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는 나의 힘

공허와 회피는 나를 살아가게 하고

by 얼떨결정

내가 스스로에 대해 가장 궁금했던 점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나는 이상한 아이였는가, 혹은 돌아가신 후 이상해 졌느냐였다. 그러니까, 나라는 인간의 많은 면모 중에서 엄마의 자살이 내게 미친 영향은 몇 퍼센트일까? 그게 큰 궁금증이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아니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중학교 2학년 여름 이전부터 약간 엇나간 상태였다. 특별한 사고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선생님들 몰래 화장을 하고, 친구들이랑 술을 사 마셔 보기도 했다. 그 당시 마음은 '세상에 나는 오로지 혼자고, 다른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다'는 식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엄마 아빠랑 함께 사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친척들이 다 같이 모이면 나만 부모님 없는 것을 싫어했다.


밤에 슈퍼 간다고 나가 친구들과 놀고 들어오고, 새벽에 몰래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점점 듣지 않게 되자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데려갔다. 누가 내게 엄마랑 같이 살고 싶냐는 것을 물어본 기억은 없다. 그리고 중3 겨울 엄마가 스스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이든 후든 나는 내가 혼자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다행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중학생 시절 나는 "그건 내 알바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약간의 허세가 낀 나의 말투를 10대 중학생 친구들은 좋아했다. 내 말투가 닮아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엄마의 문제는 어른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나름의 반성이었다. 그러나 그런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니까.


공부만 하면 되던 입시가 끝나고, 성인이 된 나를 가장 곤란하게 한 것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그래서 이게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이었다. 누가 봐도 아르바이트니 학점관리니 연애니 열심히 하며 살았지만, 아등바등하는 내 뒤로 내 그림자는 언제나 삶이 의미가 없다고 조용히 혼잣말했다. 연인과의 헤어짐은 슬프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니 괜찮았다.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는 일도,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하는 일도, 일이 뭔가 잘 안 풀리는 것도, 돈이 없는 것도, 대학원을 그만두는 것도 모두 정말 힘들었다. 어떨 때는 밤에 잠을 못 자고 울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살지 못해 죽어버려야 하는 그런 엄청난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의미가 없지만 계속 살았다. 아니, 의미가 없어도 계속 살 수 있었다.


스스로가 꽤 시니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알게 된 사람들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나를 오래 본 친구들은 내게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는 말을 종종 했다. 다정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말을 계속 계속 들으며 살다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때가 왔다. 내가 그다지 냉소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20대 초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해?". 당시 나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하고 웃었다. 10년이 지나고 답을 알았다. 아무리 아닌 척해봤자, 의미가 있었으니 열심히 한 거다.


고등학교 시절은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은 채 공부만 하며 지나갔다. 감정을 모두 내 안에 꽉 눌러두었다. 울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참은 눈물들이 너무 무거워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 마음에 구멍을 뚫어버린 줄 알았다. 성인이 된 내가 공허한 이유는 마음에 구멍이 나서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공허한 척을 오래 한 것이었다. 평범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하고,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삶을 살아가려고.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만 않으면 언제든 실패해도 또다시 해나갈 수 있으니까. 중요하지 않아야만 살아가는 데에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드니까.


결국 나의 냉소와 공허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의미가 있는데 의미가 없는 척, 중요한데 중요하지 않은 척, 너무나도 소중한데 소중하지 않은 척 살아온 것은 어쩌면 잃는 게 너무 두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닌 척하며 살았고, 합리화했다. 그 결과는 꽤 나쁘지 않았다. 빠르게 과거는 흘려보내고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해야 할 일을 잘하며 살다 보니 죽을 것 같던 시간도 흘러갔다. 성인이 된 후에도 스스로를 꾸준히 속였다. 원래도 의미가 없으니 괜찮다고. 아이러니하다. 삶이 의미가 없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사실 모든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무언가 다시 잃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회피라고 하기도 했다. 내 마음을 직면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뭐 어떤가?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서 이것저것 애쓰며 살았다.


살다가 '사실은 이게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면 어떨 때는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소중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잃을까 봐 너무 두려우면 역시 의미가 없다고 우겼다. 우기면서 그러니까 그냥 망하거나 사라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시 도전을 하고, 사람을 믿었다. 때로는 실패하고 상처 받았지만 괜찮았다. 이제는 의미가 있을지 자체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사소한 일로도 웃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울 수 있었다. 나의 하루 중 어떤 시간은 한심했지만 어떤 시간은 대견했다. 그러니 잘 살아가고 있다. 냉소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사소한 일에 감사했다가, 또 어찌 되었든 그래도 괜찮다고 우기고, 허세가 깃든 냉소를 유머처럼 부리며 살아갈 것이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죄책감, 분노, 슬픔, 공허 다음 가장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억울함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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