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

엄마는 아파서 돌아가셨습니다.

by 얼떨결정

고등학생 때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었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인생의 허무를 이야기하며, 죽는 게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모든 걸 이해할 순 없었지만, 삶이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10대인 내게 강하게 와닿았다. 끝까지 읽으면 톨스토이가 신앙으로 삶의 해답을 찾아간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읽지 않고, 허무와 죽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만 읽고 책을 덮었다. 이제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다시 그 책을 펴는 일은 없었다. 대신 종종 생각했다. 그때 내가 그 책을 꾹 참고 끝까지 읽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자살 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은 방식은 계속 변해왔다. 엄마가 돌아가신 해의 기사들은 사망 방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글로 적혀있었고, 가끔은 관련된 일러스트 이미지도 함께 나왔다. 2008년 엄마의 죽음 이후 자살률은 매년 높아져갔다. 최진실이 죽은 해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고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8년에는 10만 명당 26명이었으나, 2009년 31명, 2010년 31.2명이었고, 2011년에는 31.7명이다. 대학을 입학하던 2012년이 되어서야 자살률은 28.1명으로 다시 줄어들었다. 2024년에는 28.3명이었다. 브런치에 내가 처음 글을 쓰던 2016년에는 하루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2024년에는 하루에 40명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누군가 한 명이 스스로 세상을 저버렸다.


자살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언론보도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방법 묘사나, 자살이라는 말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엄마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삶의 이유라더니, 내가 있는데 왜 세상을 떠나기로 선택했을까? 나는 그 질문을 오래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누군가는 엄마는 아파서 그런 거고, 본인이 원한게 아니었을 거라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이 내게 상처가 되었다. 엄마가 원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엄마가 너무 가여웠다. 적어도 이 결과가 엄마가 원한 것이어야만 우리 엄마가 덜 불쌍하게 느껴졌다. 죽음은 엄마의 선택이었으며,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잘된 일이라고 믿고 살았다.


인터넷에서 자살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을 본다. 뛰어내리는 순간에 후회한다든가, 마지막 순간에 살고 싶어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든가. 그럴 리가 없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엄마가 후회하지 않았길 기도했다. 종교도 믿지 않았다. 엄마는 중학교 2학년이던 내게 다음에 크면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막상 교회는 안 가고 가끔 절에 갔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많은 종교에서 자살을 죄악시하고 있었다. 교회도 성당도 절도 가지 않았다. 대신 유물론자가 되기로 했다. 죽음 이후에는 '무'이며 아무것도 없으므로, 엄마도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게 괜찮아졌다. 나는 지금의 삶이 버겁지만, 엄마는 편안하거나 혹은 고통을 느낄 존재 자체도 남지 않았다는 게 내게 위로가 되었다.


선택이라고 여기는 게 당연했다. 나도 선택하고 싶었으니까. 그 마음이 너무 공감이 가서,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을 못했다. 2008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금은 2025년. 긴 시간이 지나고, 올해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그게 선택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엄마의 유서를 다시 본다. "너는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라". 그 말이 엄마의 삶은 주인으로 살지 못했다는 뜻이라서 슬펐다. 그러나 그 말이 불현듯 마지막 순간의 선택 역시 주인으로서 한 게 아니라는 걸 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주인으로서 살아내지 못했는데, 죽음이라고 온전한 선택이었을까? 엄마가 정말 많이 아팠구나, 근데 내가 그걸 몰랐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이제 언론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신 숨졌다고 표현하거나 타살 흔적이 없다고 명시한다. '선택'이라는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것이다. 2023년에 어느 의사가 유튜브와 방송에서 언급한 이후 언론보도 방식이 정정되었다. 기사 말미에는 늘 자살예방 핫라인 번호가 적힌다. 그 전화 상담 경험이 좋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그런 것도 없던 때가 있었다. 세상이 더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친구가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정신과 치료를 적극 권유했다. "너는 다리가 부러진 거야. 그런데, 바쁘다고 병원 안 가고, 목발도 없이 그 다리를 끌고 출근을 하고 있는 거야. 병원에 가. 괜찮아. 병원에 가봐. 다리가 부러져도 출근은 할 수 있지, 근데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출근을 해야지." 출근을 하더라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며 출근을 해야 한다. 그 간단한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과학이 발전한다고 인류가 더 행복해진다고 믿은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 뇌 과학이 더 발전하길 바라게 되었다. 마음도 뇌도 눈에 보인다면 모두가 이렇게 아프다가 죽어버리진 않을 텐데. "뇌를 찍어보니 이 사람은 심각하게 우울하며, 기분이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의사들이 말해주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 중 자살 생각을 하는 환자들의 뇌는 MRI를 찍어보면 다른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결국 뇌 역시 신체 장기일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엄마가 왜 돌아가셨는지를 설명할 때 망설이지 않게 될 거다. '조금 아프셨어요.' 하고 무겁지만 한편으로는 가볍게 말할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사인에 대해 진실을 듣지 못한 할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엄마가 그렇게 많이 아팠는지는 몰랐구나." 친척 어른들은 할머니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미 사실을 알고 계셨다. 다행히 이제는 나도 알게 되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226151200530


https://www.yna.co.kr/view/AKR20241212155800017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5091


https://www.medical-tribu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249


https://www.yna.co.kr/view/AKR20160621060200017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유가족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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