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을 돈 주고 산 보람

심리 상담 기록

by 얼떨결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울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걱정할 테니, 대학에 가면 정신과에 방문해야지 하고 홀로 다짐했다. 막상 대학에 와서는 정신과에 가지 않았다. 대신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를 즐겼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성인은 연인 관계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재현한다고 했던가?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헤어질 때마다, 나는 엄마가 떠날 때처럼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분명 내 세상은 살 만했다. 정확히 말하면 살고 싶지도 않지만, 죽고 싶지도 않은 상태였고, 그럭저럭 그냥 사니까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자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사는 게 무서웠다. 두려운 마음으로 캠퍼스를 걷는데 힘들면 오라는 상담센터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하며 상담센터 문을 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하니 대학원생처럼 보이는 어린 상담사가 친절하게 웃었다. 헤어짐은 큰 일이지만 그게 또 큰 일은 아니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그 어린 상담 선생님이 안타까워 보였다. 나를 상담하는 건 그다지 서로에게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냉큼 자살유가족이라고 고백했다. 다음 회기에 가니 경력이 충분히 긴 가족 상담 전공 교수님으로 상담사가 바뀌어 있었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상담 선생님은 내 연애 카운슬러였다. 상담을 시작하면, 나는 15분 정도 다른 일상 및 연애 이야기를 하고, 20분 정도는 묻는 말에 대답을 하다가, 마지막 10분을 남겨두고 늘 울었다. 준비된 20회기가 모두 끝났지만, 상담이 종료되지 않았다. 10회기를 더 받기로 했다. 어떻게 종결했더라? 교환학생 가야 한다고 흐지부지 마무리했던 것 같다. 첫 상담은 그렇게 내 안의 어떤 것도 들여다보기를 거부하는 나와, 나를 안타까워하는 상담 선생님의 긴 줄다리기로 끝났다. 상담 선생님은 공감을 표현할 때 '으음' 하고 앓는 소리 비슷한 걸 냈다. 가끔 울지 않는 나를 대신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 '으음'소리가 왠지 싫었지만, 그래도 사회에 나가면 이게 다 돈이라는 생각에 상담을 계속 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지만, 대학 졸업 전에 내가 괜찮아 지기를 바랐다.


두 번째 상담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것 같다. 진로에 대한 불안감으로 상담센터를 방문했다. 경력자답게 예약 접수 종이에 '진로 고민으로 인한 불안함, 참고: 자살유가족임'이라고 적었다. 이번에도 가족상담 전공의 경력 긴 또 다른 상담사가 배정되었다. 그때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이 있다. 나는 여전히 40분 간 멀쩡히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10분에 울었다. 두 번째 상담 선생님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담배는 즐겁게 피우라고 하셨다. 함께 피던 친구들이 모두 담배를 끊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흡연자로 남았다.


두 번의 상담 기간 동안 내가 느낀 점은 명확하다. 상담은 매우 피곤하다는 것이다. 그게 고작 마지막 10분이라도 울면서 상담실을 나왔고, 부은 눈으로 학교 교정을 걸어 다녀야 했다. 누구라도 마주치면 민망하기도 했고, 수업을 가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는 날이면 내 존재 자체가 먼지가 되길 바랐다. 그래도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학교 상담센터에 가라고 추천했다. 학교 상담 센터는 돈이 안 드니까. 돈 없이 자란 나는 심리 상담 서비스란 건 돈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는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등록금의 뽕을 뽑자. 물론 저소득층 장학금 지원으로 나는 등록금을 내지도 않았지만. 다행히 친구들은 다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집에 돈이 없었고, 내 조언을 착실히 따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들어주는 역할은 학교 상담 센터에 맡기고, 만나서는 웃고 떠들기만 했다.


