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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pr 22. 2024

갑상선 염증 유전일까?

갑상선기능저하증 엄마의 육아

 전날 아침에 약을 먹지 않았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으로 약을 복용하는 분들은 이 느낌을 아실지 모르겠다. 약을 깜빡하고 뒤늦게 기운 없음을 알아챈 후 복용 호르몬제가 다음 날 가뿐하게 해주는 경험 말이다. 출산하고 나니 건망증이 심해진 건지 약을 먹는 시간이 바뀌어서 인지 약통이 눈앞에 있어도 잊어버렸다.


 두 아이와 일상은 내 기억력에 한계를 불러왔다. 호르몬제를 먹었는지 규칙을 정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틀 연속으로 먹지 않는 날도 있고, 먹고 나서 또 먹은 날도 생겼다.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였다. 임신 출산보다 육아가 더 극강의 소모가 일어났다. 다시 몸이 나빠지는 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두렵고, 산후 우울증도 한몫을 하니 눈물이 많아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감기라도 같이 걸리면 잠을 거의 못 자는 날도 생기고, 낮에도 놀아주느라 녹초가 되었다. 게다가 수유 중인 둘째가 있으니 갑상선이 문제라기보다는 육아의 버거움이 만든 우울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몸에 생긴 갑상선 염증이 갑상선 기능 이상을 만들고,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몸의 대사를 모두 느릿하게 바꾸어 버린다. 기운이 없고 잠이 오고 무기력해진다. 그러니 우울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고 돌아도 또 제자리였다.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모두 도망간
상태가 된다.

몸이 기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우울한 기분들이 몰려와도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나면 좀 나아졌다. 우울함도 갑상선 기능저하증이 만든 정신적인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나는 육아가 쉽지 않았다.

둘째를 수유 중에 나는 산후 우울증상 심해졌다. 이상하게도 첫 번째 산후조리와는 달랐다. 정말 알 수 없는 우울감은 아무것도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유치원을 마친 아이들이 노는 동안 매일 보다시피 하는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언니 아무래도 산후우울증이 심한가 봐."

"우울증?"

"아무것도 하기 싫고 딱 그만두고 싶네."

"이그, 몸이 편해서 그래. 둘째잘 먹고 잘 자니까 엄마가 편하구먼. 몸이 힘들면 그런 생각도 안 들걸."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나? 말을 꺼내고 나서 금방 후회했다.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건지  내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내 몸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다. 타인에게 무언가 기대어 보려 했나 싶고,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한 듯 느껴졌다.

평소에 내게 이런저런 푸념을 털어놓더니,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나 보다.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뒤로 난 입이 더 무거워졌다. 나를 위해서도 아이들의 위해서도 그랬다.


갑상선이 약해서 더 심한 가 싶었지만 우울한 기분을 달고 사는 건 아무래도 의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출산 후 수유를 하던 나는 내분비 내과를 3개월에 한 번씩 내원했다. 선생님은 언제나 친절하셨다. 어쩌면 산부인과 선생님 보다 육아에 대한 고충을 잘 이해해 주었다. 매번 웃는 얼굴로 내 기분을 묻는다. 울적한 일상에 대해서 위로를 받은 건 그때였다.


" 갑상선 호르몬제 복용시간을 일정하게 하기 어려우시죠?  신생아 수유를 하면서 같은 시간에 맞추기 어려우실 거예요. 그래도 아이 개월 수가 늘어나면 훨씬 더 나아지실 테니 좀 느긋하게 기다려보시. "


그리고 내게 물었다.


" 아침 수유 보통 몇 시 정도에 하시죠?"

" 그때그때 달라요."
" 어차피 아이는 먹고 자고 하는 게 일이잖아요. 엄마가 이른 아침에 아이를 좀 깨워서 수유하시고, 바로 약을 드셔도 돼요. 엄마가 편해지면 아이는 더 건강하게 자랄 겁니다. 한번 해 보세요. "


 내 편은 아무도 없는 듯 외로웠던 내게 고마운 조언이었다. 그때는 육아가 버거워 그런가 싶었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의사가 건네는 말은 효과 좋은 주사처럼 온몸으로 반응하며 반가워했다.


