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살유가족의 삶은 가족이 처했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흘러간다. 어떤 가족들은 매일 울고, 어떤 가족들은 마치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군다. 우리는 후자였다. 나와 가족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실 내가 처한 건 꽤 독특한 상황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이혼한 지 10년이 넘은 사이였고, 나는 외동딸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오래 함께 살다가 엄마와 함께 산지는 1년 반 정도 된 중학생이었다. 과연 엄마와 나는 가족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였을까? 아빠와 엄마는 가족이라 부르기에는 이미 남이 되기로 한 지 오래된 사이었다.
엄마가 떠나고, 엄마의 가족은 내가 남았다. 엄마의 아버지, 큰오빠, 남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남동생, 즉 나의 외삼촌을 장례식에서 뵀을 뿐 이후에는 다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엄마의 가족이라 하기에는 애매한 우리 아빠가 있었다. 엄마와 가족이라기보다는, 나의 가족인 아빠와 친가 가족들이 나와 같이 이 세상에 남았다. 나는 '우리 가족' 중에 엄마가 죽고, 남겨진 사람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지만, 사실 엄마가 떠나고 남겨진 가족은 나 하나였다. 이게 나를 많이 외롭게 했다. 아빠와 친가 가족들도 분명 충격을 받고 슬픔에 잠겼지만, 내가 겪은 것과는 달랐다.
머리로 생각하면, 사실 다른 유가족들도 상황이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남겨진 사람들은 다 각자의 아픔을 고립된 채로 겪는다. 이혼하지 않은 가정이었더라도, 아빠와 내가 겪는 어려움은 다른 것이었을 거다. 내가 외동이 아니었더라도 큰딸과 다른 자식이 겪는 고통은 다른 종류였을 것이다. 나의 친가 가족들도 엄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엄마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저마다의 말들을 곱씹으면서 슬펐을 거라는 걸 안다. 우리 아빠도 내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생각들이 많을 테다. 그저 내가 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듯이 그들도 그럴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된 기분에 슬픈 날에도 가만히 조용히 있기를 택했다.
1년이 지나고 첫 기일이 돌아왔을 때, 나는 정말로 남겨진 가족은 나 하나뿐이라는 끔찍한 외로움에 직면했다. 엄마의 기일에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기말시험을 치고 있었다. 아무도 시험을 잘 쳤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제사도 없었고, 엄마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설 명절이 되면 보러 갔지만 이미 첫 기일의 충격이 나를 사로잡은 뒤였다. 지금도 기일에는 여전히 가족들과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게 한때는 엄마의 죽음만큼이나, 어쩌면 죽음 그 자체보다 더 서러웠다.
다른 자살유가족들은 대체로 어떻게 할까? 방을 그대로 유지시켜 놓거나, 매일 울면서 생활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가족들은 내게 무언가 묻지를 않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들 역시 감당할 수 없는 대답을 들을까 봐 두려웠을 수도 있다. 아무도 묻지 않아서, 나는 괜찮다고 답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억지로 괜찮다고 답할 필요 없었다는 점에서 꽤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는 가족들을 좀 원망했다. 왜 내가 혼자 그 기분을 버티게 하냐고 한 번쯤 따져 물을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억울했다. 나만 홀로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서 웅크리고 울던 나를 스스로 용서하기로 다짐한다. 아무 말하지 않고 혼자 있었던 건 살아남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어떤 말을 했다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으면, 너무 큰 상처가 될 수 있으니 그런 일을 사전에 방지한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대신, 나를 지키려 했던 나 스스로를 가엽고 대견하게 여겨준다. 가족들이 나를 위해주었던 다른 몇몇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러면서 미워하던 마음도 없는 셈 할 수 있게 된다. 현재의 내 삶을 사로잡기에는 이미 지나간 일들이 되었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2부 「남겨진 마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고인의 죽음이 자살유가족을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