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희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행복의 90퍼센트는 건강에 의해 좌우된다. 건강해야 모든 것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특성이나 감정, 기질과 같은 내면적 자신조차도 병약함으로 위축되고 기가 꺾인다. 사람들이 만나면서 서로 건강을 묻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무슨 일을 위해서든 건강을 희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건강이 있고 난 뒤에 다른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이다. - 쇼펜 하우어
쇼펜하우어가 말한 '희생'이라는 말이 거북하지 않았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몸을 아끼려는 생각하지 않은 것도 인정한다. 건강검진에서 별일 없었으니 아플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병원에서 '갑상선 기능저하증' 진단을 받았을 때 내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토록 무심했던 건 내 건강을 과신한 이유도 컸다.
매일 늦은 야근을 했다.
점심과 저녁은 주로 외식을 했다.
잠을 5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스트레스에 늘 빠져지 냈다.
일 때문에 평일에는 사적인 시간이 없었다.
우울한 감정이 들어도 무시했다.
목(갑상선)이 부어올랐다.
몸이 지쳐도 쉬지 않았다.
주말에도 일을 했다.
거의 매일 외근, 출장을 다녔다.
병원을 찾아가기 직전까지 나는 아프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이 아프다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우울하다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쉬고 싶은데 쉴 수 없었다. 나만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남편도 출근하는 사람이었고, 주변엔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워킹맘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나만 이렇게 지쳐가는지 알 수 없었다. 자책을 했고, 쉴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우겼다.
여기까지는 내 이야기다.
의학박사 켈리 브로건이 쓴 책 <우울증 약이 우울증은 키운다>라는 책엔 병을 앓던 저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도 나와 같은 갑상선 기능저하증이었다.
수련의 시절부터 맥도널드 햄버거와 에너지 드링크 거의 매일 먹음
수면 부족(의사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보충하려고 초코바를 매일 먹음
피임약을 계속 복용
잦은 두통과 심장 두근거림으로 약 복용
아이를 출산하고 3개월 만에 복직
주중 80시간을 일함
출산 후 9개월 차 그녀는 피곤함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찾아왔고, 갑상선 기능 저하라는 진단으로 호르몬제를 처방받았다. 대부분의 환자가 그렇듯 평생을 먹어야 할지 모르는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의 식습관은 한국에 사는 나와는 참 많이 달랐다. 그렇지만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삶은 참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출산 후 몸의 변화
만성적인 장내 불균형
바람직하지 않은 식습관
저자는 의사였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부족한 호르몬제를 보충하는 것 말고는 치료법이 없었다고 한다. 갑상선만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 뒤엔 우울증이란 큰 산이 있었다.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진 건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고 아픈 몸을 약이 아니라 음식과 운동을 통해 갑상선뿐만 아니라 신체 면역체계를 건강한 상태로 되돌릴 방법을 찾아냈다.
7년이란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마침내 그녀는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지 않게 되었다. 우울증도 이겨냈다. 아마 출산을 하지 않은 몸이라면 다른 이야기 일지 모르겠다. 여자의 출산은 어마어마한 인생 대 사건이다. 임신과 출산이 만만치 않은데, 출산 후 일터로 다시 복직하는 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몸을 되돌릴 수 있던 건 바로 건강을 희생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고 규칙적인 운동과 명상으로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은 셈이다. 건강하게 둘째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경험으로 여성 우울증에 대한 전문서적을 출간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그녀의 직업에서 풍기는 프로적인 지적 수준도 대단했다. 그녀의 책에선 갑상선을 공격하는 수많은 먹거리들이 설명되어 있고, 건강한 식재료들도 소개되어 있다.
그녀의 비법을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미국식 식이요법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장누수에 대한 그녀의 설명엔 일리가 있었다. 장건강이 면역력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나 역시 불안, 초초함, 불면증을 심하게 겪었다. 심한 변비를 겪어야 했고, 바닥에서 발을 떼기가 힘들어 그냥 누워있게 되었다. 그녀와 나의 차이점은 하나다.
그녀는 7년 만에 우울증과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극복했고, 나는 12년째 갑상선 호르몬제를 계속 먹고 있는 중이다.
가장 적은 양의 호르몬제를 먹고 있지만 이마저도 필요 없어진다면, 목에 하얗게 드리워진 염증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호전되니 내 병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언젠가는 없어질 거라고 말이다. 한번 잃은 건 회복되기가 어렵다. 차라리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아야 했다.
완치된 저자를 알게 되었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몸은 노력에 따라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약을 먹지 않아도 몸의 면역체계를 바꾸는 일은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말이다. 나는 아래의 두 가지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 매일 걷기와 명상
2. 공복에 갑상선 호르몬제 먹기
여성의 20%가 갑상선 기능저하를 겪고 있고, 혈당 문제, 당뇨, 더불어 정신적인 질환 우울증까지 만연해 있다고 한다. 이 모두가 식습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인스턴트 음식을 배제하고 자연에서 생산된 흙이 묻은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 물론 그 농산물도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먹게 되는 농약 잔유물이나 화학 비료에 부산물도 고려한다면 농산물을 고르는 기준도 더 까다로워질 것이다. 나의 식습관은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굳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건 인정하고 싶다.
미국에 사는 의학박사 켈리가 보여준 프로그램으로 많은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고, 우울증에서 벗어나 온전한 삶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내겐 분명한 긍정의 증거가 되었다. 결국엔 내게도 좋은 날을 데려다줄 것이라고 말이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유쾌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갑상선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건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건강은 상태이기에 언제든 나빠질 수 있다. 긴 시간 갑상선 기능 저하로 약을 먹고 있지만 결국 내 생활에 활력을 되찾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견뎌야 했던 것 같다.