그 뒤로 상담을 받지 않았다. 상담을 받지 않고도 석사를 졸업하고, 연애를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접하고, 그제야 정말로 불안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달았다. 평생을 불안에 떨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불안이 아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게 느껴졌다. 밤을 새워서 암에 대한 온갖 정보들을 찾아봤다. 전화할 병원을 리스트업 한 뒤에도 마음이 계속 두근거렸다. 원래 이런 건가? 모르겠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다음날 낮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담 센터에 전화를 했고, 당장 오늘 상담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운이 좋게도, 상담 선생님이 내 떨리는 목소리에 상담이 스케줄이 끝난 후 저녁 시간을 내어주셨다.


회기당 9만 원. 학생 때라면 꿈도 꾸지 않았을 가격을 직장인이 되었다는 빌미로 턱턱 내면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은 늘 토요일에 받았고, 50분간 짧은 대화에 모든 기운을 다 소진한 것처럼 주말 내내 집에 누워있었다. 9만 원을 주고 피곤함을 사는 기분. 비싼 피곤함. 그래도 예전보다 더 일찍 울었다. 예전에는 40분쯤 지난 후 울었다면, 이제는 30분쯤 지난 후 울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울면 상담이 끝날 거예요."라고 했다. 상담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돈이 아까웠다. 그래도 어린 시절 집에 붙어 있던 빨간딱지를 쳐다보던 내가 9만 원을 매주 쓸 수 있는 직장인이 된 것에 감사하며 상담을 지속했다. 솔직히 조금은 즐겼다. 내가 나를 위해서 1시간에 9만 원을 쓰는 게 이렇게 쉽다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무엇을 바라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했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다른 말을 했다. '그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일어나지 않았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바라는 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1년 정도가 지나 아빠가 수술을 받고, 항암을 마치고, 나의 생활도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상담을 마무리하게 되는 걸까? 그때 내가 말했다. "이제 엄마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상담은 2년이 넘어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총얼마인지는 더 이상 계산하지 않는다.


상담을 받는 동안 지난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꿈에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엄마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꿈인데 꿈인 줄 몰랐다. 꿈속에서 '남편은 어디 두고 이 꼴을 왜 혼자 보고 있지?'라고 생각했다가, '근데, 엄마랑 남편이 동시에 내 옆에 있을 수 있나? 누가 죽지 않았었나? 그게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깨달음을 얻은 꿈속의 나는 웃기게도 엄마에게 달려가서 화를 냈다. "살아있었어? 살아 있었는데 내 옆에 안 있고 숨어 있었어? 어디 숨어 있었어?" 소리를 지르다가 꿈에서 깼다.


깨어나서 울었다. 더 많이 볼 걸. 꿈인 걸 알아채면 자각몽처럼 하고 싶은 걸 꿈에서 할 수 있다는데, 나는 심지어 그걸 경험해 본 적도 있는데, 왜 꿈인 줄 몰랐을까. 당연히 꿈일 수밖에 없는데. 후회되었다. 안아주었어야 하는데. 아니, 안아주진 않더라도 얼굴을 더 자세히 봤어야 하는데. 나는 사진관에서 찍은 그럴듯한 가족사진이 없었다. 울면서 다짐했다. 다음에 꿈에서 다시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꿈이란 걸 깨닫고 꼭 자각몽으로 만들어서 잘 자란 나를 보여주겠다고. 그리고 엄마 얼굴을 엄청 자세히 봐야지. 그리고 꼭 안아주고, 안아달라고 칭얼거려야지.


상담 선생님은 꿈 이야기를 듣더니, 무의식이니, 내 마음의 변화니, 남편에게 의지하는 안정적인 부부 관계니 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고객을 끄덕이며 잠자코 들었다. 동시에 9만 원 치 피곤을 몇 개월째 돈 주고 산 보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직까지 엄마는 다시 꿈에 나오지 않았다. 언제쯤 이 상담이 종결될까? 아마 미래의 어느 날 내 무의식이 꿈에서 알려줄 것이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냥 살아있다는 게 전부인 날들에 대해서 써보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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