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히 대지를 잠재우는 겨울도 따뜻한 히터 앞에 모이던 시간도 멀어졌다. 어떤 조건도 없이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숨 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공기를 지배하는 민감한 안테나는 모두 바이러스가 가져가 버렸다. 나는 어떤 공간에 들어서도 공기를 금방 알아채는 안테나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멀어진 사람들 사이에 안부인사도 흥미를 잃었고, 어디서든 무탈하길 바라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맑은 공기를 매일 맛볼 수 없다는 것은, 보고 싶은 얼굴을 보지 못해 느끼는 슬픔처럼 서글프다. 공기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지금, 섞이고 함께하는 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염되고 위험한 공기는 익숙한 공간마저 모두 낯설고 두렵게 해 버렸다. 이젠 사람들이 모인 틈에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은 쓸모가 없어진 듯하다.
바깥공기가 건네주던 에너지가 간절해졌지만 산책을 나선 몸은 어떤 날 보다 무거웠다.
뿌연 안개에게 힘을 뺏긴 태양이 머뭇거리는 틈에 찬바람이 깊숙이 스며들어 온몸을 쭈뼛거리게 했다. 잠깐 동안 안개를 뚫고 나온 햇볕이 반가웠지만 흰구름 뒤로 숨어 버렸다. 어두워진 산책로 화단에 얼어붙은 나리꽃이 여전히 누워 있다. 겨울 공기는 꽃을 방부제처럼 며칠씩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었다. 잠시 애도를 하듯 꽃을 내려다보며 지난날을 이해해보려 했다.
흰 먼지가 날리듯 작은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졌다. 내리는 눈은 낙엽이 떨어지듯 천천히 바람에 흩날렸다. 눈송이는 춤추듯 허공을 빙그르르 돌다가 이쪽저쪽을 몇 번이나 멈칫거리며 금방 떨어지지 않았다. 작고 흰 눈송이가 어디로 가는지 쳐다보고 있는데, 어느새 다른 눈송이가 나타나 내 시선을 가로 챈다. 뚝뚝 수직으로 무심히 떨어지는 비는 생각할 겨를 도 주지 않는데, 날리는 눈송이는 내 감각을 모두 느리게 만드는 듯했다.
내 글쓰기도 겨울이 되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지만. 하얀 모니터 화면을 꾸역꾸역 글로 채우려고 버티고 있었다.
내 열정은 찬서리처럼 얼어붙었고, 자신감은 떨어진 기온처럼 손가락을 머뭇거리게 했다. 얼어붙은 꽃처럼 감정도 움직이지 않는다. 오후 산책은 별다른 효과가 없어 보였다. 겨울 산책은 몸이 뜨거워지긴커녕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떠나는 꽃을 위로하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몽실몽실 커지며 구름이 내 머리 위로 다가왔다. 자꾸만 가까워지는 구름처럼 내게도 좋은 소식이 오지 않을까 싶어 한동안 기다려보기로 했다.
얼어붙은 꽃은 내게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지만 이 기다림은 곧 끝날 것이다. 눈이 녹듯 따뜻한 날이 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씨앗인 채 흙속에 자고 있는 어여쁜 꽃들이 때가 되면 날 만나러 와주겠지?
한송이 꽃이 피는구나 싶었는데, 곧 밀려드는 꽃들을 감당 못할 것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기다림이 자꾸만 날 지루하고 얼어붙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