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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pr 29. 2024

갑상선에 냉장 보관된 글쓰기

글쓰기의 힘

  늘 궁금했다.

몸이 겪는 병은 떻게 시작된 것인지. 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 서울 큰 병원에 진료를 가실 때마다 전화를 기다렸다. 검진 결과가 궁금해서였다. 나도 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약을 받아오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왔다가채혈하고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날이면 알 수 없는 초초함을 느꼈다. 그리고 어딘지 익숙한 느낌은 십 년 넘게 약을 드셨던 아버지가 겹쳐져서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외로움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나 호주머니 속에 가지고 다녀야 하는 외로움이 있다. 만 있는 고통은 아니지만 또 나만 알고 있는 고통이기도 했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주머니 속에 있으니 꺼내지 않으면 될 것을 만지작 거리면 곱씹어 보는 것이다. 우울함은 가만히 있다가도 빈틈만 생기면 나타났다.


어디서든 작은 희망을 찾아야 했다.



집에만 머물다 보니 밖으로 나서는 일이 겁났다. 갑상선 때문에 직장을 관두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예전처럼 직장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 이력서는  매력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출근은 못하지만 일은 하고 싶었다.

 바닥에 뒹구는 낙엽들도 떨어진 이유가 있을 듯한데, 내겐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엄마 노릇을 겨우 하고 있지만 무기력했다. 나를 둘러싼 공간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가까운 곳에서 삶의 목표를 세워야 했다. 하루하루, 그 속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법을 궁리했다. 그것이 작고 흔한 것이라고 해도 내게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시작할 수 있을 듯했다. 망설이던 것 중에 시도할 만 것을 발견했다. 은밀한 곳에 숨겨둔 비밀상자 속, 한 번도 표현해 본 적 없는 언어들을 꺼내볼 기회가 온 것이다. 바로 글쓰기였다.

 


 

 몸에 기운이 없을 때면 병원에서 처음 진단받던 날이 영화 장면처럼 떠올랐다. 노트 위에 손이 움직이고 소설의 첫 문장처럼 내내 잊히지 않는 대사도 있었다.


 의사의 첫마디는 "많이 피곤하시죠?"였다.
낯선 타국에서 모국어를 쓰는 동포를 만난 듯 속 시원하게  말이 통하는 귀인을 얻은 기분이었다. 아무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의사의 한마디에 나는 안심했다.


 "네 맞아요. 너무 피곤하고 잠을 자도 계속 졸리네요."
"우선 일주일 치 약을 처방해 들릴 테니 바로 드세요. 일주일 정도 드시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좀 다르다고 느낄 겁니다. 대신에 무조건 쉬셔야 합니다."
"저 직장은..."
"일은 당장 멈추세요. 휴직을 길게 하셔야 할 겁니다. 6개월 정도 지켜볼게요. 목이 이미 많이 부어있네요.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합니다. 약을 드시면 확실히 나아지실 거예요. 이대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요. 무조건 잘 드시고 쉬세요."


의사 말대로 약을 먹고 일주일 만에 아침에 일어날 때가 되니 눈이 저절로 떠졌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몸에서 부기가 빠졌다. 그렇지만 다른 문제도 생겼다.

한동안 기력이 없는데도 잠도 오지 않는 밤이 무서웠다. 불면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우울증이 삶의 의욕을 떨어뜨렸다. 무기력함이 불러온 느림은 갑상선 호르몬제로만 좋아지지 않았다.


뭔가 하려는 마음 자체를 내려놓게 했다.




 

 옴짝달싹 못하는 몸이었지만, 나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좋은 상황이 되었다. 책을 쌓아두고 읽던 어린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 말고는 크게 움직일 것도 없고, 언제든 그만두고 싶으면 책을 덮어버리면 되었다. 언젠가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면'이란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이렇게 일도 안 하고 만끽해도 되는지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시간을 찾아서 기꺼이 누리고 싶었다.

 

 틈만  나면 출근하듯 도서관을 들락거렸고, 눈을 뜨면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노트를 채워갔다. 한 작가를 알게 되면  출간된 책을 줄줄이 빌려와 읽었다. 그러다 의사이며 작가인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를 알게 되었다. 의사의 목소리로 환자 이야기를 쓰지만 그의 글은 환자가 쓴 듯 아픈 감성이 느껴졌다. 그는 환자를 보면 병을 고쳐주고 싶어 했다. 그런 진심이 환자들을 기적적으로 일어나게도 했으니 나도 그러고 싶었다.  


