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Jun 03. 2024

고장 난 갑상선을 타는 기분이란

갑상선 기능 저하증 11년 차의 고백

하얗게 내린 서리꽃이 핀 화단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몸을 감싸는 공기가 차갑지만, 내 몸은 춥지 않은 듯 온기가 느껴졌다. 어쩐지 호주머니 속에 양손은 따뜻했다.

차가운 물을 마시지 않아도 몸은 늘 서늘했었다. 꺼진 난로처럼 온기가 사라진 냉기를 못견디고 으스스 해지는 일이 많았다.


 적당하게 온기를 품은 양 손을 맞잡았다. 갑상선에 생긴 염증이 몸을 차갑게 해서 꼼짝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이미 멀어진 듯했다. 언제부터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

추운 겨울이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겨울을 열 번도 넘게 보내고 또 그만큼의 봄과 여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계절의 순환처럼 천천히 익숙해져 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무척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때론 그 평가가 나를 극심하게 뒤 흔들기도 했다.  갑상선이 망가지니 눈치를 볼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났다. 일상의 모든 순간 갑상선의 눈치를 보는 내가  느껴졌다. 혼자 있건, 남들 앞에 있건 간에 갑상선은 날 감시하는 듯 했다.


그냥 쉴까? 청소만 할까? 청소하고 옷 정리도 할까? 책을 삼십 분만 더 볼까? 물어봐야 했다. 수다를 위한 만남을 오전에 할까? 오후에 할까? 아니면 다음으로 미룰까? 물어봐야 했다. 체력은 매일 다르게 느껴졌고, 갑상선이 피곤하다고 하기 전에 몸을 챙겨야 했다. 예민하고 까다로워진 갑상선은 호르몬제를 먹는 것 만으로 조금씩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갑상선은 눈치를 주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기운 없음'이다.


 눈이 저절로 감기고 잠이 쏟아진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을 꼬박 새운 듯 눈만 감았다가 뜬 느낌이었다. 특히 에서  어난 순간이 무척 힘들었다. 대를 박차고 나설 수 없을 만큼 졸렸다. 낮잠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과였다.


목이 불편했고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말도 느려지고 말 수도 줄었다. 기력이 없는 날은  타인과 만남도 최소화했다. 불필요한 체력 소모를 줄어야 겨우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밖으로 향했던 에너지를 모두 내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병원 진료도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석 달 만에 가다가 반년에 한 번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일년에 한번으로 멀어졌다. 그러다가 가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오진 않을까 기대로 되었다. 아무튼 점점 갑상선도 정상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갑상선 저하증 치료는 간단했다. 부족한 갑상선 호르몬을 약물로 보충해 주면 되는 것이다. 조금씩 호르몬제 줄여가며 내 몸은 차츰차츰 생기를 찾아갔다.  하지만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오랫동안 마주해야 했다. 시간은 오래 걸린 듯 하지만 몸이 점점 나아지니 우울감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지금 먹는 호르몬(씬지로이드 0.025mg) 용량은 5년 전부터 유지 중이다. 호르몬제에서  가장 적은 용량으로 고 있고, 몸도 특별한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경우 항체 수치가 워낙 높아서 약을 끊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내 몸에 맞는 최소의 복용량을 지키고 으니, 이대로 별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고장 난 갑상선을 갖게 되니 망망대해 홀로 조각배를 탄 기분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 위에 출렁이는 파도가 몸을 계속 지치게 했다. 파도를 즐기는 법을 모르는 몸은 출렁일 때마다 녹초가 되었다. 그러다 호르몬제를 먹고 나면 몸을 지치게 한 파도는 잔잔해지며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상황이 나아지면 바로 배 출항을 할 듯 하지만, 문제는 항해를 할 기분이 안 든다는 것이다. 배가 움직이긴 하지만 참 뒤쳐진 듯 속도는 나지 않았다. 피로감이 느껴질 때마다  파도처럼 서워 움츠려 들기도 했다.


 행히 간은 내편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종일 항해를 나설 수 있었다. 잠시 바람이 불어주고 날씨가 좋으면 시원한 바다를 건너 목적지가 눈앞에 있다고 느껴졌다. 지만 갑상선은 계속 삐그덕 하며 오래가지 못하 저앉게 만들었다. 좋은 날과 별로인 날이 섞인 일상 어색했다. 그렇게  내 갑상선은 치료를 시작고 11년차가 되어서야 익숙해졌다. 병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발견한 문장은 이전엔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겪고 나서 알게 되니 삶은 경험으로 알아가는 것임을 또 깨달았다.


