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 환자다. 평생 호르몬제로 보충되어야 할 만큼 항체수치가 높고 만성염증은 갑상선을 괴롭힌다. 진단을 받고 3년 만에 갑상선 호르몬제를 절반으로 줄이고도 일상생활이 문제가 없었다.
아픈 몸이 좋아지니 치료하는 동안 고통은 희미해지고, 어디로든 갈 수 있을 만큼 몸은 생기가 돌았다. 굳이 내색하지 않으면 내가 아프다는 걸 누구도 몰랐다. 그래서일까.혼자 노는 아이를 보면서 동생이 있으면 어떨까? 직장으로 돌아가는 건 이미 포기했으니, 이대로 갑상선만문제가 없다면 용기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욕심인 것 같아서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의사에게 먼저 상담을 하고 남편과 상의할 생각이었다. 곧 있을 진료에 나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저 아이를 가져도 될까요?
둘째를 낳고 싶은데, 지금 내 상태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까지 잘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내 말을 들은 의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네, 물론이죠. 낳으시면 되죠."라고 대답했다. 기대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숨겼지만, 활짝 웃으며 말하는 의사의 얼굴을 보니덩달아 웃음이 나고 몹시 기뻤다.
그리고 곧바로 의사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출산해도 되는지 묻는 질문엔명쾌하고 간단했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간단하지 않으니 나와 갑상선도 심플하게 웃어넘길 수 없었다.
의사는 임신 중에도매일 아침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더 잘 챙겨서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아와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더욱 호르몬제를 잘 섭취할 수 있도록 공복 1시간을 유지하라며, 태아에게 약이 흡수되는 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산모가 섭취한 갑상선 호르몬제는 아이가 자라는 태반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선 출산 후에 갑상선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도 했다. 산모의 건강이 임신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와 같은 갑상선 저하증 질환을 가진 여성이 임신할 경우엔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중요했다.
호르몬을 매일 약으로 섭취하긴 하지만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정상적으로 안되면 출산까지 산모와 태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임신하게 되면 정기적인 산부인과 진료도 해야 하니 내분비 내과진료를 같이 볼 수 있는 병원에서 출산을 계획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팁을 주었다. 마음이 들떠서 어쩔 줄 몰랐다.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된 것처럼 그 풍경은 이전과는 다를 것 같았다. 화단마다 봄꽃이 한창이었고, 내 몸에도 온기가 느껴졌다. 벚꽃 잎이 부드럽게 날리며 나를 감싸 주었다.
늦여름 내게도 기적은 찾아왔다.꿈처럼 둘째 아이가 와주었다. 임신을확인한 후 다시 진료를 받았다. 갑상선 수치는 문제가 없었고, 만삭이 되기전에 검진을 한 번 더 오기로 하고 6개월 뒤 진료 예약을 했다.
의사도 기뻐해주었지만 나의 갑상선에게 무척 고마웠다.
본래 임신과 출산은 복잡한 과정이 아닌가. 몸의 호르몬 변화도 심하고, 입덧, 체중변화, 피곤함 등등 겪어야 할 것들이 다양하니 말이다. 이미 첫째를 가졌을 때 겪어본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좀 까다로운 내 갑상선의 눈치를 보며 새로운 탄생을 기다렸다. 아래의 3가지 규칙을 지키며 건강한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1. 산부인과 진료와 내분비 내과 진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병원을 선택했다. 나는 출산할 때까지 같은 날짜에 산부인과와 내분비내과를 동시에 진료를 할 수 있고, 위급시 여러 가지 응급조치가 가능한 종합병원을 선택했다.
2. 정기적인 검사: 임신 중 호르몬 변화는 불가피 하니,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한 달에 한번 채혈검사로 모니터링했다.
3. 갑상선 호르몬 복용: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갑상선 호르몬제를 아침에 먹고 공복 1시간을 유지했다. 갑상선 수치가 안정되게 유지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면서 호르몬 복용량을 조절해야 하는지도 살폈다.
