 산에 좀 데려다 달라고 남편에게 노래를 불렀다. 펜데믹 전에는 봄 산행을 갔었다. 싫다고는 했지만 남편은 산에선 늘 앞장섰다. 흠뻑 땀을 빼고 나면 왜 이렇게 힘들게 산을 오르는지 알듯도 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얼마만인지 두 아이가 함께 등교했다. 두 아이의 하교 시간은 12시,  엄마 노릇은 잠시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요정의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시간은 딱 정해져 있다.  

  산에 오르는 동안은 시간이 천천히 갔다. 흐르는 땀만큼 다리는 묵직해졌다. 처음 가는 산이라 어디만큼 가야 정상인지 알 수 없었다. 지도와 안내판은 자주 보이지 않았고 그냥 내려갈까 두 번쯤 망설였다. 편으론 오랜만의 산행이라 꼭 목적지까지 가보고 싶었다. 꾸역꾸역 자를 채우듯 점점 가팔라지는 계단을 겨우겨우 오르고 있었다. '낙석주의'라는 안내표시가  계속 보였다. 숨 가쁘게 라야 하는 계단인데 방해하는 장애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니 산을 타는 것도 삶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끝은 있는 건지 알 수 없던 가파른 돌계단을 얼마나 밟았을까? 멍하니 돌계단만 보며 오르는데 마법처럼 팻말이 보였다. 우리가 찾는 곳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개운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성취의 즐거움을 나누듯 오이 하나를 나눠 먹었다. 그리고 웃으며 미련 없이 산을 내려웠다.  시간에 맞춰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돌아왔다.

돌 이끼에 붙은 야생 버섯
누군가 예쁘게 사초를 땋아놓고 갔다

 산을 내려오다 이끼에 붙은 작은 버섯을 만났다. 작고 귀여운 야생버섯은 아이들처럼 보였다. 등산로 근처에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란 사초 중에 누군가 곱게 땋아놓고 간 것이 눈에 띄었다. 그걸 보니 얼마 전 아이 머리를 땋아준 것이 떠올랐다. 잠깐이라도 엄마 노릇을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엄마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전업주부이며 두 아이의 엄마 오가는 곳은 집 주변이 다였다. 산행은 잠깐 일탈을 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엄마의 시간은 평소와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범한 날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현관문에서 부터 쭈빗쭈빗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다 온건가 싶었다. 그런데 정말 면목없는 얼굴로 가방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상한 낌새가 기는 가방을 열어보니 '반성문'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당연히 큰아이 선생님일 거라 생각했다.

 

 둘째 아이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전화가 온걸 안 둘째 아이는 내 눈을 피해 도망갔다. 어처구니없게도 두 아이가 한꺼번에 소란스러웠던 날이었다. 잠깐 즐거웠던 시간은 몇 시간 뒤 두 아이의 해프닝을 잘 넘기기 위함이었을까? 가끔은 두 아이의 엄마인걸 잊어버리고 싶지만 엄마 노릇은 절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가 보다.


  아이들은 가장 예쁜 꽃들이다. 매일 꽃을 좇아 다니지만,  어떤 보다 조심스럽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 준다. 엄마의 실수를 쉽게 용서해주는 아이들에게 도 오늘 하루는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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