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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n 10. 2024

자연이란 진료실에서 받은 처방전

만성질환 갑상선 저하증

갑상선이 아프고 나서 아침 루틴이 생겼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는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공복을 유지해야 호르몬이 몸에 잘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갑상선 호르몬제가 내 몸에서 반응하는 동안 나도 하루를 준비한다.

 

 전날 써놓은 글을 퇴고하거나 책을 읽는다. 한 시간 남짓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선다. 엄마가 되니 나만의 시간을 갖으려면 가족들이 잠든 시간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새벽 시간은 달콤한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혹한이 심한 겨울이나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빼놓지 않고 산책을 한다.

온기가 없는 차가운 몸은 나가기 싫어하지만 막 떠오른 태양이 뿌리는 빛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이기기 때문이다.

쭉 뻗어 나온 태양을 등지고 걸을 땐 보드랍고 편안한 기분에 취해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들떠 올랐다.


  새벽을 쓰는 습관은 모두 갑상선 덕분이다. 십 년 넘게 건강관리를 하려고 여러 가지를 해보았지만 산책과 명상이 가장효과적이었다. 명상 음악을 틀어 놓고 잠자리에 들면 아이들도 금방 잠이 들었다. 하루동안 피곤 했던 몸도 가능한 일찍 잠자리에 들면 충분히 7시간 수면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 갑상선이 억지로 힘을 빼게 하는 듯했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걷다 보면 예전보다 건강하고 활력 있는 내가 느껴졌다. 어떤 날은 걷는 대신 조깅하는데, 신기하게도 달리기를 날은 몸이 단단해져서 상쾌해졌다. 시간이  빠듯한 날도 있지만

점심시간 십 분이라도 여유 있게 햇볕을 쐬면 오후 업무가 더 집중되는 같다.




자연에서 받는 위로는 나에게 딱 맞는 처방전이었고,
매일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만큼 효과가 좋았다.

  


 시간을 내서 꽃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꽃밭은 꽃이 없어질 때까지 여러 번 간다. 매일 같은 꽃밭을 갈 수는 없지만 꽃이 많은 봄과 여름 사이엔 사진을 찍을 기회가 많다. 도시 어디든 꽃이 핀 틈을 찾아다녔다.

 꽃을 찍다 보면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꽃 이름을 물어보거나, 예쁘다며 함께 공감해 주는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가끔 투덜대며 그런 건 왜 찍냐며, 더 예쁜 걸 찾아 찍으라는 조언^^듣는다. 시시한 꽃보다는 물 위에 노는 청둥오리 한 쌍을 찍어보라고 말이다. 내가 설득이 안되자 날 히 보는데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요즘도 여전히 꽃을 찍는 나를 신기하게 보는 분들을 만나고 있다.


한 번은 둥굴레 꽃을 찍다가 둥굴레 뿌리를 캐는 도둑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둥굴레가 오래된 가로수 아래 자라고 있었는데 씨앗을 뿌린 주인이었던 것이다.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 꽃이 예쁘니 그럴 수 있다고 오히려 미안해하셨다.
 어린아이들도 내가 뭘 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하는데, 내게 다가오면 묻지 않아도 꽃 이름을 알려주기도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꽃을 찍는 일에 훈수를 하는 듯 말을 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착각일지 모르지만 잠시 말동무가 필요하거나 외로운 구석이 있는 분들은 아니었을까 말이다.
 
 한 번은 동네 공원 꽃밭에서 백일홍(백일초)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자가 나를 빤히 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그 꽃이 예뻐요?"


"..."

"난 하나도 안 예쁜데...
 나도 어릴 때는 꽃을 따기도 하고, 갖고 놀았지만... 몸이 아프니까 꽃도 다 소용없어! 뭐가 예쁘다고 사진까지 찍어요? 몸이 아프면 다 필요 없다고!"

"..."(진짜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 대답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할 말이 끝나면 자리를 뜨겠지 싶었다. 사실 나는 꽃을 더 찍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눈은 충혈되어 피곤해 보였고, 피부도 거칠고 힘이 없어 보였다. 하마터면 '혹시 갑상선이 안 좋으세요?'라고 물을 뻔했다. 처음 보는 내게 짜증을 내다니 잠시 놀라 멍했지만, 곧 화가 나고 억울해졌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저도 몸이 안 좋아요. 매일 약 먹으면서 치료 중이라고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갑상선기능저하증 때문에 호르몬제를 먹고 있지만, 그때는 별 차도 없이 피곤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꼬박 밤을 새우고 낮잠을 자지 않으려고 꽃을 보러 나온 참이었다. 나도 아픈 사람이라고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갑상선이 망가지고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잠이고, 가장 많이 줄인 건 말이다.

