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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27. 2024

갑상선 염증이 뭐길래

심리 진단 검사

  과거로 돌아가면 미리 막을 수  있었을까? 글쓰기 그런 궁금증을 분석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몸이 호전되자 '병' 의미는 나만의 해석으로 리되어 갔다.

 사실 갑상선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증상과 연관된 문제는 있지만 어디서 병이 시작되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하시모토 갑상선염으로 인해 갑상선 기능 저하증 진단을 받은 것 말고는 말이다. 나는 항체 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래서 호르몬을 끊을 수 없다. 정기적인 검진과 검사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매년 정기적인 갑상선 검사(초음파검사/ 혈액검사) 한다. 초음파 검사로 갑상선 혹, 결절, 염증이 어떤지 확인한다. 그리고 혈액 검사로 갑상선 자극호르몬(TSH)과 갑상선 호르몬(Free T4, T3) 측정한다. 그리고 갑상선 자가항체 지수를 측정하는데, 나의 경우는 적정 지수를 아주 크게 넘는 항체 지수를 가지고 있다. 보통 이렇게 높은 자가 항체를 갖고 있는 경우 하시모토 갑상선염으로 분류된다.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자가면역질환으로 완치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남성보다 여성이 4배 정도 더 많이 발견되며, 이러한 이유로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여성이 더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조절하는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경우 호르몬의 부족으로 우울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치료를 하는 긴 시간 잔잔하게 느껴지던 우울감들이 바로 그런 이유였다.  


이제는 내 몸에서 갑상선 기능저하증 증상은 희미해졌지만 예전에는 모두 해당되었던 증상들이다.  


1. 손, 발이 늘 차갑다.

2. 피부가 푸석하고 몸이 붓는다.

3. 잠이 쏟아지고, 늘 피곤하다.

4. 식사량이 늘지 않았는데도 몸무게가 계속 늘어난다.

5. 변비가 심다.

6. 탈모 증상과 머리카락도 푸석거린다.

7. 땀이 잘 나지 않는다.

8. 여름 더위 그다지 타지 않는다.

9. 추위를 잘 탄다.

10. 우울한 감정이 자주 생긴다.


위 10가지 외에도

소화 불량, 장 불편함, 말이 느려지고, 불면증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증상들이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특히 나 더위에 그다지 취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그럭저럭 찜질방을 오가는 것처럼 원하면 그대로 즐긴다. 몸이 차가워지는 것이 더 불편하고 싫어서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자연바람에 견디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호르몬의 부족 분을 약으로 보충해 주면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호르몬 조절 능력은 단순화할 수 없는 기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유익하겠지만 사실,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암 발병과 만성질환으로 이중고를 겪는다는 여러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갑상선 질환도 포함된다고 알게 되었다.




  격일로 하는 출근길은 한 시간 반 거리다. 퇴근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길 위에서 세 시간을 보낸다. 멀다고 마다하고 싶었지만 기회는 늘 있지 않으니 거절할 수 없었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해서, 겨우 얻은 3개월 장기 아르바이트였다. 매일 근무도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갈 이유도 없고, 하루 5시간을 넘지 않아 최저임금을 시간에 곱해서 받는 용돈 벌이 인 셈이다. 오랜 경력단절이었던 내게 의미가 있었다. 통장에 입금되는 기분을 다시 만끽해 볼 참이었다. 게다가 출퇴근 길에 그동안 하지 않던 '멍' 타임을 즐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예전엔 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갑상선 기능저하증(갑상샘 저하증) 진단을 받고 난 후 줄곧 왜 아픈 건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시계를 되돌려 아프지 않을 때로 간다면 병이 찾아오지 않게 막을 수 있었을까? 해소되지 않은 목마름처럼 자꾸만 답을 찾고 싶었다. 갈증인지 배고픔인지 헷갈려서 나중엔 어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모른척하고 지내다가도 또 불쑥 울컥하면서 억울했다. 누군가 몰래 만들어 놓은 함정을 모르고 들어가 버린 기분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려서부터 집이 가장 불편한 장소였다.