임신성 당뇨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임신성 갑상선 질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임신 중에는 많은 호르몬 변화가 생기는데, 호르몬을 조절하는 갑상선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임신 초기 또는 중기에 발병하기 쉬운데, 신체적인 변화로 불안정하게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고, 땀이 많이는 경우가 그런 이유 증상이다. 건강하던 몸도 임신성 갑상선 질환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임신 중에 갑상선 기능저하증 증상이 나타나거나 반대로 갑상선 항진 증상이 오기도 한다. 사실 임신 초기엔 입덧도 힘들고, 몸에 더웠다가 추웠다가, 졸음이 엄청나게 쏟아지기도 하고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이 따라다닌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에 가까운 몸이 된 듯 말이다.
갑상선 염증이 있는 채로 출산을 한다는 건 모험 같았다.
아픈 갑상선은 임신이 처음이었지만, 나는 이미 출산까지 해본 몸이었다. 몸의 상황이 바뀌었지만 첫째를 임신할 때와 다를 것이 없이 내 입덧은 똑같이 심했다. 매달 산모 수첩에 1킬로 그램씩 줄어든 몸무게를 찍었다. 산모가 되면 맘껏 먹는다는 말은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갑상선이 문제가 있었다면 살이 빠지지 않았을 텐데, 내 몸은 엄마로는 정상적이었나 보다. 먹지 못하니 체중은 줄기만 했다. 먹지 않아도 체중이 늘었던 나였는데 말이다.
헛구역질도 임신초기에만 있을 줄 알았지만 잔뜩 술을 부은 듯 속은 더부룩하고 쓰렸다. 산모는 입덧이 심해도 뱃속에 아이는 건강하다는 산부인과 전문의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뭐든 먹어보고 싶었다. 비유가 우습지만 숙취해소는 음식으로 해결되지만, 입덧으로 매슥거리는 속을 달래주는 음식은 별로 없었다.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임신초기 입덧으로 몸무게가 3킬로나 빠졌지만 아랫배는 조금씩 나왔다.입덧이 심했지만, 고맙게도 나의 갑상선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갑상선 질환이 입덧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갑상선 기능 이상이 있다면 임심 중 입덧 시기와 정도에 영향을미친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인 경우 입덧도 느려지고, 식사량을 줄이게 하면서도 체중이 증가하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항진증으로 올 경우엔 입덧 시기가 빨라지고, 식사량은 많은 반면 체중을 줄어드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갑상선 기능 저하증인 경우에는 입덧이 감소하고 대게 식욕이 감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신진대사가 느려져서 입덧이 심해질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입덧만 문제였지, 건강했던 첫째 임신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입덧이 심했고, 체중은 줄어들었지만 활동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잠이 많아지긴 했지만, 낮잠을 자든 저녁에 들던 푹 자면 그만 이었다. 이미 갑상선 기능 저하증 환자인 나는 그런 증상이 익숙했 나보다. 잠이 쏟아지면 자고, 피곤하면 눕고, 입덧은 심해서 음식은 거의 먹지 못했다. 몸이 붓는 날도 많았고, 피곤함은 늘 달고 살았다. 그러고 보니 임신이란 갑상선 질환을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달을 다 채우고 건강한 얼굴로 내 품에 안겼다.
출산 후 내 갑상선은 다른 규칙이 생겼다. 곧바로 시작된 수유 때문이었다. 태반은 갑상선 호르몬제를 흡수하지 않아서 문제가 없었지만, 수유를 통해서는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유 중엔 복용할 수 있는 약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호르몬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침 공복에 먹던 호르몬제가 말썽이었다. 1시간 공복유지가 쉽지 않았다. 신생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니 수시로 젖을 물려야 했다. 나 역시 임신 기간엔 입덧이 심해서 잘 먹지 못했지만, 출산 후 수유 중에는 금방 허기가 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먹던 갑상선 호르몬제를 새벽 수유 후에 복용했다. 밤엔 젖을 먹어도 깨는 일이 많아서였다. 엄마가 복용한 갑상선 호르몬이 아기에게 영향을 주게 해서는 안 됐다.
