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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n 17. 2024

11년 만에 출근, 구두를 샀다

에필로그

갑상선에 염증이 나를 서둘러 죽음에 가깝게 끌고 간다고 착각했다.


항상 확실하지 않은 상태가 불안했다. 명쾌하고 분명한 날이 언제 오는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몸이 다시 나빠지고 쓰러질까 봐 걱정하는 감정들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서 완전히 병에서 벗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나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건강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지만, 나의 흠결 같아서 늘 신경이 쓰였다.

 비염을 달고 살았고, 피부도 알 수 없는 알레르기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스트레스와 마음의 병에서 나온 흔적들이었다.  또한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점차 호전된 것들이기도 다. 억눌린 유년기를 보내고도 마흔이 넘도록 나만 행복해져서 안된다고 믿었다. 아픈 몸이 되니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봐 괴로웠다. 부정적인 감정이 사로잡은 몸은 그늘에  숨어 밝은 곳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마음의 병은 결국 뇌가 오작동을 하게 하고, 몸을 쓰러뜨려 괴로움을 그만두게 했다. 이 모든 것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란 병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삶에서 명료한 일이란
거의 없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겉모습에 집착한 나머지 아픈 모습을 계속 붙들고 살았지만, 오히려 집착이 되어 아픈 몸을 평생 데리고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깊이 아파보니 깨달은 것은 조금만 나아져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잠이 쏟아지지 않으니 아이들과 더 오래 놀아 줄 수 있었고, 아침에 일찍 눈을 뜨게 되니 글쓰기는 더 빠르게 시작되었다. 일 년 동안 구직에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전에 꿈꾸었던 복직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갑상선에 냉장보관 된 글쓰기>라를 제목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갑상선은 좀 우울하고 행복해>로 마무리되었다. 글쓰기의  종착지는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가 싶은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의 결말이다. 만성질환자들의 일상에서 느끼는 고충을 내 시선으로 쓰고 싶었고. 혹여 같은 입장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동병상련 감정을 나눌 수도 있을 거란 막연함이었다. 


숨기고 싶었지만
갑상선은 있는 그대로 나였다.


 마음의 병을 찾아내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나는 이제 극복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프기 전으로  가고 싶지만 마음은 병들어 있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결정된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일은 과거가 되어 지나갔다.

괴로움이 사라지자 세상 밖이 보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자연의 순리대로 회복된 몸으로 사회에 일원이 되고 싶었다. 아프면 쉬고 건강해질 때까지 치료를 해야 마땅하다. 질병에 걸렸다면  완치가 되면 좋지만 생활에 지장이 없어졌다면 기꺼이 내 몫을  곳으로 가도 될 것 같았다.




10년이 넘는 경력단절, 2011년 11월 퇴직하고 직장을 돌아갈 생각을 버렸다.

그럭저럭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아픈 몸도 회복되었으니 살림이나 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조바심이 났다. 아파보니 내가 건강하던 시절이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얼마나 충실하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집엔 소음이라고 아이들이 내는 소리뿐 아이들도 학교로 가면 남편의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가 들릴 뿐 은 적막했다.  


나도 투고를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와 같다면 "투고는 해봤어?"라고 물었을 것 같았다. 검증이 필요했다. 투고를 위해서 제안서도 만들고 원고도 정리했다. 갈피를 못 잡고 글을 쓰기만 한다는 건 희망고문이었다. 우연히 글쓰기 무료강의를 듣다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 조각들을 모아서 투고까지 했으니 절반은 이룬 것 같았다.  


 편집자들이 정중하게 거절 메일을 보내줄 때마다, 내 글과 제안서를 읽어주었다는 만족감으로 좋았다. 100여 곳의 출판사에 투고를 했으니 대단한 피드백을 받은 셈이었다.

처음 한통이 왔을 땐 회신을 해주는구나 신기했는데, 계속 쌓여가는 거절메일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작년 봄, 내가 받은 12통의 거절 메일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야생화 꽃밭은 가능성을 가득 담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서부터 보아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기 어렵다. 내 글은  봄야생화들이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핀 봄야생화 꽃밭 같았다. 책  한 권에 보기 좋게 구성하는 일은 싹이 트는 대로 핀 야생초가 아니었다. 야생화 꽃밭이 왜 좋은지 아니면 의미 있는 사연이라도 담아서 꽃밭 앞에서 미소 짓게 해야 했다. 아직 야생화 꽃밭 같은 나의 글은 혼자만의 궁리로 선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쪼록 좋은 책으로 빛을 보았으면 합니다.