   


 직장에선 하루 종일 외부 미팅과 회의가 대부분인 업무를 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병원 의사에게 말하는 것 말고는, 병에 대해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은 진작 포기했다. 주변엔 나와 같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명해도 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고요한 침묵의 시간은 내게 가장 좋은 치료 약이었다. 꽃을 만나며, 즐기는 침묵이 갑상선을 더 아프게 하지 않는 듯했다.

  여름이면 주변에 백일홍 꽃밭을 몇 군데 찾았다. 강렬한 자외선이 두렵기는 하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그곳으로 갔다. 백일홍은 봄부터 여름까지 뜨거운 태양에도 건조한 공기도 잘 견디는 대단한 야생화였다. 겹겹이 꽃잎이 천천히 펼쳐지고 나면 꽃 중심에 꽃술들이 하나씩 씨앗을 만들어 내는데 꽃을 보는 동안 재미가 놀랍기만 했다.


    

"꽃이 시드는 것, 장미 빛이 밝은 잿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온갖 생명과 모든 아름다움의 비밀로서 함께 체험하도록 가르쳐보게나. 그들은 놀랄 것이네!"

  

작가 헤르만 헤세가 평생을 정원을 가꾸며 살았는데 그의 책 <정원일의 즐거움>에는 실린 백일홍 이야기다.



"날씨가 나쁘다거나 몸이 아프다고 해도 깨지지 않는 행복이야말로 최고의 행복,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행복이지. 열정적으로 일하며,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생산해 내는 것 말일세. 그게 무언지 아직은 상세히 자네에게 말해 줄 수 없어, 몇 년이 지나고 나면 함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걸세."

그리고 덧붙여 그는 말한다.


"오늘날의 질병이 내일의 건강함이 될 수 있으며, 그 반대로로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네 안에서 다시 한번 깨어나게 될 걸세"


 헤르만 헤세의 글은 노년의 원숙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말년에는 정원을 가꾸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집필활동과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한 그가 부럽기도 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책 속에 그의 삶을 보면서 나에게도 찾아올 노년의 시간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뒤 융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그에 대한 글을 읽고 놀랐다. 그도 오랫동안 아내와 자녀의 병을 지켜봐야 했고, 그 역시 오랜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질병은 늘 따라다닌다. 아프다가도 회복하고, 건강하다가도 갑자기 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삶은 탄생과 소멸이 함께 존재하며, 예측하지 못한 일들은 한순간에 재앙이 되지만 지나고 나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이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평화로워지기도 했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이란 병을 알게 된 후 3년간은  끔찍했지만, 약을 먹으며 그럭저럭 지내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어떤 일을 하고 살면 좋을지, 무엇을 하면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을지 고민하던 때였다. 갑자기 찾아온 병이 무서웠지만 내게 알려준 것이 있다. 스스로 찾지 않으면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것이 바로 행복이란 것을 말이다.

 내가 사는 도시는 얼핏 봐도 빌딩 숲이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공간, 버려진 공터, 허름한 건물 사이, 흙이 뿌려지고 깨진 틈에 야생의 존재가 있다. 작고 소소하지만 길가의 꽃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위로하는 것들은 완벽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신경 쓰지 않는 존재들에게 동지애가 느껴졌다. 아픈 존재들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도심에 살아 있는 자연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대부분은 괴로움이지만 날마다 새롭게 핀 꽃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꽃 사진을 찍는 시간은 늘 충분하지 않다. 길가의 꽃들은 언제든 사라지기 때문이다. 시들 때까지 별일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사람들 손에 사라진다.

예쁜 야생화일수록 위험다.
 
꽃 사진을 찍는 타이밍은 무척 중요다. 꽃봉오리를 발견하고 꽃이 필 무렵 맞춰 간 줄 알았지만 시들어 허탕을 쳤다. 장 보러 가는 길에 본 꽃이 집으로 오는 길엔 사라지는 일도 흔했다. 늘 만나는 꽃들이 마지막 모습일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배운 것도 있었다. 백일홍은 시들어가면서 꽃씨를 만든다. 꽃과 나무가 그러하듯 살아있는 존재들은 소멸하면서도 행복한 미래도 남겨둔다는 것을 말이다. 자연에서 받는 위로는 아픈 나에게 딱 맞는 치료제였고, 언제나 부작용이 없었다. 어쩌면 내게 찾아온 질병도 자연의 계절처럼 겪어내야 하는 통과의례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관문의 시간임을 말이다.


 내가 좋아하게 된 건, 내 몸의 생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난 후다.
 시들어 버리긴 하지만 꽃은 딱 지금 '있는 그대로'였다.

바람이  시작하며 겨울을 앞둔 가을산책을 하다 놀라운 발견을 하곤 한다. 종종 개나리나 철쭉꽃이 피어있는 습을 만나기 때문이다. 


  "어머, 철 모르고 꽃이 피었네!"

