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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20. 2024

갑상선에 드리운 그림자

보이지 않는 환자복

 질병도 뒤흔들면 더 깊어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을 격리시켜서 다시 찾아야 한다.
 - 몽테뉴


 다시 찾아야 할 것이 건강이었을까? 몽테뉴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 큰 성과 재산 그리고 신장병이었다. 오랜 투병이 그를 흔들었으니 그의 문장에서 나도 잠시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환자복을 벗어던지고 예전처럼 건강한 날로 돌아가고 싶기만 했다.  


갑상선 호르몬이 작동을 잘하던 때는 알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 나를 더 작아지게 했다. 아무리 북돋아도 텐션이 오르지 않는다. 잠시 올랐다가 또 다운된다. 그런 내가 변덕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기분이 널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몸이 가벼워서 집안 일도 수월하게 하다가 늘어져 쉬어야 하고, 약속을 잡고 외출을 하고 나서 돌아오면 피곤해서 녹초가 되니 말이다.

 
 쇠사슬을 이끌고 다니는 것은 나였지만 나만 보이는 감옥이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오랫동안 나는 낙오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 더 두려웠다. 누워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할지 더 막막해져만 같다. 몸이 아프다는 걸 숨기고 싶었다.


 겁도 많고 염려가 많아서 곁에 환자복을 걸어 두고 있었다.  병이 나아지지 않을 까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플 까봐 걱정이 된 나는 아픈 몸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건강 염려증은 더 단단해져, 우울한 환자복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병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쉽게 지치고 피곤한 몸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내가 어린애 같아 창피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아이들에게 짜증 내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활기찬 엄마가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하고, 나중에 가족들에게 짐만 될 것 같은 내 존재가 너무 부담스럽다. 그러다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가 나를 삼켜 버린다.
그런 나 이 모든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책 <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혜남 선생님의 책은 갑상선 호르몬제만큼이나 늘 효과가 좋았다. 심리학은 관심이 많고 예전부터 많이 보아온 터라, 이 책을 책장에 꽂아 둔지도 오래되었지만 처음엔 읽고 싶지 않았던 책이었다. 호기심이 책을 사게 했지만 왠지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다.

 

우연히 4년 전 선생님의 강연을 보고 나서야 나도... 그랬구나 싶었다. 다시 꺼내본 책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렇게 아픈 갑상선과 살게 된 이후 <어른으로 산다는 것> 책을 자주 꺼내보게 되었다. 아픈 몸 때문에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낸 글들은 내게도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삶에서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은 그냥 체념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달라져야 했다.  


 매번 병원 문을 나오면서 울컥했다. 그렇지만 가족을 위해서도 치료를 위한 일상이 중요했다. 항체 수치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매번 기대지만 별다른 기색이 없어도 그렇게 실망도 하지 않는다. 대신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다시 갈 때까지 잊고 살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분노하느라 낭비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병에 걸린 것도 과거처럼 지난 일일 뿐이었다. 여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갑상선염증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종종 책을 보듯 같은 처지를 겪은 선배에게 위로를 받고 희망을 얻었다. 몸이 무너져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대단한 끈기와 최고의 긍정을 가진 분들이었다. 견뎌낸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들처럼 나도 고통은 이미 지나간 것 같기도 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병은 말은 없지만 몸에서 느껴진 모든 감각을 아주 세밀하게 바꾸어 놓았다. 초기엔 잔소리를 듣는 듯 한껏 예민해진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날마다 증상들은 서서히 아픔을 각인하게 하고, 매일 약은 한 번씩 잔잔한 평화를 주었다.


피로함과 몸의 부기는 한 세트로 찾아왔다.
그리고 하나 더 우울감이 보너스처럼 따라붙는다.


2011년 1월 새해가 밝았다.
의사는 내게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 그 의사를 보고 싶지 않았다. 3개월 뒤면 출산을 마친 첫 번째 의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간호사는 두 번째 선생인 그녀에게 진료를 받을지 물어봤다.
그리고 3개월 뒤 다시 만난 의사는 다른 병원으로 간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방금 만난 의사를 보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의사에게 예약했다. 사실 다른 의사를 만나 다른 진단이 나오길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나만 좀 느리게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만 빼고는 변하고 있다.
아프다는 건 우울한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내 옆에서 누군가 나를 재촉하고 있지만,
마음도 몸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무엇에 몰두해야 한단 말인가?
아프다는 것은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
온전히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망설이고 있다.


 그 당시는 나를 계속 지켜봐 줄 의사가 없어서 불안했고, 늘 갑상선 염증이 사라지는 걸 기다리는 일이 짜증 났다. 작은 일에 예민해지고,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그렇지만 약통에 가득 든 호르몬제를 보고 안심하고, 아침 거울에 비친 얼굴에 부기가 없어서 안심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하지 않아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서 안심이다. 몸이 좋아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더니 요즘은 글을 쓰는 마음이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싶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갑자기 뭘 쓰려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까? 잠시 멍해졌다. 그래서 책을 찾아들었다.

 몽테뉴의 글이 필요했다. 그가 남긴 글들 속에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 듦에 대하여'엔 아주 많은 밑줄을 그었다.


 나는 내 속에서 굴러다닌다. 내 속에 있는 진실이 무엇이건, 이 진실을 추려 내는 능력과 내 신념을 쉽 자리 굽히지 않는 이 자유의사를 나는 주로 내게서 얻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그리고 완전히 내 것이다.     