 올리버 색스의 책 <모든 것이 그 자리에>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또 다른 내가 책 속에 있었다. 정확히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사연이었다. 그리고 그 환자의 결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7년 동안 병명도 모른 채 무기력했던 환자를 우연히 만났고, 그를 검사했더니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었다. 치료를 받기 시작하니 생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얼마 뒤 급성 암으로 죽게 된다. 너무 놀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같은 병을 갖고 있는 그가 왜 죽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의사인 그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좀 서늘하고 좀 나른하고 기력이 없는 그런 느낌이에요."

 그는 7년간 외출한 상태로 가족들은 그를 차갑게 방치함으로써 생명을 살렸고, 우리는 그에게 온기를 불어넣으면서 결과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갔다. 급성 암도 무려 7년간 냉장 보관된 것이다.


 갑상선이 재 기능을 하자 몸에 숨겨져 있던 암세포도 되살아났고, 급성 암은 빠르게 몸을 파괴해 버렸다. 갑상선이 암까지 꼼짝 못 하게 묶어 둘 수 있는 괴력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충격이었다. 의사도 환자도 갑상선이 모든 것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논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암세포도 힘을 못쓴다니 나의 무기력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최고 용량으로 먹고 있으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했으니 말이다.

 

그는 책 속에서 갑상선 기능 저하증(Hypothyroid)의 증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갑상샘은 우리 몸을 덥히는 난로 같은데, 난로가 고장 나 살아있지 않은 냉장보관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의 설명대로 라면, 내 갑상선이 망가지면서 무엇이 함께 냉장 보관되어 버린 것일까? 
그건 내 삶의 열정들이었던 것 같다.  뭔가 하려는 시도들을 차갑게 냉장 보관해 버린 것이다. 일을 하면 분명 더 병이 악화될 것이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란 진단을 받고 나선 하고 싶은 일들도 냉장 보 된 채 꺼내고 보고 싶지 않았다.  

외면하고 지낼  있었다. 온기가 사라진 몸은 식욕도 없어졌다. 그나마 욕심을 내는 것은 고요함이었다. 성격이 바뀐 것처럼 전에 쓰지 않던 내향적인 기능들이 되살아났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흘러갔다. 매일 새롭게 피는 나팔꽃처럼 아이가 날마다 웃게 해 주었다. 나도 꽃피울 것이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시작하려고 했지만 또 다른 벽이 날 기다렸다.

 두려워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면 어쩌지?
 지금 안 하면 다음에 기회가 없을지 몰라?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다독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내 글이 놀림감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내야 했다. 내 존재를 확인할 길은 글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정 분량의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중요했다. 오래 앉아 있으면 금방 잠이 쏟아졌다. 신호가 올 때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다시 썼다. 쓰다가 자고,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보니 엉덩이도 익숙해져 갔다.

 갑상선이 망가지면서 냉장된 나를 그대로 두기가 싫었다. 작가라는 직업을 흠모했던 나, 그리고 글을 쓰고 싶던 나는 숨어 있었다. 일어나 앉기만 하면 손을 끄적였다. 메모장에 입력하거나 노트를 꺼내 직접 쓰기도 했다.  내 이야기는 이제 차갑게 침묵하지 않고 날마다 노트에 옮겨진다.
 온기를 찾은 <갑상선에 냉장 보관된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작은 희망을 쓰고 다. 내 몸 어디엔가 숨겨져 있던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몸이 치료되면서 살아났다.


 갑상선에 냉장 보관된 글쓰기는 속마음까지  싹싹 긁어 꺼내 쓰게 다. 끙끙 머리를 쥐어짜며 오지 않은 미래를 엉뚱한 시나리오까지 만들 필요는 없으니, 일기도 에세이도 아니었고, 소설 글도 아니었다. 튕겨져 나오는 감정들을 옮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나는 오직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데 쓰기로 했다. 거의 매일 일기처럼 쓰기는 하지만  갑상선 염증 뒤에 숨어서, 자신감이 없는 나를 숨겨 온 걸 인정해야 했다.


 갑상선 염증과 함께 살다 보니 나의 삶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억지로 만들지 않고 꽃처럼 피어나는 있는 그대로 말이다. 어쩌지 못하는 갑상선 염증처럼, 있는 그대로 나와도 잘  지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가 성가실 때도 있지만 덕분에 나는 더 잘 지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좀 부족하면 어떤가. 딱 맞게 처방된 약은 얻을 수 없었지만 경험은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몸은 그대로 지만 글은 쓰였다. 


 아픈 몸이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지? 

다른 병에 또 걸리면 어쩌지?