병원을 찾는 이유는 아픈 갑상선 때문이지만, 마음의 위안도 얻을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처방이 필요한 환자의 고충을 의사가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하겠지만, 내가 운이 참 좋은 것일 수 있겠다 싶었다.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말하는 의사를 많이 만났으니까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둘째를 낳고 나는 고독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수많은 책 속에서 지내면서 쓸쓸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유모차를 밀며 도서관을 가는 일과는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는 원래 걱정 부자다. 쓸데없는 걱정부터 진짜 해야 할 고민까지 모두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풀가동한다. 정이 돈이었다면 복리로 불려서 벼락부자가 되었을 텐데 아쉬울 정도. 그때마다 책은 좋은 의지처가 되었다. 하지만 내 병이 아이들에게 유전이 될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백일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영유아 검진을 가던 날 나는 긴장했다. 출산 아이의 선천성대사이상 선별 검사 결과를 받을 때와 같이 말이다. 아과 의사에게 물었다.


 " 제가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거든요. 그래서 아이에게도 유전이 될까 싶은데,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의사는 아이가 기운이 없거나, 몸동작이 느리거나, 수유할 때 힘이 없는지 물었다.


"그런 증상은 없어요. 그냥 제가 걱정이 돼서..."


의사는 아이 출생 시에 했던 선천성대사이상 선별 검사 결과를 물었고, 정상 소견이 나왔다고 대답했다. 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아이를 잘 살피면서 지내라고 했다. 언제든 의심스러우면 검사를 해보라고 말이다.


선천성 갑상선기능저하증

 신생아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날 수 있는 내분비 이상으로 선천성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Congenital hypothroidism)은 생후 2-3개월부터 나타난다. 엄마의 몸에 있을 때부터 출생할 때까지는 모체에서 공급되지만 그 이후 이상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출생 후 검사를 통해서 T4와 유리 T4(free  T4)가 감소하고 THS가 증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갑상선 호르몬은 성장 및 지능 발달에 주요한 기능을 하며 골성숙의 지연, 성장장애, 정신 지체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태아가 출생하고 혈액을 채취해서 선천성대사이상 선별검사를 한다. 그 항목 중엔 선천성 갑상선 기능저하증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두 아이에게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프기 전에 낳은 째도  나와 닮지 않기를 나의 갑상선 염증을 물려받지 않기를 말이다. 둘째가 유독 누워 지내는 것을 좋아해서 기운 없어하는 건 아닌지 착각하기도 했다. 

선천성대상이상 선별검사엔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걱정이 되면 3개월 후 검사를 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는데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거라 담당의는 말했다. 아이가 키가 작은  것이 나 때문인가 싶었지만 또 한편으론 큰 아이도 작았으니 둘째도 비슷하겠지 싶기도 했다. 어느 날 진료실이었다. 나는 정말 진지했고, 한편으론 불안했다.


선생님 갑상선 염증이 생긴 건 유전적인 가요?
 제 친지 중엔 갑상선 염증을 가진 분이 둘이나 있거든요."


의사는 첫마디가 "걱정하지 마세요. "였다. 그리고  내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


" 유전을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다르죠. 직계 가족이든 아니든 가족을 따지자면 할머니에 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잖아요."

"그럼 유전이란 말은 의미가 없겠는데요. 전 아이들에게 유전될까 봐 걱정이 됐거든요."


여전히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있지만, 내 품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볼 때마다 걱정은 떠나지 않는다. 갑상선 기증 저하증이지만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걱정 부자인 나는 쓸데없는 불안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뻔했다. 의사가 말한 대로 유전의 경계를 어디까지 둘 건지, 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중요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염려는 그만두어야 했다.