가족들의 눈빛을 해석할 수 없었다. 태어나서부터 내 생일날아무 날도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 자식이지만 뭔가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난하지도 않은데 속옷을 물려 입었고, 사랑이란 걸 뒤늦게 내 아이들에게 배웠다. 육아에 매달려 지내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자 가족들은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지키고 내 월급 통장을 지키고 싶어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다. 드라마에 나오는 종종 연예인들의 가십거리처럼 보았던 일이 내게도 있었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빼앗긴 것들을 모두 되찾고 싶었기도 했지만 최선을 선택해야 했다.


 아동기 경험과 만성질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뇌'에 관한 여러 가지 책에서 '만성질환'과의 연결고리를 찾아가고 있다. 

 

1990년대 말 미국 내과 전문의인 빈센트 펠리 비티와 로버트 앤더는 아동기 때 겪은 학대와 암 같은 중년기 만성 질환 사이에 연관성이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부정적 아동기 경험 Adverse Chilidhood Experiences. ACE" 연구를 했다. 2만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부정적 아동기 경험과 현재 질환에 관해 조사였다.


이혼, 가정폭력, 가족 구성원의 약물, 알코올 중독 등 유해한 경험들이 실제 중년기 만성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괴롭힘, 학대는 우울증, 불안, 경계선 성격장애 등 정신적인 질환을 일으키고, 암과 심장질환, 당뇨, 관절염, 자가면역 이상으로 이어진다.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제니퍼 프레이저 지음


자가면역질환은 사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증상들로 나타나는데 갑상선 저하증도 그중 하나다.

상처가 있었다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해도 뇌는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책엔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문장들이 있었다.


신경심리학자 릭 한슨은 여섯 살 때, 집  건너 길가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와 같은 나이에 내 오빠는 집에 와 이런 말을 했다. "제 머리가 고장 난 것 같아요." 아이들의 이런 말은 우리 마음을 찢어지게 한다.

아무도 내가 나갔는지 모르는 것 같고,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외롭고 망연자실한 순간이다. 그때 우리는 그가 그날 밤만 슬픈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집안의 불행과 슬픔이 어린 시절 전체를 어둡게 채색한 것처럼 보인다. 한슨은 그 때문에 마음에 '구멍'이 생겼다고 말한다.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제니퍼 프레이저 지음


 신기하게도 나의 최초의 기억도 6살이었다. 그 구멍의 존재를 나도 어렴풋이 느낀 것 같다. 그날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듯하다.  과거로 돌아가 직장에 다니던 시절로 가면 몸이 아프지 않았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병은 그보다 더 옛날, 아주 오래전 내면의 상처 때문일지 모르겠다. 래도 희망은 보였다.


 우리에게 생긴 구멍이 아무리 크다 해도, 매일 자신에게 벽돌 몇 장을 건네주자. 자신의 좋은 점에 집중하고 타인을 보듬고 인정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이들을 받아들이자. 한 장 벽돌로는 구멍을 메우지 못한다. 그러나 매일매일 꾸준히 메우다 보면 구멍이 메워질 것이다.

한슨은 자신의 마음- 뇌- 몸과 협업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갑상선 질환은 심리적인 문제가
원인 때문이라고?


  갑상선기능저하증 진단을 받은 직후부터, 내 갑상선이 왜 망가졌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심리적으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대부분 갑상선 질환에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상선 질환은 유전적인 요인도 영향을 준다고 알고 있지만, 왠지 다른 이유도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내게도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지만, 몸이 좋아질 수 있다면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대부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겪는다. 자가진단 법은 책이든 인터넷이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20문항에 모두 '예'를 표기하는 그냥 나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담실 대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예약된 시간이 되자  이름을 불렀다. 10일 전 나는 이미 두 가지 진단 검사를 했다.

하나는 다면적 인성검사(MMPI -2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였고, 다른 하나는  문장 완성검사(SCT Sentence Completion Test)였다.   

 

 다면적 인성검사는 500개가 넘는 질문지였는데, 텍스트를 좋아하는 나지만 답을 작성하는 일은 좀 피곤했다.

난생처음으로 듣는 질문이 눈앞에 있었다.

부모를 '좋아한다' '싫어한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멈칫하는 건 손이었지만 가슴은 뜨거워졌다. 태어나서 처음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는 기분이었다. '싫어한다'는 항목에 표기를 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고자질하는 것처럼 이상했다. 마치 자백하듯 솔직하게 검사지 항목을 체크해 나갔다. 다시 올라가서 수정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생소했지만 문장 완성검사가 한결 나았다. 쓰인 문장을 이어서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그리고 다음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상담사가 하라는 대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 걸 썼다. 래서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리가 없다."라고 썼다. 