여러 단계의 걱정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못쓰면 어쩌지?'가 고민다. 하루쯤 쓰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그렇고, 아무리 써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못쓸 것 같을 때도 그렇다. 어쩌면 두 가지의 의미가 다 담긴 걱정이다. 그렇게 들어오고 싶은 세계였지만 매일 써야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이럴 땐 책 속에 살고 있는 작가들을 만나면 해결이 된다. 시름시름 기운 빠졌던 나는 방금 전까지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정말 감쪽 같이  증세가 사라졌다. 보통 잘 듣는 진통제 책 목록은 정해져 있지만, 요즘은 든 작가들이 존경스럽다.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작가의 대명사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한 말이다. 그의 운둔 시절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글을 쓰는 일이 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가 오랫동안 공을 들인 <노인과 바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이나 걸렸고, 작품이 돌풍을 일으키며 얼마 뒤 1954년 노벨문학상을 게 되었다는 것도 잠시 지독한 병이 그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그가 지독한 독감이나, 낙상사고로 다리가 다쳤다면 어땠을까? 작가들을 왠지 폐렴으로 아팠다가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운명 같지만, 마음의 병은 참으로 가혹하고 종잡을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도 그랬지만, 지금 시대처럼 치료법도 안전하지도 않았던 때였다.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가 어떤 삶이었을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비행기사고를 연달아 겪은 일이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생긴 트라우마가 그를 계속 괴롭히고, 무엇이 몸을 무너지게 했는지 말이다.
그래도 작가는 스스로의 삶을 글로 남겨두기에 그의 인터뷰에서 트를 얻었다. 그는 매일 우물의 물을 규칙적으로 퍼내듯 글을 쓰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를 쓰지 못하게 했던 건 아픈 마음이었다.   


소설이나 단편을 쓸 때면 매일 아침, 가능하면 해가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방해할 사람도 없고, 날은 서늘하거나 춥고, 와서 글을 쓰다 보면 몸이 더워지죠. 전날 써놓은 글을 읽어봅니다. 늘 다음에 무슨 일이 알고 있을 때 작업을 끝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계속 써나가요.  아직도 신명이 남아 있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는 지점까지 쓴 다음, 거기서 멈추고 다음날까지 꾹 참고 살다가 다시 시작합니다.....
다음 날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힘든 일이죠.
- <파리 리뷰> 1958년 봄 호


 그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글을 썼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인터뷰에선 매일 쓰고 써야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작업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장애물처럼 몸과 마음이 흔드는 통증들을 넘어선다는 것 그를 더 힘들게  했듯싶다.  60세를 넘긴 그가 더 여유롭고 건강한 인생 후반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면, <노인과 바다>처럼 또 다른 노인이 주인공이 된 작품을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작가는 생을 마감해도 글은 멈추지 않는다. 미완성 원고나 출간되지 않는 원고가 발견되고, 쓰다만 문장과 끼적인 메모들이 발굴되니 말이다. 헤밍웨이에 관한 이야기가 루머인지 사실인지 경계를 넘나드는 후일담을 보면 우울한 기분이 들지만, 완벽하게 밝은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 있는 인생을 살다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일까. 작품을 완성하는 일은 몰아치기가 아니라 매일 조금씩 물을 퍼내는 일처럼 해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내일도 비슷한 오늘처럼 지내길 바라면서 말이다. 발을 들여놓았으니 계속 멈추고 싶지 않다. 시작하 어렵지만 '쓰기의 시간' 금방 끝이 나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글을 여러 번 고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책상은 고요하지만 치열한 곳이었다. 고통 없이 너무 쉽게 쓰려고 하진 않았는지, 노력 없이 요령을 부리는 건 아닌지 터벅터벅 시끄럽게 소리 내던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오늘도 난 없이 잠잠하게 조용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호르몬제만 먹으면 일상으로 되돌아오니 나도 예전으로 돌아간 듯 편안한 날이 많아졌다. 갑상선이 제 기능을 할수록 어두운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올리버 색스가 만난 환자 속에 암세포가 있었다면 내 몸엔 동심을 누려보지 못한 아이의 감정이 냉장 보관되어 있었다. 헤밍웨이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심정을 상상하지 않아도 안다.

좋은 부모에게서 자라난 아이들은 겪지 않는 여러 가지 단점들을 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온기가 없는 상태에서 자라다 보니 나는 사랑받지 못한 동심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몸에 온기가 생기자 숨겨둔 수치심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고통 없이 너무 쉽게 쓰려고 하진 않았는지, 노력 없이 요령을 부리는 건 아닌지 터벅터벅 시끄럽게 소리 내던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글을 여러 번 고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책상은 고요하지만 치열한 곳이었다.


오늘도 난 없이 잠잠하게 조용해지는 연습을 다.

온갖 것들이 내 곁에  잔잔하게 머물러 있는 지금이 좋다.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번역하기 시작한 건 아픈 갑상선 때문이지만, 내가  여기까지 떠 밀려오게 된 것은 다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감정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쓰는 일을 붙들고 산다. 모두가 다 아픈 갑상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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