의사는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곧바로 약을 복용하고, 가능하면 약 복용시간 3-4시간 내외엔 수유를 피하라고 했다. 새벽에 젖을 먹은 아기는 아침까지 잘 잤다. 나 역시새벽 수유를 마치면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1시간 공복 상태를 지켜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졌다. 계속해서 시간은 내편이었다. 아기가자라면서 수유시간도 일정해지니 호르몬제 복용도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두 아이를 챙기다 보니갑상선 호르몬제 복용을 깜빡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먹는 걸 잊어버리고 하루동안아무렇지 않기도 했다.
출산 후 산부인과 진료를 가면서 같은 병원 내분비 내과에서 마지막 진료를 받았다.
" 저에게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이 정도 검사 결과나 나오면 호르몬제 복용을 크게 권하지 않아요.약을 안 드셔도 될 것 같지만, 본래 다니던 병원에서 상의해 보세요."
내분비내과 의사는 병원마다 갑상선 검사 진단 제품이 다르다고 했다. 의사의 말에 믿기지 않았지만 나도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검사를 해봐야 했지만, 산후조리가 잘되면 내 몸은 더 건강해질 것 같은 기대도 되었다.
산후조리는 짧은 시간에 회복할 수 있는 따위가 아니었다.규칙적인 식사도 어렵고, 임신했던몸은 회복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산을 하고 나서도 갑상선 저하증 증상이 심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병원 검사에선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지만,수유를 하면 엄마는 무척이나 잠이 부족하다.역시 엄마는 쉽게 할 수 있는 역할을 아니었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육아 중인 엄마들은 다 아는 만성 피로감이 가장 갑상선 저하증과 비슷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산후 갑상선 기능 이상"이라고 해서 출산 후에도 갑상선 기능이 나타날 수 있다. 출산 후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나타나며, 갑상선 기능 저하증 증상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몸이 갑자기 붓고, 식사량이 많지도 않은데 체중이 늘어난 경우, 피곤함을 호소하는 경우, 나는 주저 없이 갑상선 검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특히 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에겐 더욱 그랬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란 병과 동반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특히 우울감이 크고, 산후 우울증이 심한 경우도 갑상선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몸이 붓고 체중이 증가하는 경우, 잦은 두통에 시달리는 것도 추위를 많이 타는 것도 마찬가지다. 산후조리를 하며 겪을 수 있는 증상 같지만, 산후조리보다는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해서 몸의 대사 속도가 느려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산후에 오는 갑상선 기능 이상은 일시적으로 나빠졌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산후조리가 참 중요하다고 말들 하나보다. 몸의 이상을 그냥 넘기지 않아야 하는데, 어떤 병이든 가능한 조기에 치료하는 것도 유리한 이유이다.
산후 갑상선 기능 이상 환자의 사례를 보면 완치가 대부분 되지만, 환자의 20%가량은 만성질환으로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갑상선은 아프지만 엄마는 되었다.
갑상선 염증은 심한 입덧을 경험하게 했지만,직장 생활을 하던 첫째 임신기간에 비하면 편안하고 순조로웠다. 두 번의 출산, 엄마가 되는 일은 역시나 신비롭고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걱정했던 갑상선 염증은 나를 크게 방해하지 못했다. 둘째가 태어났으니 육아는 두 배, 솔직히 열 배는 더 힘들었지만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풍요로운 사랑을 알게 되었다. 애틋한모성애 뒤에서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흡족하게 만끽했다. 그림자가 드리웠던 삶에도 밝은 조명이 하나 더 생긴 듯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