만성질환은 우리에게 죽음을 가르쳐 준다.
상실을 애도하는 과정은 치유만큼 나이 들어감에 있어 중요하다. 질병의 서사는 우리에게 삶의 문제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통제되며 의미를 갖게 되는지 가르쳐 준다.
우리는 만성질환과 그 치료법에서 신체와 자아, 사회의 연결을 상징하는 다리를 떠올릴 수 있다.
고통과 장애를 악화시킬 수도, 증상을 완하해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 아서 클라인먼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서른을 막 넘긴 나이에 찾아온 병은 독했다.  바로 휴직을 했지만 일 년 만에 결국 퇴사를 했다. 일 년 동안 치료를 했지만 바닥으로 주저앉히는 '기운 없는 몸'은 오락가락하며 날 지치게 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불쑥 무기력과 우울증이 달려와 몸을 붙잡아 버리면 더 나쁜 상황이 될지 몰랐다.  

 

  갑상선 때문에 식욕이 없어도 몸무게가 늘었지만, 체중계도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 동안 치료를 하기도 했지만, 호르몬 복용량이 거의 맞춰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급격한 '기운 없음' 증상은 3년 정도 지나니 호전되었다. 약을 먹고 3년이 지나서야 기운 없는 몸을 숨기고, 아픈 갑상선을 내색하지 않게 되었다.


 고장 난 갑상선을 움직일 능력이 생긴 건 르몬제를 먹고 7년째 되는 해였다. 특별하게 피곤함을 느끼거나 몸이 무겁고, 체중이 늘지도 않았다.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만족하지 않았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갑상선이 정상으로 돌아가 호르몬제를 끊을 수 있다고 기대했었다. 삶의 목표는 갑상선이 회복한 후에 다시 세울 생각이었을까? 호르몬제를 먹고 휘청이던 3년을 지나고 얼마전 까지도 나는 아플까 봐 두려워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까지 갑상선 기능 저하증 환자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고 완치해서 예전과 같은 갑상선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평생 꼬리표처럼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일 지도 모른다. '완치라는 기대'를 내려놓는데 7년이 걸린 셈이다. 그 뒤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갑상선이 아픈 것이기도 하지만 건강염려증이 더 무겁게 나를 지배했다는 것이 나를 더 파도치는 바다에서 지치게 만들었다. 병은 나의 진짜 모습을 깨닫게 하는 문일지도 모르겠다. 배가 항해를 하는 동안 날씨처럼 나의 건강이 늘 똑같을 수 없는데, 내가 기대한 건 티끌 없이 깨끗한 하늘에 항상 힘이 솟는 절대 노화되지 말아야 하는 몸이었.



진짜로 절 괴롭히는 건 사실 갑상선 질환이 아닙니다. 모두 언제가 죽기 마련이죠. 그런데 전 스스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데  정말이지 괴롭습니다. 차가운 손이 절 움켜잡고 놓질 않아요. 제 피부와 뼈에서도 죽음이 느껴질 정돕니다.
 - 아서 클라인먼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잘 나가는 성공한 사람들도 죽음 앞엔 빈손이 되어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곳엔 곧바로 떨어질 죽음이 있다는 공포가 갑상선 치료를 하며 더디게 한 것은 아닌지, 죽음으로 방향을 틀어 놓고 울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갑상선이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곧 죽음으로 갈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르겠다. 건강 염려증이 나를 죽음에 벌벌 떨며 작아지게 했다는 걸 말이다.


 바다 위에 뜬 배는 파도에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고, 인간이 태어나면 나이가 들어 노화가 찾아오는 것도 당연한 것을 갑자기 찾아온 병이 나를 죽음으로 데리고 가려고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곧바로 무덤으로 들어갈거란 착각을 했다. 오래 투병을 했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이유도 있지만 문제는 내가 죽는 게 무척이나 두려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초음파 검사를 받고, 혈액검사로 호르몬 수치를 확인한다. 나는 갑상선이 시키는 대로 산다. 

 

 갑상선은 이제 고장 난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연료 없이도 갑상선을 쓸 수 있지만 나는 호르몬제라는 연료를 채워야 한다. 예전엔 연료를 다 채워야 했지만, 지금은 딱 필요한 만큼 매일 충전해서 쓴다.