 내 병은 엄마 역할을 하는데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늘 피곤을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보다가도 집에 있는 침대가 그리웠다. 아무렇지 않게 바깥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지내는 내겐 쉽지 않았다. 이제는 한참 전 일이지만 멀쩡히 수다를 떨다가도 눈이 감겼다. 같은 반 아이들이 키즈카페에서 놀기로 했다며, 엄마들의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아이는 이번은 꼭 가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모여서 괜찮을 것 같았지만, 두 시간을 훌쩍 보내고 엄마들의 수다가 길어졌다. 아이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지만, 엄마인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답만 할 뿐 더 이상 이야기에 끼지 않았다. 너무도 졸렸다.

눈치 빠른 한 엄마가 "피곤한가 보네. 커피 더 할래요?"

잠시 망설였지만 말하지 못했다. 잠시 뒤 학원 시간이 다 된 아이들이 있어서 모임정리되었다. 문제는 학원을 간 아이들 말고 나머지 아이들은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 속이 안 좋아요? 얼굴색이 달라졌는데요." 괜찮다고 했지만 난 졸렸다. 노는 아이를 불러 포켓몬 카드를 사준다고 하고는 겨우 설득했다. 우리가 자리를 뜨자 모임 장소는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분위가 좋아 저녁까지 먹고 들어겠다는 대화를 뒤로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니 살 것 같았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7년 차가 되기 전까지는 놀러 가는 것조차 체력이 도와주지 않았다. 반나절 모임도 내겐 버거운 노동 같았다. 그래서 난 갑상선호르몬제를 먹는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지나친 외부 활동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제가 또 생겼다.


"언니 몸 괜찮아? xx 엄마 괜찮아요?"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내게 하는 말이었다. 오히려 아픈 걸 밝히고 나니 더 난감해졌고, 미안해졌다. 그래도 육아를  병행하며 치료를 하는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고는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되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시절 몸이 가뿐해지는 날도 있지만 언제나 절반은 지쳐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육아를 해야 했으니 갑상선 탓만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니 엄마들 모임은 사라졌다.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하니 친구를 만들어주는 모임은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말이 없고 나서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학부모 활동을 잘하는 엄마들이 많은 덕도 있고, 부쩍 자란 아이들 덕이기도 다.


갑상선이 알려준 것은 분명했다.

내 몸은 하나이고, 일단 나빠진 몸은 원래대로 회복되기 어렵다. 하루만 살 수 있다고 해도 몸을 한 시간 만에 혹사시킬 수 없었다. 건강할 때 몸을 지켜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었다.

나는 내 몸을 아끼는 법을 아픈 갑상선에게
배운 셈이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판정을 받고 나선 추위에 민감해졌지만, 더위는 무뎌졌다.  봄에 태어난 아이들 덕에 여름까지 산후조리를 했던 기억 때문인지 여름은 그다지 덥지 않다. 추위는 여전히 잘 타지만 더위는 내게 큰 어려움이 아니다. 물론 더위를 안타는 이유는 갑상선 염증 때문이지만 말이다.  여름도 오기 전 후끈한 열기를 쫓아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편이다.


 " 안 더우세요?"

" 아네, 전 더위를 좀 안 타거든요."

" 진짜? 부럽네요."


 대부분 사람들은 더위를 안타는 나를 신기해하며 부러워했다. 그렇다! 좋은 점도 있구나. 나를 부러워하기도 하니 나쁘지 않았다. 꼬박꼬박 365일 갑상선 호르몬제를 챙겨 먹는다. 종종 깜빡할 때도 있지만 너무 놀라지 않아도 된다. 다시 시작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가 걱정한다고 아이들이 잘못되거나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엄마를 믿어주 듯 엄마도 아이에게 늘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더 효과가 있었나 보다. 엄마의 병은 아이들에게 전염되고 유전되는 것도 아니었고, 내 병이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내게 찾아온 '갑상선 기능저하증'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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