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마시오, 살아남으시오.
고인의 죽음은 많은 걸 뒤바꾼다. 가까운 사람이 자살로 생을 떠나면, 남겨진 사람은 '사람이 스스로 죽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진실이란 걸 알게 된다. 나는 삶의 여러 선택지 중에 삶 자체를 포기하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엄마로부터 배웠다. 엄마는 내게 내가 삶의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스로 떠났다. 영원히 무언가가 지속된다는 믿음도 사라졌다. 나를 사랑하든 아니든 내 곁에 있는 누군가는 쭉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스스로 원하든 아니든 자연재해나 차 사고 같은 것으로도 사람은 갑자기 죽어버리니까,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고등학교 중간고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인터넷에 누가 죽겠다고 글을 올렸다. 아주 길게 죽지 말라는 말을 써서 싸이월드 메시지로 보냈다. 친구가 힘들다고 연락이 오면, 혹시나 나쁜 생각을 할까 봐 두려웠다. 자살이든 아니든 누군가 갑자기 죽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남들은 이런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변의 누군가가 죽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나도 당연히 내일도 이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산다. 또 내게 그런 일이 생길까 봐, 혹은 누군가 죽어버릴까 봐 걱정하며 살았는데 그건 나만 하는 걱정이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억울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간 자살유가족 모임을 나갔다. 그곳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가족을 한 명만 떠나보냈다. 운이 나쁘면 연달아 가족을 잃었다. 흔한 일이었다. 우울증으로 고인이 떠난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암이나 뇌졸중 같은 병으로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나도 이미 연달아 떠나는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엄마의 연인이던 아저씨가 떠나고, 엄마가 세상을 떠난 건 3개월 차이가 난다. 두 분의 기일 사이에는 엄마가 좋아하던 배우가 스스로 별이 되는 일이 있었다. 이후에는 아빠가 돌아가실까 봐 두려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떠날까 봐 겁이 났다.
자살유가족들의 자살률은 일반인의 20배가 넘는다. 3년 내에 자살 위험이 가장 높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후, 나는 '아 내가 살아남았구나.' 하고 안도했다. 아빠도 잘 지내셨다. 우리는 여전히 엄마 혹은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위로해 주지도, 혹은 상담센터에 데려가주지도 않았다. 이혼한 전 아내의 제사를 챙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빠는 죽지 않았고, 그게 내게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아무도 말한 적 없는 규칙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죽지 않기, 살아가기.'
엄마가 돌아가신 후 15년 즈음 지나고, 아빠는 암환자가 되었다. 담배를 즐기셨으니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다. 밤을 새워서 암 수술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동시에 암환자 자살률에 대한 통계 자료와 학술 논문을 찾아 헤매었다. 뜬눈으로 정보를 찾다가 회사에 출근했고, 피곤한 정신 속에 나는 혹시 아빠가 삶을 놓아버릴까 봐 다시금 두려워졌다. 항암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 하시면 어떨지에 대해서 염려하다가, 왠지 나라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고 싶어졌다.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영원히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가 죽을까 봐 영원히 두려워하겠구나. 동시에 내가 그럴까 봐를 두려워하며 살겠구나. 삶이 힘들면 죽음을 원할 수 있고, 그 마음을 내가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저주 같았다.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고, 웃으며 지냈으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가 무서운 밤들이 이어졌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규칙은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조용한 규칙이다. 가족들은 차마 말을 할 수 없고, 타인이 위로랍시고 말하게 되면 허공에 흩어지거나, 오히려 유가족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나 역시 아무도 규칙을 알려주지 않았다. 허무하고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어렴풋이 그 규칙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힘든 나머지 규칙을 어기기도 하고, 어긴다고 하더라도 처벌할 수도 없는 규칙이었다. ‘스스로 죽지 않기. 살아남기.’ 나는 밤에 웅크리고 누워서, '살기 싫은 거지 죽고 싶은 건 아니다'라는 말로 하루하루 스스로를 지켰다. 여전히 내게 죽음이란 건 삶에서 가능한 선택지처럼 느껴진다. 아마 평생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행히 나 스스로를 달래고 다잡는 기술도 늘어갔다.
그건 그냥 생각일 뿐이야.
생각은 나 자신이 아니야.
나는 다른 걸 택할 수 있어.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을 거야.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이번 편이 2부 「남겨진 마음들」의 마지막 편입니다. 다음부터는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를 시작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자살 사고에 대한 제 생각의 변화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쓰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54271.html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650458