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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06. 2024

주문한 365개의 갑상선 호르몬제가 나왔다

아침 루틴

  갑상선 검사를 위해서 6개월에 한 번 가던 병원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이후엔 1년 동안 먹을 갑상선 호르몬제를 처방받고 있다. 11년째 호르몬제를 먹고 있지만 병원 진료가 가까우면 불안과 걱정에 잠이 금방 오지 않는다.

약이 떨어질 때가 되니 병원에 갈 날도 가까워졌다. 매번 가야 하는 곳이지만, 병원을 가기 싫은 건 혹시라도 듣게 될지 모를 나쁜 소식이 무서워서다. 병원 진료를 위해서 긴 줄을 섰고, 체온검사 후 방문증을 받았다. 채혈검사를 마치고 3시간 만에 의사를 만났다.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갑상선호르몬은 늘 먹던 용량으로 처방을 받았다.


모든 것이 늘 하던 대로였고, 항상 시켜마시던 커피를 주문한 것처럼
약을 받아 들고 약국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빈 바구니에 새로 받은 약을 넣었다. 작은 약 박스 세 개와 약통 한 개가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평소 먹던 약은 긴 타원형 흰색이었는데, 이번엔 동그란 라벤더색 알약이었다. 같은 약이 아니었다. 한동안 씬지록신 정 (0.05mg) 반쪽이었는데, 양을 쪼개서 처방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의사가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갑상선호르몬제가 씬지로이드 정 0.025mg으로 바뀌었다. 매번 쪼개진 약을 먹을 때나 같은 용량인데 기분이 이상했다. 반쪽으로 먹을 때보다 더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동그란 알약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알약 색이 바뀌었을 뿐 일 년 동안 먹을 365개의 알약이 들어 있다. 주문한 365개의 갑상선 호르몬제는 나보다 크다. 일 년 동안 먹을 약이 있다는 건 한 해의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를 지켜줄 테니까 말이다.


 수북이 담긴 약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약으로 호르몬을 보충해야 하고, 어딜 가든 갑상선호르몬제는 반드시 챙겨야 할  소지품이다. 손목시계에 넣은 작은 건전지처럼 작은 알약은 내 일상을 움직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매일 먹는 갑상선호르몬제 보고 있으면 의지할만하고 든든하다.


 오늘도 안심한다. 약통에 가득 든 호르몬제를 보고 안심하고, 아침 거울에 비친 얼굴에 부기가 없어서 안심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하지 않아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서 안심이다. 씬지로이드 100정이 든 작은 상자를 열었더니 앞으로 100일 동안 내게 생길 일들이 기대된다. 친구도 나도 순조로운 오늘 만큼만 지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았다.

모든 감각들이 예민해졌다.

 나의 감수성은 아픈 갑상선 덕분에 더 강렬해졌다.

 다시 말하자면 그전엔 나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외부 환경에 맞추려는 것이 우선이었지, 내가 먼저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장녀들이 갖고 있는 "괜찮아" 콤플렉스일지도 모르겠지만, 감출 때는 몰랐던 다양한 감정들을 글쓰기를 하며 알게 되었다.


 나의 감수성이 꽤나 풍부하다는 것을 말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눈을 볼 수 없다. 몸 안에서 화학적으로 일으키는 반응 중에 생성하기 때문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아미노산 단백질 생성을 도우면서 만들어진다. 또한 세포에 산소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인체에 화학적인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갑상선 호르몬은 심박수, 열량 소비, 피부결 유지, 체온 유지, 소화능력,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갑상선 기능이 문제가 되면 앞서 나열된 항목들이 모두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면 된다.


 십 년도 넘는 동안 약을 먹고 있으니  이런 증상들이 없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가도 나이가 들어가며 나타나는 부수적인 일이라는 기분도 든다. 매번 상쾌한 몸을 가질 수 없지만 그럭저럭 별 탈이 없으니 말이다. 호르몬제를 계속 먹어야 하는 것 외에는 점점 이러한 증상들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물론 갑상샘이 목에 있지만 정작 갑상선 호르몬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역할은  분명하다. 제대로 호르몬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내 감수성이 글쓰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난다.