누구나 익숙한 꽃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알아보고  핀잔을 받기 일쑤다.       


  "아이고, 이 추위에 무슨 꽃이람?"

  생화 여전히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있는데이른 봄에  피웠다고  비슷한 핀잔을 듣는다.

  

가을에 핀 철쭉꽃과 제비꽃

  쩐지 이런 핀잔을 듣는 꽃들이 너무 안타깝다. 타이밍이 그랬을 뿐 꽃들이 피는 건 별일이 아니다. 가을엔 초봄의 날씨와 비슷한 날들이 있다. 그땐 나도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바빠진다. 마치 초봄을 누리듯 남은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 무렵 피는 제비꽃은 정말 그윽하고 짙은 색을 보여준다. 을은 짧지만 모든 계절 꽃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계절이다.

  다가 이름 봄에도 겨울잠을 잔 야생화들은 한낮 달라진 태양을 먼저 알아보고 꽃을 피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隧處作主 立處皆眞)
불교에서 쓰이는 말로 당나라 고승의 임제 선사가 한 말이며, "있는 곳에서 주인이 돼라. 그러면 어디든 있는 곳이 참된 삶이다."라는 뜻이다.

 

 꽃들이야 말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누가 보든 안보든 자리 잡은 곳에서 스스로 삶을 산다. 자신의 시간에 맞춰 꽃을 피우는 것을 탓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뿌리내린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자연 꽃을 통해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리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에게 배운 것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동안 굳어져버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걷어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쓰기 시작했고, 쓰고 싶었던 것을 쓰고 있다. 그런데 자꾸 누군가에게 가을에 핀 개나리가 듣던 핀잔을 들을까 봐 겁이 난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글로 쓰이면 밑줄 그어가면서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상처 되어 고두고 괴로움이 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글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 쓰고 남기 것은 두고두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것들로 인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도 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불편해지면 장애물이 되는 것 같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눈치 안 보는 법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걱정을 벗어놓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누굴 도우면서 느끼던 만족감이 오히려 힘들게 하는 줄 몰랐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겠지?'여기며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이 보람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상대에게 의견을 묻느라 한 말인데도, 눈치를 보느라 건넨 말이 되어 버렸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떠올려 본다.  법륜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 지금 여기 나에게 집중이 되어야지, 내 얘기 안 하고 늘 남 얘기만 하거나, 지금 얘기 안 하고 늘 지나간 얘기 하거나, 여기 얘기 안 하고 늘 저기 얘기하면 인생이 피곤해진다는 겁니다."

  

 함께 즐거워야 한다고 믿었지만 즐거워야 하는 것은 나였다.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나 외에는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 항상 즐거움을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어느 늦가을 벽에 장식처럼 늘어진 배풍등 덩굴을 만났다. 낙엽이 다 지고 난 후 선명한 빨간색 동그란 열매만 남은 가지가 탐스러워 찍고 싶었는데, 유난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계속 흔들린 사진만 찍혔다. 선명하고 명암이 분명한 사진을 찍으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들 때까지 버텼다. 그러고 나면 방금 산책을 나설 때 하던 걱정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걱정들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는 것처럼, 원하는 마음이 될 때까지 걱정을 분석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걱정을 떠올리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걱정은 바람처럼 지나가도 곧 다시 불어온다. 그 바람을 미워할 것인지, 흔들리고 있는 저 배풍등처럼 바람이 지나가게 둘 것인지 선택하면 되었다.

또 걱정 바람이 불어오겠지만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첫눈이 예보되어서 인지 바람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산책을 나서며 털모자와 장갑을 끼고 겹겹이 입은 옷 덕분에 이었을까? 바람을 한참 맞고 서 있었는데도 겨울 산책에서 돌아온 갑상선은 별일 없는 듯 평온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호르몬제가 몸에 반응하는 사이 자연 진료소에서 나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모든 계절을 나는 자연에서 주는 처방전을 받는다. 느리지만 완벽한 타이밍으로 살아 숨 쉬는 자연은 비슷비슷한 모습 같아도 늘 다른 모습이고 예상하지 못하는 변화무쌍을 가졌다. 나의 필명 '무쌍'도 자연에서 빌려온 것 중에 하나다.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들도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소진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로운 경험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우리는 모두가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 아닌가. 갑상선 염증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선 만성질환이라는 병적인 의미가 무의미 해졌다.

병을 얻고 잃은 것도 있지만 새삼 알게 지혜들이 날 쓰러지지 않게 했다. 모두가 자연에서 받은 처방전 덕분이다.


 평생 먹어야 하는 갑상선 호르몬제처럼  자연이란  진료소를 나는 끝까지 찾아갈 것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은 날마다 나를 통 큰 상상을 하며 살라고 부추긴다. 한결같이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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