  서른이 되었고 직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해 목표가 생겼지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바로 '갑상선기능저하증'이란 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1년간 휴직을 해도 몸이 나아지지 않으니 결국 사표를 내야 했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해주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20대를 지내다가 보면, 서른 정도에 만나게 되는 3가지 장애물이 있다고 하셨다.  
첫 번째 돈, 그리고 건강, 마지막으로 결혼이라고 말이다.
3가지가 다 순리대로 풀리기도 하지만 그중에 하나가 잠깐 발목을 잡을 테니 조심하면서 지내라고 하셨다. 그걸 잘 넘기면 배우는 것이 있을 거란 말도 하셨다. 그때는 웃고 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알 것 같았다. 나는 병이 찾아오고 나서야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연습을 시작했다.

건강이 회복되길 기다리다가 흘러가는 시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몸이 좋아지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기운 없음'이란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무기력함'은 이미 머릿속까지 전이되어 버렸다.


  갑상선 염증 뒤에 숨어서, 자신감이 없는 나를 숨겨 온 걸 인정해야 했다. 갑상선 염증과 함께 살다 보니 나의 삶도 진지해지는 듯싶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억지로 만들지 않고 꽃처럼 피어나는 있는 그대로 말이다. 어쩌지 못하는 갑상선 염증처럼, 있는 그대로 나와도 잘  지내야겠다. 매일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가 성가실 때도 있지만 덕분에 나는 더 잘 지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좀 부족하면 어떤가. 딱 맞게 처방된 약은 얻을 수 없었지만 경험은 나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예전에 써놓은 글을 읽다가 몸이 무너진 것을 핑계로 시간을 허비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갑상선 때문에 냉장되었던 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시도해 봐야겠다.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말이다.

몸이 더 나빠질까 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 조차하지 말아야 한다고 몸을 사린 것은 아닐까?

약병을 꺼낼 때마다 나보다 더 래 약을 드신 아버지가 보였다. 내 곁에 안 계시지만 여전히 약병을 보면 그림자처럼 나타난다. 갑상선에 생긴 염증처럼 마음에 스며든 죄책감이었다. 아버지에게 해드리지 못한 죄책감 대신에 그림자 친구가 생겼다. 꽃을 좋아하던 아버지를 흉내 내고 싶었는지 꽃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꽃밭은 나의 은신처가 되었고, 태양이 비치는 꽃 뒤로 생기는 그림자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갑상선에 생긴 염증도 내 그림자처럼 익숙해지게 되었다. 갑상선에 냉장보관 된 글쓰기 덕분이다.



 갑상선 이야기를 올리면서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많은 분들이 같은 질환으로 지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병원에 다니는지 궁금해하고 같은 진료를 하는 의사들도 알게 되고 ^^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드셨지만 할머님이 건강하게 아흔 넘도록 사셨다고 힘내라는 댓글을 달아 준 분도 계셨다. 덕분에 나도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 만으로 기뻤다. 강은 늘 나의 약점이라고 믿었지만 이젠 그만두어야 했다. 걱정 바람이 불면 흔들리긴 하지만 다시 제자리고 돌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늘 나아지는 기분을 바라고 살았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몸의 병은 쉽게 나을 생각을 없어 보였다. 그때는 충분히 힘들었고, 갑상선 기능은 쉽게 나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다면 나와 같은 우울감을 경험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정신적인 우울증 진단을 받아야 할 환자가 갑상선 기능저하증 처방을 받았다는 걸 얼마 전 한 의사의 수기에서 읽었다.


갑상선의 기능은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중에 같은 질환을 앓았는데 몸이 개선된 사례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모두 과로 탓이기도 했지만 식습관에 대한 문제가 많이 거론되었다.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자연식으로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들도 빼놓지 않았다.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일조량으로 충족되는 비타민 D 흡수가 쉽지 않다. 게다가 비타민 D 결핍이 우리 몸의 면역력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건강한 몸이 아닌 이상 더욱 영향력이 더 컸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이 비타민 D가 결핍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오전에 내리쬐는 햇볕을  쐬는 일은 나에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어찌 되었건 호르몬제 복용은 끊을 수 없다.


물론 건강 보조제로 먹는 일도 거르지 않지만, 산책이든 걷기 운동이든 내게는 매일 먹는 호르몬제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가 되었다.

함께하는 산책도 좋지만 혼자 나서는 걷기는 달콤하다. 그러니 혼자는 어디로 갈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자신이 결정하면 된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으면서 충분히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산책의 효능감은 억지로 라기보다는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한걸음 나갈 때마다 나아가는 기분을 즐기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유일하게 할 수 있던 것이 바로 걷기였다. 어쩌지 못하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집 밖으로 나가서 걷는 일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걷는 일에 즐거워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진정한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갑상선이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혼자 지내는 고독의 시간을 더 충분히 가지라고 하는 듯했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평소에 진정한 휴식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찾아온 손님이다.


 인생을 좀 즐기라고 말이다.  그 손님이 평생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운 인생을 사는 일에 큰 방해꾼은 아닐 듯싶다. 나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가 많은 손님이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환자복은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걱정이 깊어 병이 영영 떠나지 않고 일찍 죽어버릴 까봐 겁이 났었다. 젊은 나이에 떠난 아버지가 겹쳐져서 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병이 하나 더 있었다. '건강염려증' 말이다.


어쩌면 갑상선 염증은 아주 오래전부터 생긴 상처로부터 나왔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내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의 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채혈검사처럼 심리검사가 필요했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기뻐하지 못하고 어두운 그림자만 붙들고 사는 내가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갑상선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무엇인지 마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계속 미루기만 했던  나의 슬픈 이야기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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