 검사를 위해선 50개의 문장을 다 완성해야 했다. 일 글을 쓰는 나지만, 글쓰기로 진단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문장 완성검사는 글쓰기 퇴고하는 기분과는 달랐다. 어울리는 문장을 떠올리는 것도 아니었고, 오직 진단을 위한 문장 완성이었다. 내가 느끼는 걸 문장 속 주어진 상황이나 대상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막상 채우고 나니 내가 회피하고 싶던 대부분의 것들이 글로 쓰여 있었다. 어쩌면 그런 것을 알아내기 위 문장 완성검사였다.  



 

막상 진단를 하고 나니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피곤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기 직전 긴장감이 몰려와 전문의 앞에서 초초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괜히 했나 싶었고, 반대로 내 심리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리고 10일 기다리고 받은 진단 결과지 아랫부분엔 가장 바랬던 문장이 쓰여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재로서는 대체로 스트레스 관리가 잘 이루어져 있고 정서적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검사 결과지를 읽고 나니 나 자신을 너무도 몰랐다는 것을 후회했다. 갑상선이 망가진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검사 결과에 쓰인 글들은 나를 훨씬 더 놀라게 했다.

나의 과거, 감추고 싶던 상처, 심지어 내가 보지 못한 아픔까지도 해석되어 있었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관계로부터 거절당하거나 비난받을 것에 매우 염려하고 살고 있었다. 관계에서도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의사 표현을 자제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인이 보는 관점이 아닌 내가 원하는 장면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나의 갑상선은 어린 시절부터 초적 욕구는 되도록 인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참고 억눌려 지낸 것이 문제였다. 는 일에 익숙했으니 고름이 차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그 고름을 빼내는 일이었을까?


 다행이었다. 지금은 우울증이나 다른 소견이 없었으니 나는 '갑상선'만 문제로 남았다.

병을 얻었지만 나를 돌아볼 기회도 얻은 거라고 믿고 싶다.

지난 10년 넘게 호르몬제를 먹는다는 건,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꼬박꼬박 잘 먹는 아이처럼 나도 그러했다. 한동안 아픈 몸을 치료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아픔도 함께 보살핌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재 내게 심리 상담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큰 포상이었다. 스스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기뻤다. 그 모든 과정에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매일 밤 명상의 시간을 갖고, 매일 책을 읽는다. 얼마나 많은 기회가 내 앞에 올는지 나를 위한 글쓰기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니 쓰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앞으 나의 심리상태에 대한 의심 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또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이자 정원사인 그녀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보듯 정화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것이 원예 카타르시스다.
-  수 스튜어트 스미스 <정원의 쓸모> 중에서


집으로 돌아와 키우고 있는 식물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시든 풀들을 정리하고, 토마토도 땄다. 그리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대파를 뽑았다. 화분을 정리하며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더 이상 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직접 식물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게 하는 힘을 키워주는 듯했다.  내가 붙들어야 하는 꿈은 무엇이고, 어떤 꿈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주하게 한다.


 정리를 미뤄서 인지 빈 화분이 한꺼번에 많아졌다. 다시 화분 새로 흙을 고르고, 어느 때보다 강력한 사랑을 담아 씨앗을 심었다. 화분에 커가는 식물처럼 나도 살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건강한 사람으로 나답게 살아가고 싶졌다.

 

좋아하는 일만 하기에도 시간은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니, 삶은 더 활력이 넘쳤다. 늘 좋은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 행복했다.


갑상선 염증이 생긴 원인은 무엇인지 실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이미 많은 의학적 지식에서도 명쾌하게 찾지 못한 것을 내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싶었지만, 분명해진 것도 있었다.

타인이 나를 마음대로 흔들게 두면 안되다는 것, 설령 나를 낳은 부모라고 해도, 형제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인들과 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나를 흔들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갑상선 염증이 생긴 건 마음에 쌓인 외로운 감정이 아니었다. 이겨내고 싶어 투쟁했던 피투성이 상처였다. 실체가 없는 유령이 나를 따라다니나 싶었는데, 내면에 걸려든 저주를 풀어낸 듯 해방감이 들었다.

세상과 단절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밖으로 나가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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