  모닝커피 대신
갑상선 호르몬제로 아침을 시작한다.


기운 없는 아침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니 다른 일에 집중을 한다.  바로 '나'를 데리고 오는 시간이다.


나의 하루엔 '나 자신'이 없는 것 같았다. 자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는 역할이 정해놓은 책임들을 순서에 맞게 소화를 해야 했다.  엄마 역할은 대본의 순서대로 움직여야 NG가 나지 않는다. 등장하지 않는 시간엔 잠시 쉴 수 있지만, 다음 등장 순서엔 늦지 않게 나서야 한다. 그렇게 매일 연극의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반복하고 나면 대사도 행동도 완전히 습득이 되어서 나와 배역을 하는 내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의상과 분장을 지운 원래 모습이 진짜인지? 배역을 하고 있는 내가 진짜 인지 모르겠다.


 연극이 끝나고 나면 뒤풀이나 사인회를 하고 싶지만, 관객도 배우도 나 혼자다. 어느 날부터 무대 뒤에 분장실 같은 곳에서 대본을 쓴다.  전날 저녁에 깔끔히 정리 못한 식탁은 중요하지 않다. 식탁 위에 아이들이 잘라놓은 색종이들을 손으로 쓱 밀어내고 노트를 편다. 식탁 위를 치우다간 떠오른 뭔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서둘러 재잘거리는 단어들을 뒤쫓아 들어간다.


365일 나는 갑상선호르몬으로 하루를 쓴다.
언제부터 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아침 글쓰기는 갑상선호르몬제를 먹는 것과 함께 짝꿍이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은 오래전부터 중독되었다. '0'으로 리셋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서 서둘러 잠을 청하기도 한다. 나보다 힘센 갑상선 호르몬제가 아침이면 나를 붕 띄우며 크게 만든다. 아침 태양이 창문으로 들어오고 손등 위해서 그림자가 움직인다. 손가락이 움직이며 머릿속에 종일 맴돌던 단어 조각 하나를 올려놓고 나머지를 글로 채운다. 그리고 사진 함에 있는 사진을 찾아 짝을 맞추듯 글과 함께 포개어 둔다. 그럼 나의 하루는 저장된 글로 일단락되고 새로운 준비를 한다.

 다시 엄마 역할을 위해 무대로 올라가면 가족의 아우성을  관객들의 박수처럼 듣는다. 박수세례를 받았으니 이젠 아침을 차리는 것으로 엄마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 ^^;
 
아이들은 엄마를 보고 자란다. 말로 아이들을 억지로 조정하거나 가르치려면 답이 없다. 내가 행복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북돋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하지 않지만, 작고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쓴다.

쓸 것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 쓸 말이 쓰였다. 어마어마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영웅이 되거나 유명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하기 싫은 설거지를 미루고 어제 찍은 꽃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꽃을 보니 뭔가를 쓰고 싶어졌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얼른 설거지를 해치우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일종의 해방의 시간이다. 갑상선 호르몬제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내 몸에 퍼져나가는 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보물들을 찾아 나선다.


  누군가 내게 글을 왜 쓰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진짜로 나에게 묻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그럴싸한 대답을 하고 싶었다. 날마다 글감을 찾으며, 언젠가 글쓰기 장인이 될 궁리를 한다. 매일 연습장을 채우듯 쓰다 보면 왜 글을 쓰는지 알아낼지도 모르겠다.

 혼자 보는 일기장에 계속 쓰고 있었다면, 이런 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갑상선호르몬제는 나를 더 아프지 않게 한다면, 글쓰기가 나를 지켜주는 지도... 

요즘은 '행복하다'라고 글로 쓰지 않아도  상처받은 이야기를 쓰면서 행복도 함께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글을 쓰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 될 듯싶다.

 '그냥, 행복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365일 나는 갑상선호르몬으로 하루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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