아픈 몸에는 약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 내 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영리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는 어떤 성분인지 궁금해졌다. 천연성분 갑상선 호르몬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생각이 많아졌다. 나와 가족들이 먹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었다. 매일 먹는 종합 비타민 표시 성분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갑상선 염증에 좋지 않다는 대두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대두가 아닌 각종 첨가물로 들어가는 대두 성분은 갑상선에도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고 한다.
2년 넘게 먹던 비타민이지만 얼마 전 구매하려니 포장이 바뀌었던데 막상 구매했더니 맛과 색도 달라졌다. 전에 보이지 않던 대두 성분 표기도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완전히 다른 다른 제품으로 바뀌어서 찝찝했는데, 더 좋아진 게 아니란 기분이 들어서 다른 제품으로 바꿀 생각이었는데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갑상선 호르몬제 통을 꺼내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지금 용량으로 바꾼 지 3년 차인데 성분 표기는 처음 살펴보는 듯싶었다.
전문의약품 100정 : 씬지로이드 정 0.0025mg (레보 티록신 나트륨 수화물)
유효성분: 레보 티록신 나트륨 수화물(BR) 0.025mg
첨가제(동물유래 성분)
유당 수화물(기원 동물: 소, 사용부위: 젓)
젤라틴(기원 동물: 소, 사용부위:가죽)
첨가제(타르색소):적색 40호,
청색 2호 알루미늄레이크
기타 첨가제: 스테르 마그네슘, 옥수수전분, 탤크
1. 유당 수화물: 소의 우유에서 유장을 채취해 여러 공정으로 처리한 유당 (포유동물의 젖에 함유되어 있는 당분이었다!) 유당분을 약 제조 시 쓴다고 하는데 약의 효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2. 젤라틴: 유도 단백질의 일종으로 소의 가죽에서 채취한 것) 젤라틴은 신기하게도 정말 많은 식료품에 들어간다. 약에도 들어가다니...
3. 타르색소 : 식품에 색을 부여하거나 원래의 색을 복원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인공 착색료의 일종. (타르색소의 경우 인체 내의 소화효소 작용을 저해하고 간이나 위 등에 장해를 일으키며 최근에는 타르색소에 의한 발암성이 보고되고 있다. 네이버 사전 검색) 소량이라고 하지만 타르색소를 왜 넣는 건지 모르겠다. 발암성이 보고 되어도 제약회사에선 문제가 없나 보다.
4. 청색 2호 알루미늄레이크: 분말 식품, 유지식품, 당의 과자, 정제 코팅 등에 다른 식용색소 레이크와 배합하여 이용되며 약 0.005~0.5% 정도 사용한다. 색소로 사용한다는데 알루미늄레이크란 용어가 찝찝하다. 금속 알루미늄 분말과 유기물을 섞었다는데 화학물질은 분명했다.
5. 스테르 마그네슘: 동물 기름에 포함되어 있는 포화지방산.
다량 섭취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논문이 나왔지만 몸에 축척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6. 옥수수 전분
참 안 빠지는 성분인가 보다. 옥수수 전분도 들어간다.
7. 탤크: 마그네슘으로 이루어진 규산염 광물.
화장품에 성분으로 문제가 되는 그 탤크가 맞는지 모르겠다. 흰 분말로 약 제조에 쓰인다고 한다.
연보라색 알약이 되기 위해선 붉은색과 청색이 섞여야 하는가 본데, 색을 넣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다음 병원 진료엔 물어볼게 많아졌다. 갑상선이 아프고 나서 씬지로이드를 먹다가 씬지록신도 처방받았는데, 알약을 쪼개는 처방이 불가해졌다고, 2년 전 씬지로이드로 바꾸었다. 한 번도 처방받은 약에 대해서 의심을 하거나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내가 먹고 있는 갑상선 호르몬제까지도 화학물질로 범벅인 된 약이라니. 치료 약이 몸에 해롭다니 아찔했다. 천연 갑상선 호르몬제를 구해서 먹는 방법도 있다니 의사와 상의해 보는 것도 유용할 듯싶었다. 하지만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고 국내에 생산되지 않아서 지금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에 비해 10배는 비쌌다. 약으로 복용하는 갑상선 호르몬제는 가격은 무척 착한 편이니까 말이다.
한의원에서 제작하는 갑상선 치료를 위한 한약은 있는 듯했지만, 매일 아침 작은 단추만 한 약으로 먹는 것처럼 간편하지도 않았다. 알약으로 된 갑상선 호르몬제의 가성비는 다른 약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니 더 그럴 테지만, 천연 호르몬제는 일단 보험 적용도 안되고 해외 직구로만 구매가 가능했다.
국내 생산이 되지 않는 약이니 차라리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모를까, 그래서 큰 병을 고치러 미국에 간다는 말이 나오는 건가 싶었다. 의사에게 물었더니 효과나 안전성 문제를 따지자면 지금 복용하는 약이 맞다고 했다. 물론 의료보험 적용이 되고 검증된 치료약이기 때문이다.
약으로 판매되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 화학제품을 포함하고 있다니 충격적이다. 모두 소량이라 문제없다는 약사의 소견은 있었지만 약을 먹는 건지 제품을 먹는지 헷갈릴 정도다.
갑상선 염증이 있는 한 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은 먹지 않는 것보다 먹는 것이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제약회사에서 유해하지 않는 성분을 쓰는 방법을 더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아쉬운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 호르몬제를 끊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건강을 희생하는 일을 만들지 않을 테니까... 최종 목적지는 애초에 없었다. 하루하루 잘 지내려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호르몬제를 먹으며 조절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고통을 이미 겪어냈다는 뜻이었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끊는다는 것은 내가 건강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