 망망대해 아무도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더 진실되고 깊은 인생이 있다는 걸  되었다. 시간의 강을 건너는 동안 내면에 채워진 에너지는 더 강해져 있음을 말이다. 상선에 생긴 염증은 그렇게 내 몸이 일부가 되었다. 에서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나에게 집중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상선이 내 삶을 바꿔 놓았지만 이전에 삶보다는 훨씬 나를 위한 시간들이 많아졌다.

 


 몸을 다시 건강할 때로 되돌릴 수 없만, 료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새 단련되었다. 




1.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피곤해지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땐 같이 자고, 가족들이 없는 동안 집안일을 미루고 쉰다. 집안 청소는 일주일 1-2번 정해서 하고, 식사 준비나 세탁을 우선으로 했다. 이 지치면 짜증부터 났고, 쉬고 나면 몸이 충전되듯 기운이 났다.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짜증 내는  버럭 엄마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 타인을 위한 삶을 최소화하다

  회사는 퇴직서를 내니 일사천리로 정리되고, 퇴직금을 수령하니 끝이 다. 일로 얽힌 타인과 정리는 쉬웠다. 다만 좀 더 친한 가족이 문제였다. 당장 나를 위한 시간도 빠듯한데, 가족이 걸려오는 전화는 달갑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과 집안일은 상관이 없었다. 장녀로 아버지 없는 가족을 돌보는 일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댁과 친정에서 일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매일 주어진 임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서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3. '아니요'를 좋아해야 한다

 거절을 못하니 부탁한 일을 달고 살았다. 재주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도우는 일은 즐거웠으니, 온종일 주변 사람 뒤치다꺼리를 하 보람이라고 느꼈다. 아픈 뒤  '무리를 하면 안 돼서요.' 혹은 '아니오. 못해요'를 연습했다. 평소 내가 아니어도 잘 지내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불편해지자 누구도 내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송에서 갑상선 질환에 걸린 연예인이 나오면 내가 같은 병인지  물어보는 정도였다. 거절할 때 아픈 것이 핑계가 되었을 뿐, 슬플 일도 아니었다. 각자 사는 인생길이니 말이다.


4. 완벽하려는 마음을 버

 상상 속에 원하는 내 모습은 뭔가 똑 소리 나는 모습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중재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좋아했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 보람이었지만, 그만큼 나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던 나는 시작과 끝이 명료해야 했다. 일을 할 때도 완벽하게 하고 싶어 벼락치기하듯 몰아서 일을 했다. 그렇지만 과로는 결국 몸의 면역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치지 않으려면 완벽함 보다 유연함이 중요했다.  매일 다른 과제들이 쏟아지고, 매번 잘할 수도 없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큰일이 아니었다.

 

5.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컨디션과 기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좋아하는  찾아야 했다.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예전에는 대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엔 그냥 걷는 것이 좋았지만, 요즘은 새벽 중랑천 걷기, 비 온 뒤 걷기, 나무 숲 걷기, 가족들과 주말 아침 동네 산책도 좋다. 좋아하는 일도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유가 생겼다. 좋아하는 이 많아지니 그들만 하기에도 시간 부족해졌다.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을 많이 알 수록 부자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6. 호르몬제를 반드시 먹는다

 호르몬제는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복용해야 한다. 자기 전에도 먹어봤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먹는 편이 나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비타민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꼬박꼬박 정해진 시간에 먹다 보면 몸이 먼저 달라고 하는 듯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아침 눈을 감은채 약병을 찾아 뚜껑을 열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7. 과거도 미래도 버린다

 병에 걸린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야 병을 인정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막연한 고집이었다. 갑상선이 아프면 지금을 살 수가 없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무기력했다. 치료가 시작되고 회복된 몸은 이제 뭘 해도 된다응원해 주었다. 대신 무리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현재를 살지 않으면 미래도 없었다.  앞으로 몸이 나빠질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이 듦에 따라 몸도 조금씩 삐걱 걸릴게  당연기 때문이다. 



 픈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갑상선이 '지금'을 멈춰버렸기 때문에, 나를 객관적으로 볼 기회도 생겼다. 그리고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 깨닫게 했다. 그건 바로 '지금 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건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평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스로 하는 자신의 평가 되도록 가혹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병이 알려준 것 들이다. 갑상선은 망가졌지만. 나를 지키는 법을 새롭게 배우게 했다. 갑상선과 잘 타협하는 법을 찾은 후로 나는 잘 지내는 중이다.




이전 15화 갑상선 염증이 뭐길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