어느 편집팀에서 보낸 메일 마지막 인사말이었다. 난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했다. " 모쪼록 좋은 책을 쓰는 사람이 되셨으면 합니다."라고 말이다.


글쓰기를 그만두려고 한 것이 아닌 반복적인 일상을 포기하기 위한 투고였다. 책으로 빛을 보지 않아도 세상은 늘 앞에  있었다. 몸을 움직이고  글 밖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경력 단절 11년, 내겐 면접이 기회를 얻는 것도 투고만큼 간절함이었다. 터무니없는 근무시간, 기이한 상품 판매원, 정부 인턴십 교육, 보험 가입 교육장까지 세상은 신기한 곳이었다.

그러다 고른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상품 판매를 위한 원고를 쓰기 ,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블로그를 하며 광고수익도 내기, 주말엔 포장 알바, 쇼핑몰 상품 입고 관리, 취업 교육도 받았다. 식물 키우기 취미인 내게 정원관리 일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갑상선이 그만두게 한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피하고 싶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월급통장이 필요했고, 아직 입을 만한 정장들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욕망은 집안에 자라는 화초들과 같이 크게 두고,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섰다. 꽃과 나무가 있는 자연이 아닌 사람들 틈으로 말이다.

운동화가 좋았는데 구두가 신고 싶어졌다.


면접일정이 잡히고 하이힐을 신어보니 발이 너무 불편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이십 분 남짓 걸었을까. 또각거리는 소리는 좋았지만 운동화를 신고 걷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몸이 자꾸 앞으로 기울어졌다. 아무래도 고집을 그만 부려야 할 듯했다.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면 전처럼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갑상선이 일깨워 준 지혜를 믿고 싶었다.


 새 구두를 샀다. 접에 떨어져도 난 구직활동을 계속할 테니 달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한 구두가 필요했다.


 나에겐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는 꼬리표가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은 환자복을 벗어두고, 뇌가 만든 오작동 스위치도 꺼졌으니, 새롭게 시작하면 되었다.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썼다. 그리고 간절히 원했다.

출근하는 나를 위해 새 구두를 샀다.


누구보다  갑상선이 좋아해 주었다. 그리고 <갑상선은 좀 우울하고 행복해>의  마지막 에필로그를 쓸 수 있을 만큼 버텨준 나 자신에게 무척 고웠다.


 복잡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흐드러진 야생의 자연을 찾아 생기를 얻듯,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아주 작지만 생명력이 강한 야생화를 보듯 여기서 잠시 쉬어가길 바란다. 뭐든 혼자서 해결해 나가려는 고집불통 서른 살의 나는 몰랐지만, 내 갑상선은 인생이란 우울하기도 행복하기도 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또 잊어버리고 고집을 피우겠지만 나는 안심한다. 그 모든 순간을 내 갑상선이 평생 함께 할 것이다.     


아침 출근길은 북적이고 요란스럽지만 누구보다 내 갑상선이 오래 기다렸던 순간이다. 다시 돌아왔다.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나로 말이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기하게도 십 년 넘게 옷장에서 잠을 자던 정장이 잘 맞는 걸 보니 갑상선도 별일 없이  지내나 봅니다. 일을 한다니까 주변에서 아직 어린아이들 걱정을 하며 포기할 건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늘 챙겨주던 엄마가 깜박하고 있어도 아이들은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매 순간 닥치는 일들에 내가 달라져도 된다는 걸 아이들에게 배웠습니다. 매일 꼬박꼬박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아실 여러분이 제게  가르쳐 주신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읽어주시고 라이킷, 응원 댓글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삶에 찾아오는 어떤 것도 다른 걸 못하게 하지 않았어요.


 그냥 변하는 거죠. ♡


 갑상선은 좀 우울하고 행복해 연재를 끝내고 이제 다른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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