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신 시간을 죽이기
엄마가 돌아가신 때는 중3 겨울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엄마와 내가 살던 집에는 아빠가 함께 들어와 있었다. 엄마와 둘이 살던 집에, 엄마의 남자친구가 사준 티브이로 뉴스를 보고 있는 아빠. 이상했다. 아빠가 그 티브이를 보고 있는 게 이상해서, 티브이를 내가 차지해 버렸다.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 방학, 하루 종일 누워서 티브이를 봤다. 아빠가 부르면 밥을 먹고, 아니면 먹지 않았다.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씻지도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으며 시간을 죽였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고, 티브이를 켜둔 채 잠들곤 했다. 다행히 우리는 금방 이사를 갔다.
고등학생이 된 후 두 달이나 그렇게 누워있을 수 있는 날은 사라졌다. 하지만 비슷한 방식의 휴식은 내가 살아온 긴 시간 동안 이따금씩 다시 찾아왔다. 대상은 웹툰이거나 웹소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으로 바뀌었다. 깊게 생각을 해야 하는 무언가를 읽거나 보진 않았다. 영화를 보는 일도, 혹은 너무 길어지는 드라마도 즐기지 않았다. 가벼운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봤다. 밤을 새워 다음날 피곤해도 상관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자 담배를 피우면서 봤던 웹툰을 또 보고, 또 보고, 또다시 봤다. 특별히 감동적이어서 본 것은 아니다. 그냥 시간이 잘 흘렀다. 게임을 하진 않았다. 그럴 힘이 없었다. 행운이었다. 게임에서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냥 콘텐츠 소비를 하는 것은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하루, 이틀, 삼일 종일 휴대폰을 보다가도 즐거움보다 자괴감이 커질 때 즈음이면 성취감을 찾아 다시 현실 세계로 기어 나왔다.
쓸데없는 생각이 들면, 그러니까 사는 게 의미가 없거나, 번거롭고 지겹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빠르게 작은 휴대폰 화면 속으로 도망쳤다.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쨌든 나는 생활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고, 학기 중엔 수업도 들었고, 직장인이 된 후에는 출근도 했으므로 괜찮았다. 쉴 수 있는 날이면 그냥 누워서 휴대폰을 봤을 뿐이다. 휴대폰이나 보고,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대충 먹고, 또 휴대폰을 보면서. 어떨 때는 웃긴 걸 보며 웃고, 어떨 때는 슬픈 걸 보며 울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아빠에게 생활비를 보내달라고 할 수가 없었으므로, 나를 먹고 입히는 돈은 내가 벌어야 했다. 휴대폰을 덮고 일상으로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나 학원으로, 나중에는 직장으로 일을 하러 갔다. 도망치더라도 늘 다시 현실세계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셈이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고, 어쩌면 이게 나의 또 다른 행운이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먹고, 자는 비용을 댈 수 있는 바퀴를 계속 굴려야 했기에 방문을 닫아버린 고립청년이 되지 않았다. 대신 은은하게 죄책감이 남았다. 시간이 소중한 줄 모르는 한심한 나.
언젠가 소중한 것을 낭비하는 건 즐겁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봤다. 돈, 시간, 인생 같은 걸 낭비하면 즐겁다고. 이 말을 농담처럼 친구들과 나눴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낭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다가, 올해 여름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정신과에 갔다. 살면서 처음가 본 정신과였다. 초록색 캡슐에 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나의 반응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가만히 누워 보낸 하루의 끝, 일기장을 펴고 무심코 '나는 나를 죽이는 대신 시간을 죽였다'라고 썼다.
나는 인생이나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다. 나를 죽이는 대신 시간을 죽인 것뿐이다. 내가 나를 죽이면 안 되니까. 대신 내 시간을 기꺼이 죽여왔던 것이라고. 왠지 스스로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를 죽이지 않고 살아남다니! 낭비한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사는 게 벅차고 힘들 때, 이 세상에서 잠시 증발해 휴대폰 속에 들어간 것이다. 도망친 그곳에서 다시 숨을 붙여 이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살기 위해 도망쳤던 나도, 그리고 끝내 되돌아와 살아가는 내게도 새삼스럽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가 낭비한 시간들은 낭비라고 이름 붙일 필요가 없다.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밤이었을 뿐이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감정에 무뎌진 채로 지내던 무감각하던 시기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